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2023] (1) '드래프트 BIG3?' 고려대 박무빈 "팀을 위해 뛰는 선수 될 것"

조형호 2023. 6. 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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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들의 美생을 위해’ 2023 KBL 신인드래프트를 빛낼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여 보자.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첫 번째 미생은 고려대 주장 박무빈(G, 187cm)이다. 이번 드래프트 BIG 3(박무빈, 문정현, 유기상)로 꼽히고 있는 박무빈의 농구 인생을 파헤쳐 보자.

#아버지와 DB, 김재현까지. 박무빈에 농구 인생을 선물하다
박무빈은 동호인 농구를 즐기던 아버지의 영향에 따라 어린 나이부터 농구공과 친하게 지냈다. 원주에서 살았던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당시 부모님의 제안과 친구들의 권유로 DB 주니어 프로미 농구교실을 등록했다. 단지 취미 정도로 농구를 대했던 박무빈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다수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4학년 때 KBL 대회를 비롯해 많은 우승을 경험했고, 6학년 때는 모든 대회에서 단 1패도 없이 전관왕을 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5학년 때까지는 경기 전에 긴장을 좀 했었는데 6학년 때 자신감을 얻은 뒤로는 지금까지 긴장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재 고려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재현(G, 2학년)과 함께 DB 주니어 프로미를 이끌었던 박무빈은 광신중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농구와의 연을 포기했고, 일반 학생으로서 학업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그와 달리 엘리트 농구선수의 길로 들어선 김재현의 활약에 박무빈의 열정은 다시금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김)재현이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농구선수라는 꿈이 선명해졌어요. 부모님께 엘리트 농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공부와 농구를 병행하는 조건으로 허락해주셨죠.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평균 90점을 유지했던 것 같아요(웃음).“

#늦은 나이에 시작한 농구, 조급함과 슬럼프를 잊게 만든 태극마크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농구부가 있는 중학교를 알아봤어요. 그때 당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으니 늦은 감이 없지 않았죠. 휘문중과 배재중은 구력이 짧은 탓에 유급을 권유했어요. 하지만 홍대부중의 정병호 선생님께서는 유급 없이 선수 생활을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셨어요. 홍대부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한 박무빈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코트를 누볐다. 박무빈이 속한 홍대부중은 당시 강팀으로 평가받지 않았지만 첫 대회부터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후에도 각종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박무빈은 이후 홍대부중의 연계 고등학교였던 홍대부고에 진학했다. 농구를 시작하자마자 전국 대회를 휩쓸었던 그였지만 위기도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양쪽 햄스트링과 허벅지 근육 부상을 당하는 등 공백기를 가졌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농구 인생에서 긴 공백기를 맞이한 박무빈은 힘든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농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아마 고1 때일 것 같아요. 친구들의 활약을 보며 조급함을 느꼈고, 복귀하자마자 연속 부상에 답답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복귀 후 연령별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다시금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3관왕을 통해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고려대를 선택한 유망주에서 호랑이 군단의 심장이 되기까지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홍대부중과 홍대부고의 전성기를 이끈 박무빈은 고려대로 향했다. 여러 정상급 대학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그의 은사였던 이무진 코치의 조언과 동 포지션의 레전드 주희정 감독의 존재가 박무빈을 고려대로 이끌었다.

한편, 박무빈은 고려대 입학 직후 침체기를 겪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취소됐고, 정강이 피로골절로 인해 또 한 번의 긴 휴식을 가져야 했다. 2학년이 된 후 기록과 경기력 모두 상향 곡선을 그렸지만 고려대 입학 후 2년간 연세대와의 맞대결에서 모두 쓴맛을 본 박무빈은 칼을 갈기 시작했다.

”2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어수선하기도 했고, 저도 만족스럽지 못한 시즌들을 보냈던 것 같아요. 복수의 칼을 갈다가 작년에 정말 기분 좋은 시즌을 보냈고, 연세대와의 대결에서도 모두 이길 수 있어서 행복했죠. 첫 고연전도 정말 기억에 남아요.“

”대학리그와 MBC배도 기억에 남지만 고연전은 제가 죽기 직전에도 떠올릴 만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사실 고려대를 선택한 이유 중에 고연전도 큰 몫을 차지했거든요. 근데 막상 뛰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응원과 뜨거운 열기를 경험할 수 있었죠. 그때만큼은 NBA 스타들이 부럽지 않았어요(웃음).“

# 박무빈의 포부 ”순번보단 팀이 원하는 플레이에 초점“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끝날 때쯤 얼리 엔트리에 대한 제 소문이 많이 돌았고, 실제로 고민도 했었어요. 대학에 가기로 결정한 뒤에도 1~2년 정도 후에 프로에 도전장을 내밀고 싶었죠. 하지만 고려대에 입학한 뒤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고, 입학 후에는 단 한 번도 얼리 엔트리를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빠르고 폭발적인 공격력과 더불어 스타성을 겸비한 박무빈은 매 시즌 얼리 엔트리 후보로 지목되기도 했다. 중, 고교 시절 뛰어난 공격력을 통해 MVP와 우승을 다수 수상했던 그는 대학 입학 후 수비와 성실한 태도 등을 증명하며 십분 스텝업을 이뤄내고 있다. 결국 드래프트의 뜨거운 감자였던 박무빈은 4년을 마친 뒤 프로 무대에 도전하게 됐다.

“제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인 욕심보단 팀의 성적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선수라고 자부합니다. 팀이 필요한 부분이라면 슛이든, 수비든, 속공이든 해낼 자신이 있어요. 평상시에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인데 코트 안에만 들어서면 파이터로 변하는 것도 저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BIG 3라고 평가를 많이 해주시잖아요. 하지만 저는 순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요. 어떤 팀에 가고 싶다기 보단 저를 필요로 하는 팀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게 준비하려고 해요. 팀이 원하는 부분을 수행해내는 것이 선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건 제가 파악해야 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기회를 많이 받고 신뢰를 보내주는 팀에서 뛰고 싶네요(웃음).”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농구 인생에서 매 순간 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며 밝게 빛났던 박무빈. 과연 그가 프로 무대에서도 본인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시즌을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는 박무빈의 프로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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