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이 한반도 운전대 대신 잡나? 미국서 바라본 한미일 역학관계

최광철 미주민주참여포럼 대표 입력 2023. 6. 5. 06:03 수정 2023. 6. 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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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일본의 가교 역할
한미일 정상.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아무런 전제 조건없이 만날 용의가 있다'고 언급한지 이틀만인 29일 북한은 박상길 외무성 부상을 통한 담화에서 '일본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발표하면서 교착상태의 한반도 상황 변화 가능성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지난 2002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방북 당시 처음으로 13명의 일본인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5명을 일본으로 돌려보냈으나, 8명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총 17명이 납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27일 연설에서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의한 일본인 피해자의 귀국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통한의 극치"라며 "정부로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을 위한 고위급 협의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박상길 부상을 통한 담화에서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악수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연합뉴스


그동안 아베 정권 등 일본 보수정부에 대한 비호감을 떠나 현재 기시다 총리를 통해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외교적 행보들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철저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는 일본정부가 과연 전격적인 북일 정상회담과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북한 당국과 모종의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지 심도있는 상황파악과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날로 심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북핵 위협의 고조 속에서 떠오르던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를 벗어나 일본이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적 잣대에서 북한을 지나치게 내몰아 중러에 블럭화하지 않고 남북미일 교류협력이란 새로운 관계를 생성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을 불러오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한국 정부를 대신해 일본 정부가 모종의 역할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이러니하다. 고착된 한반도의 분단상황과 북핵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한 대응을 명분으로 군사대국화와 아시아 패권을 꿈꿔왔던 일본은 지난 시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외교무대에서는 아웃사이더였다.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가교역할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북미대화가 왕성히 이루어지는 길목마다 일본은 그들 공공외교 자금의 영향을 받은 미국내 인사들을 내세우거나, 때로는 아베수상 등 고위관료들이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북미대화의 성공을 방해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상황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많은 한국 국민들이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펼치는 외교가 다소 거칠고 충동적이며 근시안적이라고 느끼는 사이, 외무상 출신의 외교 달인 기시다 총리가 펼치는 전방위적 국익우선 외교는 일본의 국격과 위상을 크게 뒤바꾸는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1972년 9월 29일 중국과의 전격적인 외교관계 수립을 이루어 낸 경험이 있다. 당시 1971년 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에서 크게 자극받은 다나카 가쿠에이 신임 총리는 베이징을 방문하여  주은래 총리와 전격적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일본은 80년대 말까지 고도성장을 이어가며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악수하는 미일 정상. 연합뉴스


그동안 한반도 관련 외교무대에서 소외되었던 일본이 외교실력이 빈약한 한국 정부의 방심을 틈타 이제 한반도 문제의 핵심가교 역할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이 지난 1972년처럼 미국과 상의 없이 북일 정상회담을 위해 물밑 대화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필자의 생각은 다소 다르다. 현재의 미국주도 국제 패권 질서에서  일본은 미국 정부와 치밀한 사전 협의를 하고 있을 것이고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합당한 수많은 명분과 이유가 도처에 깔려있다.

북한은 1930년대 민생당 사건 등 역사적 관점에서 중국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속되는 경제재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하고 또한 주민의 40%가 기아상태에 빠진 심각한 식량난 속에 경제 재건을 위해 일본의 전후 보상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장이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고 미중 패권시대의 틈을 살려 미국의 지원 속에 중국을 견제하고 북일수교를 통해 동북아 지역의 외교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유럽의 독일과 더불어 일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세우는 등의 지원을 통해 동북아에서 일본의 적절한 역할을 원한다.

미국 상황은 더욱 급박하다. 현재 재선에 도전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평균 37%에 불과하며 공화당 트럼트 전 대통령에게나 디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2024년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대다수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만큼, 아니 그보다 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들을 미국내로 유치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폭지원하면서 서방세계를 단결시켰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이민자 문제, 범죄증가 등 미국의 여러 사회경제적 이슈들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외교적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지지율 회복을 위해 크게 만회할 만한 곳은 북미관계 수립뿐이다. 북미관계 수립은 내년 대선과 총선에서 민주당의 사활이 걸린 중대한 이슈인 것이다.

미국은, 1991년 한국 정부와 함께 유엔에 동시 가입하여 현재 영국과 캐나다 등 140여 개국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북한을 인권과 핵, 미사일 개발 등의 이유로 그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악의 축"이나 "불량국가"로만 규정하여 대화조차 터부시해왔다.

그러나 미중 패권시대에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정치군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반도체, 배터리 등 IT산업의 핵심광물인 리튬, 아연, 마그네슘, 희토류 등 풍부한 자원과 양질의 노동력을 가진 북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이 막대할 것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된다면, 과연 미국 정부의 외교적 방향타가 어디로 향할지는 자명하다.

미국 국회 의사당. 연합뉴스


다행히 미국 연방의회도 행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외교적 관여와 대화를 진행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전 정전협정 70주년을 맞는 올해 3월1일 미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최고참 중진인 브래드 셔먼 의원은 북한과의 즉각적인 외교적 대화를 통해 "한국전 종전선언, 평화조약, 북미연락사무소 설치" 등 북한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추진하라는 "한반도평화법안 H.R.1369"를 발의했다.

지난 117기 회기에 발의됐던 동일한 법안에 46명의 연방의원들이 지지했었고, 118기 회기의 4분의 1의 시간이 지난 현재 이 법안에 28명의 연방의원들이 이미 서명한 채 점점 지지세가 확산하고 있다. 한반도평화법안을 지지하는 미연방의원들은 남북미 교류협력이 미국과 동맹국 한국의 국익에도 정확히 부합함을 천명하고 있다.

셔먼 의원은 한반도평화법안의 지지확산을 위해 노력하는 미주민주참여포럼 KAPAC 회원들과 함께 한국의 3.1독립만세운동일을 기념하여 지난 3월1일 연방의사당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의회의 법안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이 평화법안 자체가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결정에 중요한 자극과 동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누군가의 가교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 정부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입장으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가 취했던 "전략적 인내"에서 볼 수 있듯이, 동맹국 정부의 의사를 존중하는 미행정부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현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지 않는 한 미국에 그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한국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 이제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 직접 나서느냐 아니면 일본을 가교역할로 세우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의 경직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일본 정부의 가교역할 가능성에 큰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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