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날이지만 잔치국수는 못 드려요” 그 시절 요지경 가정의례법[선데이서울로 본 50년전 오늘]

박효실 2023. 6. 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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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엄앵란(왼쪽) 신성일 부부가 1964년10월 결혼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스포츠서울DB


편집자註 : 50년 전인 1973년 6월,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장식한 연예계 화제와 이런저런 세상 풍속도를 돌아본다.

[스포츠서울] 1964년 11월 14일.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배우 신성일, 엄앵란의 결혼식이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렸다.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톱스타 커플이 맺어지는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이었다.

영화제를 방불케하는 쟁쟁한 하객들은 물론이거니와 한편의 영화 같은 결혼식을 보려는 구경꾼까지 합세해 호텔 인근에 1200여대의 차량이 몰리며 도로가 마비됐다. 안전을 위해 현장에 배치된 경찰에 따르면 당일 인파는 약 4000여명으로 추산됐다.

예식장 입장권이 되어버린 청첩장이 고가에 암거래되기도 하는 등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런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결혼식의 한편에서는 예식도 올리지 못한 채 부부가 되는 사람도 많았던 시대였다.

어느 시대나 극과 극은 존재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한 정부가 1969년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한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300~400달러(약 39만~52만원)에 불과하던 시대에 허례허식을 줄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가정의례준칙에는 약혼식 폐지, 혼인 당일 혼인신고 등의 준칙이 마련됐다. 하지만 꼭 지켜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큰 성과를 보지는 못했다. 평생에 한 번이라는 생각에, 또 남의 눈을 의식해서 여전히 빚을 지면서까지 혼례에 거액을 지출하고 있었다.

1973년, 이번에는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공포된다. 주요한 내용은 이러했다.

우선 인쇄된 결혼 청첩장이나 회갑연 초청장이 금지됐다. 답례품도 금지였고, 대중음식점에서 하객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금지였다. 축화 화환은 2개까지만 가능했고, 보내는 사람 이름도 못 적게 했다. 식장에서는 양가 부모와 주례만 가슴에 꽃을 달 수 있었다. 법률인 만큼 위반시 처벌도 따랐다. 청첩장, 초청장을 보내거나 답례품을 주면 50만 원 이하 벌금을 매기겠다는 거다.

성대한 약혼식의 상징인 4단 케이크를 신랑 신부가 함께 자르고 있다. 자료사진 픽사베이


결국 6월1일, 이 법 시행을 앞두고 한바탕 난리(?)가 난다. 하루 사이로 많은 것을 못하게 되자 법 시행 전에 식을 올리려는 사람들로 5월의 마지막 주말, 전국의 결혼식장이 그야말로 북새통이 된 것. 하루 종일 숨 가쁘게 새 신랑과 새 신부를 양산(?)해 냈으니 생산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따로 없었다.

‘선데이서울’ 243호(1973년 6월 10일)에 실린 ‘의례법 발효 직전’ 화보는 몰려든 하객, 결혼식장에 붙은 빼곡한 신랑 신부 명단 등 난리통이었던 당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얼마나 이 법이 복잡하고 황당했으면 ‘대한뉴스’는 별도 설명프로그램을 만들어 영화 상영 전마다 틀어주기도 했다.

KBS ‘영상실록 1973’ 판에서는 복잡한 규정 때문에 결혼식과 장례식을 앞두고 어떤 사항은 되고 안 되는지를 관청에다 일일이 물어보는 조심성 병까지 낳았다고 했다. 자칫 벌금 폭탄을 맞을 판인데 물어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 여파는 곧 여기저기서 불거졌다. 인쇄된 청첩장을 금지하자 손으로 직접 쓴 청첩장이 등장했다. 선데이서울 245호(1973년 6월 24일) ‘로칼뉴스’란에는 손편지 청첩장이 등장한 소식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가정의례법 시행으로 청첩장을 인쇄 배포할 수 없게 되자 ‘안내장’이라는 이름으로 신랑·신부의 친지나 부형 친지·친척의 이름으로 손편지를 발송했다. 1장당 25원씩의 필경료를 지불하면 글씨 잘 쓰는 필경사가 이를 대필, 간략한 ‘메모’형식으로 서신을 가장해 청첩장을 돌린 것이다.

나라가 내놓는 정책에 국민은 금방 대책을 마련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언제 어디서나 유효한 듯하다. 개인이 인쇄된 청첩장을 돌리지 못하게 하자 이번에는 잡지 등 간행물이 결혼 공지를 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개인 경조사를 법으로 강제할만큼 그 시대의 절박했던 현실이 있었겠지만, 참으로 황당한 법률 중 하나였다.

이런 이상한 법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에도 종종 등장한다. 스위스에서는 밤 10시 이후에는 변기 물을 내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건물소음 문제로 만들어진 고육지책 법이었다. 세계적인 관광지 이탈리아 베네치아 광장에서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줘선 안된다. 비둘기 배설물이 문화유적을 부식시키는 경우가 많아서 만들어진 법이다. 국적불문 먹이를 주다 걸리면 벌금형이다.

혼례라는 일생의 잔치에 초대해놓고도 잔치국수조차 대접할 수 없었던 50년 전, 동방예의지국의 가정의례에 관한 우리나라 법률도 이런 희한한 법률에 버금간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자유기고가 로마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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