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난 '닥터 차정숙' 통해 드러난 JTBC의 영민한 선택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3. 6. 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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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차정숙’, 중장년 시청층 겨냥하되 세련되게 만드는 JTBC 드라마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18.5%(닐슨 코리아).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최고시청률을 내며 종영했다. 시청률에 있어서 대박을 냈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긴 드라마였다. 기대했던 20% 시청률을 넘기지는 못했고, 뒤로 갈수록 애초 갖고 있던 드라마의 힘도 많이 빠졌다. 또 결국 이혼한 차정숙(엄정화)은 간이식을 받고 의사가 되어 개원하고, 서인호(김병철)는 병원장이 되고 최승희(명세빈)는 유산으로 받은 병원을 운영하게 되는 식으로 저마다의 해피엔딩을 그렸지만 그것이 최선이었는지는 미지수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대로 마무리된 느낌인데 남는 찜찜함 같은 게 있달까.

<닥터 차정숙>은 20년 간 전업주부로 살며 의사로서의 꿈을 잃었던 차정숙이 결국 다시 꿈을 꾸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남편 서인호가 자신을 속이고 불륜과 두 집 살림을 해온 사실에 절망하고, 간 이식을 받아야 살 수 있을 정도로 죽을 위기를 넘기지만 그 속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추구하게 된 차정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차정숙은 이혼을 선택하고 자신이 원하던 삶을 살게 되지만, 그렇다고 보다 과감한 선택은 하지 않는다. 이를 테면 서인호와 이혼하지만 그를 용서하고, 그 내연녀였던 최승희와도 또 그들 사이에 난 딸 은서(소아린)에게도 다가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그를 좋아했던 로이 킴(민우혁)에게는 확실한 선을 긋는다. 자신은 처음부터 그가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는 것.

이런 선택들은 다소 보수적이다. 물론 차정숙이 그 20년 간 전업주부를 했던 그 집으로부터 빠져 나와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는 건 보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지만, 그러면서도 서인호와 아들 서정민과 함께 의료봉사를 다니며 가족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는 모습은 여전히 차정숙이란 인물이 갖고 있는 보수성을 드러낸다. 즉 <닥터 차정숙>은 겉으로 보면 코미디와 로맨스가 의학드라마라는 외형을 쓰고 있어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그 액면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불치병 등이 소재로 들어있는 전형적인 가족드라마 형태다.

서인호라는 인물을 두고 차정숙과 최승희 같은 능력 있는 여성들이 대결하는 형태를 띠다가, 뒤로 가면 차정숙을 두고 서인호와 로이 킴이 대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적인 구도들이다. 또 곽애심(박준금)이나 오덕례(김미경) 같은 사는 방식이 완전히 다른 엄마들의 부딪침과 부침 역시 가족드라마에서 익숙하게 그려지는 구도이고, 서인호의 배다른 딸 서이랑(이서연)과 최은서가 갈등하는 구도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닥터 차정숙>은 그 액면을 보면 지극히 보수적인 가족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의 형태를 가져왔고 소재들도 과거의 익숙한 클리셰들을 끌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세련되게 포장되었다. 병원을 배경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는 그래서 전문적인 의학용어들이 설명 없이 들어갈 정도로 의학드라마의 색깔을 부여했고, 무엇보다 차정숙과 서인호를 연기한 엄정화와 김병철은 이 갈등 상황들을 때론 몰입시키면서도 때론 이완시키는 연기를 쥐락펴락 보여줌으로써 장르적인 세련됨과 재미를 부여했다.

아마도 이런 보수적인 소재나 메시지를 가져오면서 이를 세련된 방식으로 그려내는 그 지점은 <닥터 차정숙>을 비롯해 최근 JTBC 드라마들이 지난해와 비교해 연이은 대박 시청률을 만들고 있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종편 채널이 갖고 있는 중장년 보수적인 시청층들을 적극 공략하면서도, 그들이 또한 원하는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는 것. 이것이 <닥터 차정숙>이 최고시청률 18.5%를 기록한 원동력이다.

현재 JTBC에서 수목에 방영되고 있는 <나쁜 엄마>가 완성도도 뛰어나고 코미디와 휴먼드라마, 복수극 같은 다양한 장르들이 유기적으로 엮어진 수작이면서 동시에 시청률도 10%가 넘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건, 그 안에 익숙한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라는 전통적인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회귀물이 시대극의 색깔을 더해 진양철(이성민) 회장 같은 인물이 건드리는 레트로적 감성을 더한다거나, <신성한, 이혼> 같은 법정드라마가 그 안에 브로맨스와 멜로 그리고 결국에는 가족드라마적인 서사를 더해 넣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이들 작품들은 세련된 장르의 맛이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중장년 시청층이 전통적으로 관심을 갖는 소재나 메시지들이 담겨있다.

JTBC 드라마는 최근 들어 연달아 시청률에서 성공하고 있지만, 사실 2년 전만 해도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은 바 있다. 장르적인 세련됨을 추구하려 했고 또 완성도도 높았지만, 그만한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 <닥터 차정숙>이 보여준 건 그래서 JTBC 드라마가 찾아낸 해법이다. 다소간의 보수성이 갖는 아쉬움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 시청층을 공략하는 대중성을 우선적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간 시청률 같은 대중성에 목말랐던 JTBC 드라마가 이런 행보를 이어간 건 어찌 보면 당연하고 나름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충분히 대중적인 성취를 보이고 있는 JTBC 드라마는 이 기반 위에서 보다 완성도나 실험성에도 도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보인다. 결국 대중성과 완성도, 실험성 같은 것들이 균형을 이뤄 나가야 관심과 기대만큼 충분한 만족까지 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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