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집회 대신 친중 행사… 中, 홍콩서 ‘천안문’ 완전히 지웠다
민주화 함성과 불빛은 꺼지고, 올해는 친중 단체가 자리 선점
중국 민주화 시위를 지도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천안문(天安門) 사건 34주기인 4일, 홍콩 최대 공원인 빅토리아 파크에선 중국 지방 특산물 판매 행사가 열렸다. 친중 단체인 ‘홍콩 26개 성급동향사단(省級同鄕社團) 연합’이 마련한 행사장 입구엔 ‘홍콩의 조국(중국) 귀환 26주년 경축’이라고 적혀 있었다. 빅토리아 파크는 천안문 사건(1989년) 이듬해인 1990년부터 코로나 팬데믹 확산 전인 2019년까지, 매년 6월 4일 천안문 희생자 추모 집회가 열리던 장소였다.
홍콩 당국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2020년 집회를 금지한 이후 3년 만인 이날, 방역이 해제됐음에도 추모 집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경찰 수천 명이 공원을 에워싸고 검문을 벌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코로나를 틈타 주도면밀하게 진행해온 ‘천안문 사태 지우기’가 성공한 것이다. 2019년엔 18만명이 넘는 사람이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하지만 올해 이 광장에선 ‘천안문’이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친중 쇼핑 행사가 대신 채웠다. 홍콩 반환 기념일은 7월 1일이지만 한 달 앞서 행사를 열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비교적 언론·집회 자유가 보장되던 홍콩에선 중국에서 금지하는 천안문 추모 집회가 30년 동안 열려 왔다. 하지만 중국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등을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 홍콩보안법을 2020년 5월 제정하며 천안문 집회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에 나섰다. 동시에 코로나 방역을 내세워 그해부터 천안문 추모 집회를 불허했다.
2021~2022년에도 중국 당국이 집회를 막고 빅토리아 파크를 봉쇄하면서, 공원 주변을 100여 명이 행진하는 수준으로 집회는 쪼그라들었다. 나아가 코로나가 종식된 올해는 천안문이 ‘6월 4일의 홍콩’에서 아예 사라졌다. 천안문 사건 이후 줄곧 추모 집회를 주최해온 ‘홍콩시민지원 애국민주운동연합회’가 중국 지도부의 수사와 압박에 2021년 9월 공식 해산한 탓에 지난해부터는 주최자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천안문 사건은 앞서 1986년 일어난 학생들의 민주화 시위 탄압에 반대했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사망(1989년 4월)이 촉발한 추모 집회가 민주화 요구 시위로 확산하면서 발생했다. 1989년 6월 4일 중국 정부는 군을 동원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 일대에서 민주화를 외친 학생과 시민을 유혈 진압해 수많은(국제적십자 추정 약 3000명) 희생자를 낳았다.
중국 지도부는 이 사건을 ‘정치 풍파(風波)’로 규정하고 언급을 금기시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류쓰(六四)’ ‘5월 35일’ 등 천안문 사건을 우회적으로 가리키는 말은 검색조차 안 된다. 지난달 29일 크리스 탕 홍콩 보안국장(장관)은 “며칠 내 ‘특별한 날’이 온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려는 자들을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홍콩에서조차 ‘천안문’이나 ‘6월 4일’이란 말을 입에 담지조차 못 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4일을 전후해 중국 수도 베이징에선 ‘천안문’ 외에도 많은 것이 사라졌다. 지난해 10월 익명의 반정부 현수막이 내걸렸던 베이징 하이뎬구의 고가도로 ‘쓰퉁차오(四通橋)’는 도로 표지판이 자취를 감췄다. 중국 길 찾기 앱에선 이 고가도로의 검색 자체가 막혔다. 중국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강제 여행’을 떠났다. 3일 대만 중앙통신사는 “원로 반체제 여성 언론인 가오위가 지난 1일 보안 요원들에 끌려 허난성 뤄양으로 갔다”고 전했다. 2004년 4월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후야오방 전 총서기 15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해 헌화했던 인권운동가 후자는 최근 허베이성 장자커우의 한 리조트에서 사실상 연금 생활 중이라고 한다.
한편 지난해 3기 출범 이후 장기 집권 체제를 굳혀가는 시진핑 주석의 ‘천안문 지우기’에 굴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소수이지만 올해도 있었다. 홍콩에선 지난 3일 천안문 사건을 기념하는 소규모 시위를 벌인 8명이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 체포된 홍콩 예술가 산무는 “홍콩인, 우하오징(겁내지 마라)!”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언론 통제 가운데서도 홍콩 명보는 이례적으로 당국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4일 사설에서 “당국은 ‘6·4 사건’의 구체적인 사상자 수 등 주요 역사적 사실을 발표한 적이 없고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홍콩의 목사 등 기독교인 361명이 서명한 ‘6월 4일 기념일 기도문’은 기독교 매체 크리스천타임스에 4일 자 전면 광고로 게재됐다. 이들은 “우리가 겁먹지 않게 하시옵소서”라고 적었다.
중국과 대립 중인 대만에서는 2~4일 천안문 사건을 다룬 연극 ‘5월 35일’이 공연됐고, 4일엔 타이베이 중정기념당 인근에서 추모식이 열렸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4일 트위터에 ‘오늘은 6월 4일. 언젠가 중국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두려움 없이 창작하길 바란다’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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