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확고한 목표 의식과 혜택이 커뮤니티 확장의 핵심 동력”

백상경 기자 입력 2023. 6.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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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혁신신약살롱 창립자 인터뷰
좁지만 확고한 주제와 범위로… 소속감과 ‘교류의 편익’ 끌어올려
‘버티컬 커뮤니티’의 강점 살려… 업계 아우르는 지식 공동체 구축
‘세상에 없던 약을 만들어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로 서로의 노하우와 연구 결과, 아이디어를 기꺼이 나누는 혁신신약살롱은 ‘좁고 깊은 영역’에서 전문성을 나누는 최근 커뮤니티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은 혁신신약살롱 창립자인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 혁신신약살롱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팬데믹이 끝나고 사람들 간 만남이 활발해지면서 커뮤니티 비즈니스 업계에도 다시 활력이 돌고 있다. 근 3년간의 위기를 극복하고 보다 고도화·전문화된 커뮤니티가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특히 주목을 받는 곳이 있다. 전국 각지의 혁신신약 개발자들이 모여 새로운 지식을 고민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커뮤니티 ‘혁신신약살롱’이다. 2012년 대전 내 소수의 신약 개발자 모임에서 출발해 이제는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거대한 지식 공동체가 됐다. 비즈니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참여자끼리 공동 연구를 하거나 유망한 바이오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등 유·무형의 경제적 성과도 꾸준히 창출하고 있다.

혁신신약은 기존에는 치료제가 없었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신약을 뜻한다. “세상에 없던 약을 만들겠다”는 어렵고 제한적인 주제는 곧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확고한 목표의식이 됐다. 또 이는 이른바 ‘버티컬 커뮤니티’(세분화한 주제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드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됐다. 서로의 성과와 최신 정보를 가감 없이 공유하는 살롱 분위기는 참여 욕구를 끌어올리는 확실한 혜택으로 작용했다. 살롱 창립자인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를 만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 오히려 빛난 혁신신약살롱의 성공 요인에 대해 들어봤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 전략의 변화와 미래를 분석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5월 2호(369호) 스페셜리포트에 실린 인터뷰를 요약해 소개한다.

―살롱의 시작은 어땠나.

“2012년 8월, 대전 유성구 전민동의 한 횟집에서 가진 모임이 시작이었다. 당시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아시아태평양 R&D 연구소장을 맡아 혁신신약 전문가를 만났는데, 예상 밖으로 ‘단절’을 느꼈다. 연구에 매진하는 전문가들이 서로 만나면 분명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지적 교류를 위한 모임을 추진했다.”

―좀 더 폭넓은 주제를 정하지 않은 이유는….

“처음엔 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의 모임으로 ‘바이오 살롱’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세밀한 주제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혁신신약으로 범주를 좁혔다. 그 덕에 살롱이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생겼다. 세상에 없던 약을 개발하겠다는 공동의 목표와 연대 의식을 갖춘 전문가 집단으로 정체성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모티브가 됐던 커뮤니티가 있나.

“코펜하겐 학파가 모델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닐스 보어가 1918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론 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시작된 지식 커뮤니티다. 세계 곳곳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활발하고 자유롭게 교류한 결과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 중 하나인 ‘코펜하겐 해석’을 선보인 바 있다.”

―실제로 살롱 운영은 어떻게 이뤄지나.

“페이스북에 개설한 온라인 그룹이 주요 활동 장소다. 각자 논문이나 임상 결과, 제약·바이오 업계의 뉴스를 포스팅하고 서로 댓글을 달면서 의견을 나눈다. 현재 멤버는 7000명 정도다. 여기에 지역별로 열리는 오프라인 모임이 있다. 강연·토론과 뒤풀이가 이뤄진다. 사전에 약속한 기본 규칙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지역별로 알아서 독립적인 모임을 갖는다.

―살롱 참여 조건은 없나.

“없다. 개방성이 커뮤니티의 힘이자 생명력이다. 참가비도 참여자들에게 뒤풀이에 쓸 1만 원 안팎만 받는다.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들이지만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얻어가니까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인다.”

―경쟁사에서 일하는 살롱 내 멤버들도 있을 텐데 정보 공유가 문제가 되진 않나.

“모두가 잠재적 경쟁 상태인 건 맞지만, 연구 분야의 특성상 나 혼자 앞서 가기엔 목표가 워낙 어렵다. 모두가 풀릴지, 안 풀릴지조차 모르는 난제를 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서로 도와서 좋은 결과를 내보자는 마인드가 커뮤니티 전반에 깔려 있다.”

―결국 교류의 편익이 크기 때문에 활동이 활발하다는 건가.

“그렇다. 범위가 좁은 혁신신약 업계에서 이미 비슷한 연구를 해본 사람의 노하우나 연구 실패·성공담을 솔직하게 듣는 것은 시험 전에 오답 노트나 족집게 강의를 듣는 것과 같다. 사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신약 개발자는 후발주자에게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정보 공유가 향후 협업에서 시너지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가 있어서다.”

―기억에 남는 성과는….

“살롱을 통해 연구자와 창업자, 투자자가 의기투합해 실제로 바이오 벤처기업 ‘큐로셀’을 세운 것이다. 2016년 설립된 큐로셀은 국내 최초로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치료제를 개발한 곳이다. 2015년 미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면역세포 치료제를 연구하던 김찬혁 당시 캘리포니아 생물의학연구소 수석연구원(현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을 대전 살롱 강연자로 초청했다. 강연에 참석했던 김건수 현 큐로셀 대표가 창업 의지를 밝히며 따로 연락을 해왔고 두 사람을 연결해 준 결과 실제 창업까지 이어졌다.”

―조직을 매우 수평적으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살롱엔 ‘의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사말, 축사, 지정좌석 등 모두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석학이 와도 테이블 구석이나 행사장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커뮤니티 본연의 목표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살롱도 비즈니스가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모임이었다. 혁신신약 개발이 인생의 소원 같은 사람들이 있다. 미답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데 도움을 줄 사람들이 살롱에 모이니 결국 모두가 오고 싶은 모임이 됐다. 본연의 가치가 없는 공간이라면 아무리 와 달라고 사정을 해도 오지 않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백상경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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