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윤석열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안녕한가

전영기 편집인 2023. 6. 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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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재임 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을 때 들었다면서 전해준 말씀이 있다.

오랜 세월 지진, 해일, 원자폭탄 등 자연재해와 전쟁 참화에 시달려온 일본은 시스템과 인간들의 몸 자체가 위기 때 잘 짜인 매뉴얼에 따라 작동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행안부의 지침과 다르게 내린 경계경보 오발령에 대해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대응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는데 핀트가 좀 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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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전영기 편집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재임 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을 때 들었다면서 전해준 말씀이 있다. "신은 언제나 용서하고, 인간은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교황께서 지구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던진 얘기일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한 행위에 대해 반드시 보답한다. 좋은 행위엔 좋은 보답을, 나쁜 행위엔 나쁜 보답을.

5월31일 '대북 경보 혼란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한테도 자연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일이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공짜로 안전을 얻으려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이날 새벽 북한이 남쪽을 향해 도발적인 로켓을 쏴올렸을 때 일본 정부는 1분 만에 정밀하게 안내되는 안전문자를 발송했다. 반면 한국은 서울시가 로켓 발사 11분이 지나서야 알맹이가 없을 뿐 아니라 혼선만 일으킨 재난문자를 날렸다. 외신들은 "서울 시민들은 핵무장한 이웃 나라(북한)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그 위험과 대응방법에 대해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로이터통신)고 꼬집었다.

북한이 5월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울린 경보음을 듣고 휴대전화 안전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행안부는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연합뉴스

안전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지진, 해일, 원자폭탄 등 자연재해와 전쟁 참화에 시달려온 일본은 시스템과 인간들의 몸 자체가 위기 때 잘 짜인 매뉴얼에 따라 작동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일본만큼 재해가 많지 않은 나라여서인지 재난 대응 시스템이나 인간적 대처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 죽음을 가져온 6·25 전쟁도 교훈은 안 되는 모양이다.

윤석열 정부의 재난 대응 시스템은 미덥지 못하다. 군과 행정안전부, 서울시가 따로 논다. 이들을 엄하고 긴밀하게 조정해야 할 대통령실의 프로페셔널한 능력에 회의감도 든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행안부의 지침과 다르게 내린 경계경보 오발령에 대해 "안전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과잉이라고 할 정도로 대응하는 게 원칙"이라고 했는데 핀트가 좀 안 맞았다. 잘못된 경계경보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다음부터 경보를 믿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선의에서 비롯됐다 해도 서울시장이 '양치기 소년'이 되어선 곤란하다.

규정대로 했기에 책임질 일도 없다는 행안부의 관료주의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비상상황에선 규정에 따라 지침을 하달했다 하더라도 제 뜻대로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법. 이번 서울시와의 문자 소통 건이 그런 경우인데 더 적극적인 방법을 썼어야 하지 않을까. 탄핵으로 직무정지된 장관의 부재를 틈타 기강이 해이해진 건가.

'민방위 연습' 반복해 몸에 배게 해야

시스템 문제보다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20년 이상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받아온 민간의 재난 대비 훈련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몸은 안 움직이고 도상 계획과 상부 보고로만 끝나는 민방위훈련이 이어지고 있다. 바깥에서 훈련용 재난방송에다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려도 대부분의 학교, 직장, 관공서 내부에선 하던 일을 계속한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훈련 같지 않은 이런 훈련이 한 세대쯤 반복되다 보니 실제 상황에선 무용지물임이 드러났다. 만일 우리가 민방위훈련을 계속 우습게 보면 대가를 치르는 날이 올 것이다. 좋은 시나리오도 있다. 5·31 비상경보 혼란 사건을 재앙적 사태를 미리 막아보라는 축복의 신호로 반전시킬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의지를 갖고 6월 민방위훈련부터 도상 훈련 대신 실제 몸을 움직이는 훈련을 하면 된다. 국민도 '안전 디딤돌' 앱 등에서 자기 집 주변의 대피소 위치를 확인하고 발을 움직여 이동해 보면 좋을 것이다. 연습 없이 안전 없다. 안전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 공짜 안전을 바라다 맞이할 참화는 나쁜 행위를 자연이 용서하지 않는 것처럼 필연적이다.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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