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마이클 조던을 눈앞에서 놓치지 않으려면

이위재 스포츠부장 2023. 6.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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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선수 앤서니 은퇴 새삼 화제
선수 평가 얼마나 어렵나 보여줘
AI시대도 개인 잠재력 다 못 봐
새로운 시대 인재 감별법 개발해야

미 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던 지난달, NBA 역사에서 전설로 꼽히는 카멜로 앤서니(Anthony)라는 선수가 39세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2003년 신인 선발 전체 3순위로 프로 생활을 시작, 19년 동안 1260경기(정규리그 기준)를 뛰면서 2만8289점을 넣었다. 역대 최다 득점 순위 9위다. NBA 통계가 체계화한 1970년대 초 이후 대략 5000명 가까운 선수가 이 무대를 밟은 것으로 집계된다. 앤서니는 그중 9등에 해당하는 업적을 이룬 셈이다. 농구 같은 미국 내 인기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가 되려면 대략 300대1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매년 1만8000여 명 대학 선수 중 60명만 신인 선발에서 간택을 받는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NBA에 들어간 선수들 중에서도 앤서니는 5000명 중 9등, 0.2% 안에 드는 업적을 남겼으니 그야말로 ‘초특급 선수’라 볼 수 있다.

선수 생활 말년 LA 레이커스에서 뛰던 카멜로 앤서니 [위키피디아]

그런데 앤서니 은퇴에 맞물려 거론되는 선수가 있다. 2003년 당시 앤서니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2순위로 지명됐던 다르코 밀리시치(Miličić)다. 선택권을 쥐고 있었던 팀(디트로이트 피스턴스)은 앤서니보다 밀리시치가 낫다고 보고 그를 골랐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밀리시치는 NBA에서 10년 동안 2813점만 넣은 채 은퇴했다. 성과가 앤서니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NBA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뛰던 시절 다르코 밀리시치 [위키피디아]

사실 더 유명한 선수 선발 실패 사례는 1984년에 일어났다. 2순위 지명권을 가졌던 팀(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은 켄터키대 출신 샘 보위(Bowie)라는 센터를 뽑았는데 그 역시 기대와 달리 평범한 성적(통산 5564점)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때 보위에게 밀려 3순위로 다른 팀(시카고 불스)이 받아간 선수가 마이클 조던이었다. 위대한 조던을 못 알아본 팀 관계자들은 그 이후에도 두고두고 조롱을 받고 있다. 이 일화들은 좋은 선수(인재)를 감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보여준다.

마이클 조던과 함께 23번은 가장 유명한 백넘버가 됐다. / 조선 DB

지나고 보니 어이없지만 사실 그땐 두 팀 관계자뿐 아니라 농구계 다른 종사자들도 앤서니나 조던이 그렇게 탁월한 재목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우선 ‘스펙’에 현혹됐다. 농구 선수 스펙에서 흔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키다. 밀리시치(213㎝)나 보위(216㎝) 모두 키가 경쟁자보다 컸다. 그들은 “농구에선 무조건 키야”라는 오래된 통념을 굳게 믿다 보니 다른 성공 요인을 간과했다. 밀리시치는 근성이 부족했고, 보위는 부상이 잦았다. 반면 앤서니나 조던은 승부욕이 남달랐고, 경기를 풀어가는 농구 IQ(지능)가 뛰어났다. 스펙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스펙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자질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스펙이 말해주지 않는 헌신성과 공동체 목표에 대한 열정, 협력을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 재능에 불을 붙여줄 수 있는 능력은 더 면밀한 관찰을 거쳐야 드러나는 법이다.

시대에 따라 인재상이 변하는 것처럼 농구에서도 경기를 좌우하는 선수 기준이 달라진다. 전에는 무조건 키 큰 선수를 앞세우고 골밑 공략에 골몰했다면 이젠 외곽과 골밑 균형, 나아가 키는 작아도 남다른 외곽 슈팅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는 세상이 왔다. 앤서니와 조던은 그런 패러다임 전환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과거 성공 기억에 매달리다 보면 새로운 시대 선수(인재) 가치를 판별하고 흐름을 읽는 데 뒤처진다. 그 결과는 코앞 보석도 못 알아보는 무지, 그리고 그 무지로 인한 저(低)성과다.

AI(인공지능)가 면접을 보고 채용을 결정하는 시대라지만 AI가 인간 잠재력을 온전히 간파할 수는 없다. 새로운 인재상을 세우고 발굴하는 체계를 잘 갖춰 놓지 않으면 마이클 조던이 농구 팀에 지원해도 몰라보는 뼈아픈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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