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만개 부품 거의 국산화… 누리호 신속한 문제 해결은 그래서 가능했다

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2023. 6.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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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누리호, 볼트·너트 같은 작은 부품까지
일일이 국내에서 설계·제조...
발사 직전 통신 이상 밤새 해결
소프트웨어까지 자체 개발했기 때문...
‘국산 발사체’ 목표에 300개 기업 동참
이런 ‘하모니’가 가장 큰 성과
그래픽=양진경
그래픽=양진경

지난 5월 25일 누리호 3차 발사는 이제 우리나라도 우주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과거 우주에 대한 도전은 먼 나라 이야기였지만, 자라나는 세대에게 이제 우주는 당연한 선택지가 되었다. 한때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에서 힘든 시대를 묵묵히 견뎌온 부모님 세대에게도 이보다 더한 뿌듯함은 없을 것 같다. 이처럼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가 굉음을 내며 우주로 향하는 모습은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고 모두를 하나로 모았다. 누리호가 주는 메시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국산 우주 발사체로서 과정을 보면 그 의미가 명확해진다.

이번에 발사된 누리호는 원래 2차 발사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2021년 10월 21일 1차 발사는 헬륨 탱크의 결함으로 아쉽게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 놀랍게도 항공우주연구원은 불과 3주 만에 이를 극복할 새로운 설계를 도출했다. 하지만 탱크를 개조해야 하므로 2022년 상반기로 예정된 2차 발사 일정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2차 발사에 사용될 누리호가 이미 조립까지 마친 상태라 새 설계로 고치기엔 시간상으로 무리였기 때문이다. 해서 작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덜 조립된 3차 발사용 누리호를 앞당겨 사용했다. 이렇게 3차에 사용될 누리호로 2차 발사를 추진하고, 그동안 2차 발사용 누리호를 3차에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토록 신속한 문제 해결은 설계부터 제작까지 누구의 도움 없이 우리 스스로 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2022년 6월 15일 예정된 2차 발사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산화제 탱크에서 센서 이상이 발견되었고, 세부 점검을 위해 발사대에서 내려 다시 조립동으로 옮겨야 했다. 조립된 발사체를 다시 분리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상황은 심각했다. 그러나 항공우주연구원은 일주일도 채 안 되는 동안 문제를 해결하고 6월 21일 발사에 성공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 역시 독자 기술의 힘이다. 누리호는 무려 37만개 부품으로 이루어졌지만, 볼트나 너트와 같은 작은 부품까지 일일이 설계하고 국내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용 부품 일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100% 국산화 했다는 의미다. 그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어도 즉시 분석하고 해결할 역량을 확보한 것이다.

이렇게 진행된 두 차례 시험 발사 결과 누리호는 예상보다 높은 성능을 보였다. 700㎞ 고도에 1.5톤 위성을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1.9톤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불과 두 차례 발사로 선진국과의 격차를 상당히 좁혔다. 일부에서는 다소 높은 가격을 지적하지만 국산 발사체의 경제적 의미는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2021년 세계 우주 산업 규모는 3860억달러이지만, 이 중 발사체 분야는 57억 달러로 1.5%에 불과하다. 우주 산업에서 제일 큰 분야는 위성 산업으로 무려 72%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 시장으로 진출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위성에 필요한 부품이나 측정 장치들은 실제 우주 환경에서 검증되지 않으면 써주지 않는다.

실용 위성을 탑재하는 누리호 3차 발사의 임무는 여기에 있었다. 이를 위해 700㎞ 고도에 올라갔던 1차, 2차 발사와 달리 3차 발사는 궤도가 바뀌었다. 고도는 550㎞로 낮지만, 위성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태양전지판이 항상 태양을 바라보는 궤도가 필요했다. 주탑재위성인 180㎏ 무게의 차세대 소형위성 2호에 실린 핵심 기술 검증 장치 여러 개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부탑재위성으로 10㎏ 이하의 초소형 위성 7기가 실렸는데, 여기에는 군집위성으로 구성된 도요샛 4기가 포함되었다. 애초 도요샛은 러시아 발사체를 사용할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긴급히 누리호로 옮겼다. 국산 발사체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민간 위성 업체들이 제작한 다른 초소형 위성 3기 역시 중요한 검증 임무가 주어졌고, 누리호는 그 마중물 역할을 맡았다. 1.5%에 불과한 발사체 산업의 국산화가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3차 발사 역시 쉽지 않았다. 5월 24일 발사 몇 시간을 남기고 통신 이상이 발견되어 중지되었다. 우주 발사체에서 이런 일은 늘 있지만, 중요한 점은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연구진들은 밤을 새워 문제를 찾았고, 결국 해결했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까지 자체적으로 개발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바로 다음 날인 25일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비록 도요샛 4기 중 1기를 포함해 부탑재위성 2기가 아직 신호가 잡히지 않았지만, 주탑재위성 및 나머지 위성들은 정상 작동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첫 번째 도전에서 실용 발사에 성공하는 발사체는 드물다. 앞으로 남은 세 차례의 추가 발사에서도 누리호는 국산 위성들의 검증을 맡을 것이다.

누리호 제작에 300여 개나 되는 국내 기업이 참여한 것은 이처럼 국산 발사체라는 거대한 목표를 위해서였다. 필자의 회사도 엔진을 만드는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사업적으로만 따지면 1년에 단 몇 개의 부품을 생산하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참여기업 그 누구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항공우주연구원은 업체들을 발굴하고 설득하면서 무려 10여 년간에 걸쳐 결과를 만들어 냈다. 어렵고 복잡한 과제일수록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런 면에서 독재 체제나 통제 국가가 어쩌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누리호가 보여준 가장 큰 성과는 국가적으로 어렵고 중요한 과제를 마주했을 때, 설령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는 민주주의의 우리 사회가 이를 충분히 감당하고 극복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과학으로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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