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자수’와 함께 이화학당 교과목으로 채택된 이것은?

윤희일 기자 2023. 6. 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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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재봉틀. 대전시립박물관 제공

인류는 오랜 세월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이 손바느질은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요구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옷을 만들고 수선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 이후 방직기·방적기 등이 나오면서 옷감을 만드는 공정은 기계화가 이루어졌지만, 옷을 만드는 마지막 공정인 바느질은 선사시대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바늘의 재질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기본은 모두 수작업이었다.

더 편하고 빠른 바느질은 인간의 숙원이었다. 그 숙원은 1840년대에 들어서서야 풀렸다. 당시 미국의 발명가 엘리아스 하우가 1846년에 최초로 재봉틀을 발명한 것이다.

재봉틀의 발명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바느질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는 하나의 ‘혁명’이었다. 재봉틀은 이후 전 세계로 빠르게 보급됐다.

우리나라에 재봉틀이 들어온 것은 1890년대로 알려져 있다. 5일 대전시립박물관에 따르면 1896년 이화학당의 교과목에 재봉과 자수가 등장했다. 1905년에는 미국의 싱거재봉틀 회사가 한국에 지점을 설치했고, 이후 국내에 많은 수의 재봉틀이 보급됐다.

이후 국내에선 1957년 ‘아이디알미싱’이 재봉틀 생산을 처음 시작했고, 1960년대에는 라이온, 파고다, 부라더, 드레스 등 다양한 브랜드가 신제품을 앞다투어 내놨다. 1970년대에는 재봉틀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정에 대량 보급됐다.

대전시립박물관이 인류의 바느질에 혁명을 일으킨 ‘재봉틀’의 이야기를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재봉틀과 함께 소개하는 특별전을 7월 25일까지 상설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전시회에 가면 그리운 재봉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재봉틀 전성기인 1920년부터 1960년대 국내·외에서 생산된 싱거테이블 재봉틀, 드레스테이블재봉틀, 아이디알재봉틀 등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싱거재봉틀. 대전시립박물관 제공

전시회에 나오는 ‘싱거테이블 재봉틀’은 1923년에 제작된 것이다. 하단의 페달을 밟아 재봉틀을 돌리는 방식이다. 상판 안에 재봉틀을 보관하고, 사용할 때는 뚜껑을 열어 재봉틀을 꺼내 고정하도록 만들어졌다. 재봉틀을 자세히 살펴보면 스핑크스와 기하학적 문양이 장식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20세기 초반 생산된 테이블 형태 재봉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드레스 테이블 재봉틀’은 여닫이 가구 형태의 재봉틀이다. 가구 전체에 붉은색을 칠했고, 자개로 무궁화, 봉황, 구름 등의 문양은 물론 수(壽), 복(福) 등 글씨 문양도 새겨져 있다. 여닫이문을 열면 발판과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박물관 관계자는 “전통적 문양이 들어간 가구에 재봉틀을 설치한 고급형 재봉틀”이라고 해석했다.

‘아이디알 재봉틀’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생산·수출한 ‘신한미싱제조’의 제품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근래까지 사용된 재봉틀인데 정교한 국내 재봉틀 제작기술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때 재봉틀은 각 가정에서 필수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가난했던 시절 한 푼 아끼고자 재봉틀로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낡은 옷을 수선해 입기도 했다. 심지어는 오래된 이불을 기워서 덮기도 했다. 집안에서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대전시립박물관 관계자는 “지금은 보기 힘든 재봉틀을 살펴보면서 향수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재봉틀의 발전과 역사적 의미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공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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