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 문명 ‘심장’이었던 곳… 내전· 테러에 극단적 빈부격차로 ‘신음’[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입력 2023. 6. 5. 09:15 수정 2023. 8. 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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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27) 콜롬비아 보고타
해발 2640m 위치… 무역으로 막대한 부 축적했던 콜롬비아의 수도, 한때 남아메리카 제일의 도시로 번성
3년간 ‘천일전쟁’ 10만명 희생에 바나나 농장 학살·좌익반군 봉기까지… 마르케스 등이 소설로 고발
남아메리카 제일의 도시로 성장한 보고타는 여전히 빈부 격차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콜롬비아 역사에서 4월 9일이 비어 있는 시간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날은 또한 다른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날은 모든 국민을 유혈 낭자한 전쟁으로 몰아버린 고독한 행위이다.”

‘폐허의 형상’에서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는 말한다. 4월 9일은 1948년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호르헤 가이탄이 암살당한 날이다.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로 자유주의자였던 가이탄은 비주류층의 지지를 받아 대선 후보에 올랐으나 보수파의 음모 속에서 살해당했다.

항의 시위에 나선 시민들이 대통령궁으로 행진하자 군대는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틀 동안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살해당했고, 콜롬비아는 내전 상태로 돌입해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폭력 시대’에 들어섰다. 협박과 암살, 테러와 전쟁이 이어지면서 모든 국민이 피의 강물에서 몸부림치고, 서로 끝없이 불신하는 노이로제 상태에 빠졌다. 1960년대 초까지 양측 희생자는 20만 명에 달했다.

보고타의 비극은 처음도, 끝도 아니다. 작품에 나오는 또 다른 암살 사건은 1914년에 일어났다. 자유당 대표 라파엘 우리베 우리베가 보고타 거리 한복판에서 대낮에 도끼로 살해당했다. 우리베는 콜롬비아 내전 당시 ‘천일전쟁’에 참여한 인물로, 1902년 내전이 종식된 후 자유당 소속으로 민중들 인기를 끌던 중이었다. 평범한 목수에 불과한 암살자들은 교도소에서 4년 동안 호화 생활을 즐기다가 풀려났다. 배후에는 대지주들 지원을 받은 보수당 정권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보고타는 해발 평균 약 2640m, 안데스산맥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약 1만2500년 전이다. 기원 무렵, 이곳에 거주하던 무이스카인은 기니피그를 길들이면서 번영을 거듭했다. 1537년 곤살로 케사다가 이끄는 스페인 침략자가 쳐들어왔을 때, 보고타 지역 인구는 약 50만 명에 달했다. ‘소금 민족’이라고 불렸던 무이스카인은 무역을 통해 황금과 보석을 모아들이는 등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안데스문명의 중심에 올랐다.

비극은 엘도라도 전설에 홀린 케사다가 리오그란데강을 거슬러 오르면서 시작됐다. 험난한 여정 도중, 산맥 한복판에 소금 마을이 있다는 말을 들은 케사다는 경로를 변경해서 현재 보고타 남쪽에 있던 바카타라는 마을에 이르러 무이스카인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538년 케사다는 갈대를 엮어 열두 채 집과 교회를 지었고, 1540년 산타페라는 이름을 거기에 붙였다. 이것이 보고타의 시작이었다.

1550년 산타페는 그라나다 신왕국의 정부 소재지가 되었고, 이후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빠르게 발전해 1717년에는 누에바그라나다 총독부의 수도가 되었다. 18세기 말,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자극받은 혼혈 백인 크리오를 중심으로 독립 열풍이 일어났다. 1820년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는 산타페를 해방한 후, 이름을 보고타로 바꾸고 독립국 그란콜롬비아의 수도로 삼았다. 스페인 침략 이후 고통받던 무이스카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스페인어 보고타는 무이스카의 언어인 치브차어로 바카타였다.

그러나 독립이 곧바로 행복과 번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고타를 찾아온 것은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향한 개인적, 지역적, 계급적 열망으로 인한 혼란과 분열이었고, 무정부 시대, 시민전쟁, 전횡 정치였다. 노예 제도의 존속 및 식민 권력의 미청산에 따른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국가체제를 정립하고 장악하기 위해 보수파와 자유파, 연방주의와 지역주의가 대립하면서 내전, 폭력, 독재 등이 현재까지 한없이 계속됐다.

‘하늘은 창백한 푸른 색조로 물들어 있었다. 동쪽으로는 반쯤 그늘진 산의 가장 높이 솟은 정상까지 황금빛 구름 조각이 점점이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의 입김으로 흩어진 발레리나의 엷은 옷자락 같았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독자적 경로를 연 호르헤 이삭스는 ‘마리아’(1867)에서 혼란한 현실 너머에서 안데스산맥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토착 문화와 전통을 되살리는 몽환적인 언어를 일으켰다. 이 작품은 시골 농장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 삼아 19세기 콜롬비아의 생활상을 그려낸다. 몽상과 현실이 뒤섞인 독특한 풍경을 창조한 이삭스의 솜씨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 후대 작가에게 영향을 끼쳐 낭만적 유토피아와 사회문제를 융합한 남미 특유의 문학, 즉 마술적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보고타 주택가 거리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관광 명소 중 하나인 보고타 대성당. 게티이미지뱅크

