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 K대중문화가 진정 자랑스러우려면
‘에스파’ ‘아이브’ ‘뉴진스’에 공통점이 있다면? 손쉽게 4세대 걸그룹 아이돌이라는 점을 떠올리겠지만, 데뷔 시점 혹은 현재까지 그룹 내에 미성년자가 속해 있다는 사실도 있다.
아이돌, 아역배우 등 아동·청소년의 미디어 속 노동은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한류 시장의 성장에 따라 선망의 대상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을 꿈꾼다고 해서, 또래들이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무리한 스케줄로 거듭되는 건강 악화, 이승기 전 소속사로 표면화된 임금 체불 등 대중문화예술 업계의 착취는 팬들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특히 불합리한 이슈의 상당수는 미성년자라는 지위에서 비롯된다. 어린 나이의 성공은 향후 업계에 안착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수준의 좁은 관문을 뚫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아동과 청소년들은 성인들이 짜놓은 착취구조와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도 그저 참는 선택밖에 할 수 없다.
일부 대중의 시선 역시 이들의 권리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훗날의 영광을 위해 선택한 것이니 당연하다는 논리이다. 극소수의 성공 사례를 두고, 미성년자 다수의 고통과 착취를 덮어버리는 비정상적인 행위가 용인되는 것이다. 누구나 수십억 연봉의 대기업 임원이 될 수 있으니, 사회초년생 때에는 최저임금 이하를 감당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대중문화예술업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심지어 아동과 청소년의 꿈을 볼모로 말이다.
산업혁명 시기, 석탄 사용이 증가하자 영국에서는 두세 뼘 남짓의 좁은 굴뚝을 청소하기 위해서 몸집이 작은 아동들이 동원되었다. 심지어 굴뚝 청소 중 불을 지피다가 유아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아동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스스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사회가 야만적인 행위를 용인했었다. 오늘의 한국이 얼마나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학습권 보호, 폭력 행위 금지, 연령대별 촬영시간 제한, 인권보호관 제도 등이 반영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관련 법안 소위를 통과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일찍이 적용되던 시스템이 뒤늦게나마 한국에서 검토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승기법’이라며 주목받기도 했다.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연습하고 일할 수 있으니 꿈을 꺾는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점은 악독하게 생태계를 구축해 온 기획사, 제작사들이 반성은커녕, 법안 개정을 막기 위한 로비를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빌보드 차트에 진입하는 K팝, 넷플릭스 상위권을 휩쓰는 K드라마의 뉴스가 어느새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면에는 스태프가 갈아 넣어지는 노동 환경, 아동과 청소년을 향한 착취가 밑거름으로 쓰이고 있다. 학대 수준으로 일하는 미성년자가 나의 ‘최애’라면, 팬으로서도 당장 활동을 말리고 싶어지는 게 상식이어야 한다. 이렇게 성공하는 K대중문화가 자랑스러울 수도 없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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