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칼날
칼을 그려 넣었구나
제 눈인데요
잘리고 저며지고 다져져
눈앞이 까끌까끌해진다
칼날을 씻으면 매운 눈을 말갛게 헹군 느낌
멜론이나 하모니카가 아니군
팔을 등 뒤로 거두는 사람
반복되지만 새롭게
나의 칼은 패배한다
칼끝으로 가슴을 쓱,
긋자마자 스스로 동강이 난다
깜박거리며 칼날을 감춘다
이기린(1965~)
미술 시간에 한 학생의 그림을 보고는 “칼을 그려 넣었구나” 하자, 그 학생은 “제 눈인데요” 한다. 순간 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칼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인이 눈을 칼로 본 것은 단순히 모양이 닮아서가 아니라 무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의식 깊숙이 잠재돼 있던 상처가 밖으로 표출된 것이다. 시인은 ‘기억의 딸’이란 시에서 5월 광주 당시 “강의실보다 거리로 더 많이 출석”했다면서 “나에게는 쉽게 짓무른 양파 냄새”가 난다고 했다.
칼은 부엌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요리할 때 자르고 저미고 다지는 데 쓴다. 고추나 양파를 자를 때면 눈앞이 까끌까끌해지면서 눈물이 난다. 시인은 칼날을 씻으며 “매운 눈을 말갛게 헹”구는 한편 마음도 씻어내려 한다. 다 잊혔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새로운 듯 반복되는 패배한 느낌,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다. 시인은 눈을 깜박이며 “가슴을 쓱” 그은 칼날을 등 뒤로 감춘다. 영혼까지 다친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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