[홍재민] 2023시즌 전북 최고의 승리 현장

골닷컴 2023. 6. 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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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홈팀이 이기는 편이 낫다. K리그 현장에 드나들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누가 이긴들 기자는 상관이 없다. 홈팀이 이겼다며 갑자기 취재진을 위한 잔치가 벌어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주인이 이기면 현장이 환해진다. 기왕이면 밝은 분위기에서 일하는 게 좋다.

3일 전북현대와 울산현대가 맞붙었다. 주인 현대는 자동차를 만들고 손님 현대는 배를 만든다. 올 시즌 두 팀은 라이벌이란 수식이 무안하다. 울산과 홍명보 감독은 개막부터 파죽지세다. 앞선 15경기(45점)에서 울산은 38점이나 땄다. 홈팀 전북의 승점(18점)은 울산의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감독이 바뀌었고 홈 서포터즈는 지금도 “허병길 나가”를 외친다. 손님이 이기면 전주성의 분위기는, 또, 푹 가라앉을 텐데, 이거 어쩌나.

전북은 모든 우려를 깨끗이 지웠다. 김두현 감독대행은 브라질 3인을 최전방에 세우는 4-3-3 시스템으로 출발했다. ‘말 통하는 너희끼리 한번 잘해봐’라는 생각이었다. 결과는 우울했다. 안드레 실바는 혼자 다쳤고, 하파 실바는 겉돌았고, 구스타보는 열심히 땀만 흘렸다. 셋은 전반 45분 동안 힘을 합쳐 유효슛 제로를 기록했다. 브라질 트리오는 올해 한국에서 만추를 즐길 수 있을까? 루마니아에서 날아올 새 감독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세 선수의 경기력에 비해 전반전 무실점 방어는 사치처럼 보였다.

후반이 시작되자 울산은 더 앞으로 나왔다. 가두고 팬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경기력은 사전 인터뷰에서 홍명보 감독이 내비친 자신감과 일맥상통했다. 홍명보 감독은 대전전 무승부 이후 “특별한 미팅은 없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전북과 울산의 차이를 놓고는 “전북은 각 팀에서 잘하는 선수를 데려오는 스타일이지만, 우리는 철학을 만들고 그에 필요한 선수를 데려와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못박았다. 압도적으로 내달리는 디펜딩챔피언이라면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홈팀 전북은 한껏 웅크린 채 상대의 펀치를 받아내며 버텼다.

김두현 감독대행은 후반전 교체 카드로 한 시간 넘게 두들겨 맞은 이유를 설명했다. 원정 서포터즈의 야유 속에 들어온 아마노 준은 팀 전체에 활력을 보탰다. 송민규, 조규성, 문선민도 가세했다. 전북은 교체를 통해 날카로워졌지만, 울산은 교체를 거치면서 무뎌졌다.

올 시즌 슛보다 머리를 매만지느라 더 바빠 보였던 조규성이 84분 그 머리카락으로 선제골을 터트렸다. VAR 교신을 통해 득점이 확정되자 현장 분위기는 한꺼번에 폭발했다. 조규성의 시즌 2호 골은 올 시즌 최다 관중이 기록된 전주성을 황홀경에 빠트렸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종목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스타가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했을 때 현장 온도는 최고조에 달한다. 인기 가수의 콘서트에서 최고 히트곡이 울려 퍼지는 순간과 비슷하다.

후반 추가시간이 거의 소진될 즈음, 문선민이 송민규의 패스를 팀 두 번째 골로 연결했다. 전북의 두 골에 관여한 조규성, 문선민, 송민규, 아마노 준은 모두 교체로 들어간 선수들이었다. 교체 카드가 이렇게 들어맞는 일은 드물다. 울산의 유효슛 7개는 모두 무위에 그쳤다. 전북의 유효슛 2개는 모두 골라인을 통과했다. 경기가 잘 풀리려니까 이런 일이 가능하다. 교체 투입자들이 득점을 만들었고, 슈퍼스타가 골을 넣었고, 상대 팀에서 데려온 선수가 도움을 기록하면서 전북은 안방에서 라이벌을 꺾었다. 완벽한 내용과 흥분되는 결과다.

시즌 두 번째 패배를 당하고도 홍명보 감독은 자신만만했다. 경기 후, 홍 감독은 “오늘 전북이 이겼다고 해서 바로 우리 밑에 있는 것도 아니다. 차이가 많이 난다”라며 순위표의 현실을 강조했다. 울산이 제자리걸음이라고 해도 여전히 전북보다 17점이나 앞선다. 박빙의 경쟁이 벌어졌던 최근 몇 시즌을 생각하면 2023시즌은 확실히 다르다. 김두현 감독대행도 “우리는 반등해야 한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이런 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그런 현실을 직시했다.

전북 선수단 버스 주변은 수많은 팬으로 가득했다. 운집의 목적은 ‘버스 막기’가 아니라 라이벌전 승리자들을 향한 응원이었다. 엄밀히 말해 울산전 내용은 과거 전북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후반전을 노리는 경기 계획은 K리그 5연패 클럽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날 결과만큼은 2023시즌 들어 가장 만족스러울 것이다. 팬들의 ‘오오렐레’ 음량도 물론이었다. 전북이 이제 남의 집 홈경기 분위기를 습관적으로 망쳤던 옛 모습을 되찾을지가 궁금해진다.

글, 그림 = 홍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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