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빈의 플랫폼S] 獨총리실이 가보라고 등떠민 도시의 '반전 스토리'

이광빈 입력 2023. 6. 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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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하던 옛 동독 탄광도시 바이스바써, 스타트업 도시로
주민 참여형 문화 형성…젊은층 유입·신나치 퇴출

[※ 편집자 주 : 지속가능한(sustainable) 사회를 위한 이야기들을 담아낸 '플랫폼S'입니다. 지속가능과 공존을 위한 테크의 역할과 녹색 정치, 기후변화 대응, 이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 조정 문제 등에 대한 국내외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독일 바이스바써 지역의 갈탄 탄광 [바이스바써=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동네 아저씨 차림의 긴 곱슬머리 중년 남성이 시장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독일 동부 폴란드 접경지역의 소도시 바이스바써 시청 앞. 토르스텐 푀취 시장(52)은 한독통일자문위원회 한국 측 자문위원들을 시청 안으로 안내했다. 한독통일자문위원회는 통일부와 독일 연방총리실 간 차관급 민관협의체다.

그리고 2시간여 도시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예정된 시간을 30분 이상 넘길 정도였다. 대상이 투자자들도 아닌데 말이다.

주말인 토요일, 시장 외에 출근한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푀취 시장이 회의실을 뒷정리하고 시청 대문을 걸어 잠갔다. 푀취 시장은 자문위원단 버스 짐칸에 출퇴근용 자전거를 싣고 올라타 도시의 주요 시설을 직접 안내했다.

한국통일자문위원회의의 올해 회의 주최 측인 연방총리실은 공식 회의 일정 전 현장 답사 지역으로 왜 바이스바써를 추천했을까.

푀취 시장에게서 발견한 키워드로도 이해가 갔다. 탈탄소, 탈권위, 소통.

바이스바써의 토르스텐 푀취 시장 [바이스바써=연합뉴스]

'한물간' 탄광에 쇠락한 유리공예 공업…주민 대거 떠나가

바이스바써는 통일 후 상당 기간 옛 동독지역 중에서도 쇠락해가는 대표적인 소도시였다.

동서독 분단기에 갈탄(석탄의 일종) 채굴과 유리공예로 번성했으나, 통일 후 지역 경제가 무너져갔다. 유리 공예 제품은 서독 지역의 생산품에 밀렸다. 유리 공예 공장들은 한 곳을 제외하고 문을 닫았다. 갈탄 매장량이 줄어드는 데다, 연방정부의 탈석탄 정책 영향으로 광업도 빛이 바래져 갔다.

1990년 통일 당시만 해도 3만8천명에 달한 인구는 일자리가 줄어들자 2016년엔 1만5천명 수준으로 감소했다. 주로 젊은 층이 일자리를 찾아 떠나가면서 도시는 계속 늙어갔다.

더구나 이 일대는 극우 세력이 기승을 부려왔다. 인근 소도시인 호이어스베르다에선 통일 다음 해인 1991년 신나치주의자 수백명이 쇠 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망명 심사를 받던 외국인들의 거주지를 습격해 수십명을 다치게 했다.

바이스바써에도 극우 세력의 손길이 뻗치기도 했다. 신나치주의자들이 한동안 한 건물을 무단 점유하기도 했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빈 건물이 넘쳐나며 도시를 을씨년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숲으로 변한 옛 갈탄 탄광지역에 다니는 관광 열차 [바이스바써=연합뉴스]

도시 재생으로 반전…젊은 층 유입

그러나, 도시는 2010년대 중반 정도부터 반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시 당국은 탈석탄화로 인해 유럽연합(EU)과 연방정부의 지원금을 타내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뛰었다. 지원금은 도시 재생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시 당국은 지원금을 바탕으로 물류망 확대를 위해 베를린과 연결된 철도의 복선화 등을 연방정부 등과 협의하고 있다. 동서독 분단 전만 해도 복선이었는데, 동독 시절 소련이 전쟁 배상금을 명목으로 철로 하나를 뜯어가 단선이 됐단다.

갈탄이 채굴되고 난 넓은 황무지는 호수나 숲으로 변신했고, 관광객들은 협궤열차를 타고 경치를 즐기고 있다.

푀취 시장은 세계자연기금(WWF) 관계자들을 초대해 지역 주민들을 배려하는 방식의 탈석탄화 추진에 동의를 구하기도 했다. 탄광 지역이 환경단체와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이다.

탄광 도시는 이제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설 유치도 조율 중이다.

도시 입구 부분에 줄지어 있던 빈 건물들도 철거했다. 대체로 옛 동독 시절 지어진 아파트들이었다.

아파트들이 철거된 자리에는 주택들이 들어섰다. 베를린 외곽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주택단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스타트업 기지·공연장으로 탈바꿈한 옛 유리 공예 공장 [바이스바써=연합뉴스]

가동을 멈춘 유리 공예 공장은 스타트업 전진기지로 변했다. 100여년 전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공장은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공장 옆에 숙박시설을 만들었다.

특히 이 작은 도시엔 10여년 전부터 시민 참여형 문화가 탄탄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도시의 중앙부에는 언제나 시민들이 나와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가 마련됐다. 온오프라인 소통과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지역 시민사회는 성장해갔다.

시민사회의 성장은 극우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로 이어졌다. 시 당국은 신나치주의자들이 점유한 건물을 매입해 철거해버렸다. 그러자 신나치주의자들은 다른 도시로 떠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곳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는 젊은 층이 늘어났다. 시 당국은 새 거주자들 간에 온라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도록 해 적응을 도왔다. 새 거주자들에게는 전화 수화기만 든다면 '원스톱' 행정 서비스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다. 정착에 필요한 모든 행정 정보부터 스포츠 동호회 정보까지 한 전화 라인에서 해결해주고 있다.

이제 바이스바써는 인구감소 도시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바이스바써 시청사 [바이스바써=연합뉴스]

독일 총리실이 바이스바써로 안내한 까닭은

옛 동독 지역은 대도시를 제외하고 인구 감소 현상을 겪고 있다. 옛 서독의 시골 지역도 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옛 동독 지역의 감소 폭이 더 크다. 바이스바써를 다녀온 뒤 베를린에서 이틀간 열린 한독통일자문위원회 회의에서 독일 측 인사들은 옛 동·서독 지역 간 임금 격차와 옛 동독 지역의 극우 부상 문제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 노령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회의 내용이 이렇다 보니 소멸해가는 옛 동독지역 도시에서 '모범 도시'로 변신한 바이스바써가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연방총리실이 베를린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린 폴란드 접경지역으로까지 안내한 이유일 테다.

lkbin@yna.co.kr #플랫폼S #지속가능사회 #한독통일자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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