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재고 사상 최고 수준인데… 정부서 나오는 “경기 바닥론” 해석

세종=전준범 기자 2023. 6.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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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재고지수 246.5 급상승했지만
자본시장은 “바닥 쳤다”…목표가 올려
정부도 시장 관점에 동의 “흑자 전환”

한국의 월간 반도체 재고지수가 처음으로 200을 웃돌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가 반도체 수출에 직격탄을 날린 영향이다. 하지만 자본시장 분위기는 암울한 경제지표와 달리 고무돼 있다.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찍었고, 반등할 일만 남았다는 기대감에서다. 정부도 시장의 이런 희망적인 전망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반도체 경기 부활과 함께 하반기 중 무역수지도 개선될 것이란 입장이다.

올해 4월 우리나라의 반도체 재고지수가 246.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4월 29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내 나노종합기술원을 방문해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 4월 반도체 재고지수 246.5 ‘사상 최고’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4월 우리나라의 반도체 재고지수(2020년=100)는 246.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재고지수가 200을 돌파한 건 198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다. 업황 둔화와 함께 지난 1월 190을 처음 넘어선 반도체 재고지수는 2월 197.1까지 올라갔다. 이후 3월에는 187.4로 내려가며 개선되는 듯하더니 1개월 만에 200을 훌쩍 뛰어넘었다.

최근 정부에서 나온 반도체 관련 다른 지표들도 재고지수와 결을 함께한다.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올해 4월 반도체 출하는 전월 대비 20.3% 감소했다. 출하가 줄면서 반도체 재고는 전월보다 31.5% 증가했다. 국내 제조업의 큰 축인 반도체 재고가 쌓이면서 4월 제조업 재고율은 130.4%로 전월 대비 13.2%포인트(P) 상승했다. 제조업 재고율 역시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5년 이후 최고치다.

또 한국은행이 발표한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에 따르면, 올해 4월 한국의 교역조건을 나타내는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년 전보다 0.5% 하락한 83.86으로 집계됐다. 25개월 연속 내림세다. 한은은 “반도체를 포함한 주요 수출 품목 가격이 내려가면서 4월 수출가격(-13.2%)이 수입가격(-12.8%)보다 더 크게 떨어졌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반도체 재고는 쌓였지만, 자본시장 분위기는 좋다. 애널리스트들은 반도체 경기가 바닥을 치고 곧 반등할 것이라며 주요 반도체 기업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삼성전자 서초사옥. / 뉴스1

◇ 쌓인 재고에도 들뜬 자본시장 “바닥 쳤다”

여러 통계 지표가 보여주는 반도체 경기는 이처럼 암울할 따름인데, 시장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주식시장에선 연초 5만4000원대까지 추락했던 삼성전자 주가가 7만원대를 회복했고, 지난 3월 7만원대로 내려갔던 SK하이닉스 주가는 현재 10만원을 웃돈다. 미국에서는 엔비디아가 회계연도 2분기 매출액 전망치를 시장 관측보다 50%가량 높은 110억달러로 제시하면서 투자자를 흥분시켰다.

통상 반도체 기업 주가는 약 6개월 뒤 시장 상황을 먼저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토대로 현 상황을 해석해보면, 당장 반도체 관련 지표는 최악이지만 시장은 이미 반도체 경기가 바닥에 도달했음을 감지하고 시선을 ‘반등’에 두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증권가 전문가들은 최근 감산에 돌입한 반도체 기업 재고가 2분기에 정점을 찍은 뒤 낮아질 것으로 본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올해 하반기부터 DDR5(D램) 점유율 회복, 감산 효과 본격화에 따른 재고 하락으로 실적 개선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며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8만원에서 9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송명성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여러 경기 선행지표가 상승 반전한 상황에서 3분기 이후부터는 반도체 주문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추 부총리는 하반기 우리 경제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 연합뉴스

◇ 자신감 넘치는 정부 “하반기는 지금과 다른 모습”

최근 주요 연구기관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는 와중에도 정부가 반도체 업황 개선에 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건 시장의 이런 긍정적 관측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하반기가 되면 지금과 다른 모습의 실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행도 우리나라 반도체 경기도 서서히 살아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규환 한은 조사국 동향분석팀 과장은 “중국의 스마트폰 소비가 작년에는 부진했지만,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시차를 두고 점차 회복하면서 반도체 경기 부진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연말로 갈수록 스마트폰 소비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부활은 수출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조금씩 긍정적인 신호가 잡히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2% 줄어든 522억4100만달러를 기록하며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했으나, 조업일수 영향을 배제한 일평균 수출액은 작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24억달러대를 회복했다. 5월 대중(對中) 일평균 수출액도 4억9400만달러로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작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15개월째 이어진 무역수지 적자 행진도 멈출 수 있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지난달 22일 세종시 모처에서 취재진과 만나 “하반기 수출이 월별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체적인 흑자 전환 시기에 대해 장 차관은 “9월이 될 수도 있고, 8월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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