1886년 라파엘 누녜스 대통령은 연방주의 종말을 선언함으로써 콜롬비아를 중앙집권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내전은 그치지 않았고, 마침내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세 해에 걸쳐 피가 강물을 이루며 흘렀던 ‘천일전쟁’이 일어났다. 10만 명의 희생 끝에 전쟁이 보수파 승리로 돌아가면서 내전은 끝났으나, 국민 화합을 위한 정치는 부재해 도무지 갈등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베 암살 사건은 내전이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소용돌이’(1924)에서 호세 리베라는 야생 밀림을 배경으로 폭력이 소용돌이치는 콜롬비아 현실을 그려낸다. 그의 자연엔 낭만은 없고 야만만 가득하다. 협잡꾼, 사기꾼, 폭력배 같은 무법자가 암약하고, 고무 노동자들이 폭력에 노출된 채 비참히 살아간다. 가족을 먹여 살릴 희망으로 밀림에 들어선 자는 모두 가혹한 착취 속에서 좌절한다. “밀림이 사람들을 궤멸하고, 밀림이 그들을 붙잡고, 밀림이 그들을 삼키려고 그들을 불러요.”

1928년 이들과 같은 처지에 있던 바나나 농장 노동자들은 미국 과일 회사 유나이티드프루트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봉기했다. 진압 과정에서 보수 정부 지시를 받은 군대는 수백 명을 학살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성서’ ‘백년의 고독’에서 마르케스는 이 사건을 다룬다. 가상 마을 마콘도를 내세워 7대에 걸친 부엔디아 집안의 역사를 펼쳐낸 이 작품에 따르면, 군대는 노동자 3000명을 살해한 후 기차로 운반해서 암매장하고, 하늘은 학살을 슬퍼하듯 4년 11개월 2일간 비를 내린다. 학살을 계기로 손에 쥘 듯했던 마을의 번영도 거품처럼 씻겨 사라진다.

마콘도는 억압과 폭력이 반복돼 온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역사를 은유한다. 제목의 고독은 정치 불안, 부정부패, 빈부 격차, 인권 유린, 테러와 내전 등으로 얼룩진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뜻한다. 믿을 수 없는 일이 무수히 벌어지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이가 생기는 장소이기에 이곳에선 마법은 현실이 되고 현실은 마법이 되는 일이 얼마든 일어난다.

1930년 자유파 정부가 집권해 개혁정책을 펼치면서 잠시 봉합됐던 갈등은 가이탄 암살 이후 폭발해 아직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내전으로 이어진다. 폭력 시대가 잦아든 1960년 이후엔 좌익반군의 무장봉기로 전쟁과 학살이 있었고, 1980년대엔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메데인 카르텔을 이끌고 무법적 폭력과 테러를 멈추지 않았다. 부패한 권력도 가세해 국가 폭력을 통한 시민 탄압을 일삼았다. 불안과 공포는 지난 수십 년간 보고타의 일상 감각을 압축해 보여 준다.

에벨리오 로세로의 ‘군대들’은 한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연속 실종 사건을 통해 무장단체의 만행을 폭로한다. 좌익반군과 우익 민병대, 마약 밀매 자금으로 유지되는 두 집단은 납치와 살인, 강간과 폭력 등을 저지르면서 마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한다. 작가는 말한다. “이쪽 편, 저쪽 편, 그쪽 편, 그게 뭐가 중요해요? 누구든 다 똑같은 놈들인데.”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에서 바스케스는 죽음에 점령당한 보고타의 현실을 고발한다. 작품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선 매년 약 2만4000명이 이유 없이 살해된다. 폭력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희생자들 소식을 접하더라도 잠깐 사이 겉으로만 연민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폭탄 테러를 직접 겪은 화자 안토니오는 폭력에 더는 무감각하지 못한다.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던 그는 현장 희생자 리카르도의 집에 들렀다가 그의 아내도 비행기 폭탄 테러로 죽었음을 알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이미 과거에 일어났지만,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은 오래전부터 반복됐다. 우발적이지 않고 구조적, 필연적이다. 끝장내지 않는다면, 어이없고 억울한 일도 절대 멈추지 않을 테다.

죽음이 숱하게 쌓이는 와중에도 보고타는 발전을 거듭했다. 1912년 약 11만7000명이었던 인구는 1967년엔 약 100만 명을 넘었고, 2022년 말엔 약 1270만 명에 이르렀다. 남아메리카 제일의 도시로 성장했으나 보고타에서 극단적 빈부 격차, 폭력과 죽음은 별로 줄어들지 않은 듯하다. ‘백년의 고독’에서 마르케스는 말했다. “사십 년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소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의 보고타는 과연 이를 깨달을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용어설명

천일전쟁

1899년부터 1902년까지 콜롬비아에서 벌어진 내전. 연방주의를 주장하는 자유당과 중앙집권을 옹호하는 보수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세 해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약 10만 명이 사망했고, 콜롬비아 전역이 황폐해졌으며, 파나마를 미국의 영향권 아래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백년의 고독’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등에서 마르케스는 콜롬비아 역사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는 이 내전의 의미를 진지하게 곱씹는다.

메데인 카르텔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을 배경으로 활동한 마약 조직. 1970년대 중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설립해 이끌다가 1993년 살해되면서 해체됐다. 정부의 탄압을 회피하고 조직을 유지하려고 폭탄 테러, 암살, 납치 등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악명 높다.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에 따르면 “메데인에 사는 건 시체로 이 삶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에스코바르는 메데인을 ‘증오와 원한의 수도’이자 ‘폭력과 살인의 제조 공장’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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