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여자 넷이 말하는 나이가 든다는 것…연극 '20세기 블루스'

강애란 2023. 6. 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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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친구들이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다.

다만 나이 드는 것, 늙는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는 각기 다르다.

친구들이 대니가 자신들의 사진을 전시하면 사람들이 '저 여자들에게 세월이 잔인했네'라고 평가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대목은 이런 씁쓸한 사회 분위기를 짚어낸다.

신체적인 노화가 거부하고 싶은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사회적인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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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사별·치매 등 현실적인 이야기 유쾌한 분위기서 풀어내
연극 '20세기 블루스'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늙은 여자로 사는 법을 모르겠어!"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친구들이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다. 40년을 알고 지낸 이들은 근황을 전하며 자신들이 나이 들었음을 체감한다. 다만 나이 드는 것, 늙는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는 각기 다르다.

지난달 30일 두산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20세기 블루스'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피하고 싶기도 하고,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는 나이 듦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의 작품으로 '나이, 세대, 시대'를 주제로 삼은 올해의 두산인문극장 프로그램 중 하나다. 두산인문극장은 두산아트센터가 매해 하나의 주제를 정해 공연, 전시, 강연을 선보이는 기획 시리즈다.

연극은 유명 사진작가 대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지난 40년간 세월의 흔적이 담긴 친구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싶어 하지만, 실, 맥, 개비 세 친구는 늙어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길 꺼린다.

사실 나이 드는 일을 달가워하는 이는 거의 없다. 얼굴에는 주름이 지고, 허리는 구부정하게 굽고, 행동은 느려지고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다. 이런 노화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이는 부동산 중개인 실이다.

실은 얼굴에 낙서라도 한 듯 군데군데 검은색 매직이 묻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탄력 잃고 처진 피부를 끌어당기는 리프팅 시술로 주름을 없애겠다는 실은 자신의 늙은 얼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다.

대니는 실에게 "그게(주름이) 없어지면 네가 아니지"라고 말하지만, 그 누가 실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피부'를 효능으로 강조하는 화장품 광고가 쏟아지는 사회에 살면서 자글자글하게 진 주름을 자랑스러운 나이테로 여길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 사회는 늙은 여성의 얼굴을 아름다움과 대척점에 놓인 것으로 여긴다. 친구들이 대니가 자신들의 사진을 전시하면 사람들이 '저 여자들에게 세월이 잔인했네'라고 평가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대목은 이런 씁쓸한 사회 분위기를 짚어낸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체적인 노화가 거부하고 싶은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사회적인 변화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개비는 집에 남편을 두고 호텔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모두가 의심하는 것처럼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개비는 남편이 먼저 죽고 홀로 남게 될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일종의 '과부 연습'이다.

그렇다고 개비의 남편이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다. 개비는 그저 남편이 없는 삶을 어찌 살아야 할지 두려울 뿐이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 엉뚱한 과부 연습에 나선 것이다.

실제 우리는 개비가 두려워하는 배우자와의 사별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서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낸다. 연로한 부모님은 세상을 먼저 떠나기도 하고, 대니의 엄마 배스처럼 치매를 앓기도 한다. 장성한 자식은 부모 품을 떠난다.

연극은 노화, 사별, 치매 등 달갑지 않은 소재들을 현실적으로 다루지만, 대체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극을 끌고 간다.

개비는 과부 연습 덕분에 호텔에서 지내며 써본 샴푸, 린스 등 어메니티(편의용품) 향이 기가 막힌다고 자랑해 웃음을 터트리고, 대니는 친구들과 의견 충돌로 어색한 순간 토스트를 해주겠다며 공연장에서 진짜 버터를 프라이팬에 녹여 식빵을 굽는다. 공연장에 버터 냄새가 한 가득 퍼진 가운데 네 친구는 야금야금 토스트를 먹어 치운다.

네 친구의 대화에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성소수자의 결혼 합법화 등 미국 현대사도 녹아있다. 이는 네 친구가 지나온 세월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공감대가 낮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측면도 있다.

공연은 이달 17일까지.

연극 '20세기 블루스' [두산아트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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