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6·25전쟁, 의사, 그리고 부산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2023. 6.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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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 신경과 전문의·메디컬티스트

다시 유월이다. 이번 유월로 우리는 6·25전쟁 발발 73년째를 맞이한다. 필자가 의사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텐데 그중 한 사람은 가공 인물이다. 누구일까?

A 씨는 평양의전을 나와 교토제국대학을 졸업했고 광복 후 김일성의대의 산부인과 교수로 일했다. 하지만 새로운 정권에는 적극 협력하지 않아 회색분자로 찍혔고, 평양이 폭격을 당할 때 상태가 위급한 어린 소녀를 수술한다며 당 간부의 수술을 뒤로 미룬 일이 빌미가 되어 괘씸죄로 끌려간다. 평양 함락 직전에 패주하는 북한군에게 총살형을 당했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평양의 주인이 UN군으로 바뀌었을 때 동료의사들은 신분 보장과 생계를 위해 국군 군의관으로 자원입대하지만 A 씨는 남북 어느 쪽의 편도 들기 싫다며 입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UN군이 철수하자 하는 수 없이 도망자 신세가 되어 혈혈단신 월남한다. 그리고 아들을 찾는다며 부산과 거제의 포로수용소를 배회하다 적성분자로 체포되었다 풀려난다. 생계를 위해 사무장 병원에 동업자로 취업하지만 꺾이지 않는 고지식함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사무장이 가짜 의사 행세를 하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불화를 일으킨다. 억하심정을 품은 사무장은 A를 고정간첩으로 고발해 옥고를 치른다. 석방 후에는 세상과 담을 쌓고 장의사에서 ‘염쟁이’로 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환자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권력과 돈을 후순위로 두었기에 남북 양쪽에서 모두 미움만 받았다.

B 씨 역시 북한 출신에다 경성의전을 나온 일본 유학파로 경성의전에서 일하다가 뜻을 품고 평양으로 돌아간다. 분단되자 김일성의대 외과 교수가 되어 사실상 북한의 대표적인 외과의사로 인정받는다. 기독교신앙을 고수하고 정권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미운털이 박힐 법도 했지만 그의 명성과 실력 때문에 북한 당국은 그를 함부로 하지 못하고 예우해 준다. 전쟁이 터지고 평양이 함락될 무렵 후퇴하는 북한군이 그를 끌고 가려 했지만 탈출에 성공한다. UN군 평양 입성 후에는 A 씨와 달리 국군 야전병원에서 부상병을 치료했다. 아들과 월남해 부산의 육군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는 점 때문에 방첩부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다행스럽게 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이후로는 부산 영도에 전쟁 난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천막진료소를 세웠고 평생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C 씨는 경북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대학에 합격했지만 광복을 맞자 귀국해 부산여고 3학년에 편입했고, 졸업 후 서울여자의대에 입학한다. 의대 5학년 때 6·25전쟁이 터지자 의대 부속병원에서 부상병 치료에 나선다. 처음에는 국군을 치료했지만 곧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을 치료하는 처지가 된다. 어린 부상병이 눈에 밟혀 전선의 부상병 치료에 자원한 것이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꾸게 된다. 남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군의관에 자원입대한 것이니까. 낙동강과 지리산에 종군했고 금강전투에서 국군에게 잡힌다. ‘빨갱이’ 군의관 딱지가 붙어 포로수용소와 교도소를 전전했고 ‘부산여자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모진 고초를 겪었다. 감옥에서 풀려나와 복학해 마침내 의사가 된다.

이 세 사람 모두의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같이 극적이지만 그중 한 사람은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인물이다. 누구일까? 정답은 A 씨다. 황석영의 소설 ‘한씨연대기’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 한용덕이다. 1972년에 소설로, 1985년에는 연극으로 나왔다. B 씨는 부산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장기려 박사(1911~1995)다. 전쟁 후 부산을 제2의 고향 삼아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했다. 그가 세운 천막진료소는 대학병원으로 성장했다. C 씨는 류춘도 의사(1927~2009)다. 부산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1953~1968).


이 세 의사의 이야기 속에 모두 부산이 등장한다. 전쟁 중 박화목과 윤용하가 머리를 맞대어 가곡 ‘보리밭’을 쓰고, 윤이상이 첼로를 연주했으며, 피란민 이중섭과 김환기는 고단한 삶을 소박한 화폭에 담았던 곳이 부산이다. 그들 사이에 치열하게 산 의사들도 있었음을 한번은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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