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이 풍비박산 낸 광복회, 새 회장 선출 총회도 기자 막았다[기자의 시각]
“안 됩니다. 나가세요.”
지난달 25일 광복회 새 회장을 뽑는 총회가 열린 서울 서대문구 임시정부기념관 대강당. 지난 4년간 ‘정치 편향’ ‘공금 횡령’ ‘역사 왜곡’ ‘파벌 싸움’ 등 온갖 논란으로 풍비박산 난 광복회가 우여곡절 끝에 새 지도부를 뽑기로 한 날이었다. 대강당은 대의원, 지부장 등 선거인 209명을 비롯해 선거 참관인, 국가보훈처 직원 등 300여 명으로 북적댔다.
하지만 광복회 관계자는 기자가 대강당에 들어가려고 하자 가로막았다. 후보 6명의 마지막 지지 연설, 선거인 209명의 투표 진행 상황, 그리고 개표 결과와 당선자의 소감 연설 등을 취재하려고 했지만 제지당한 것이다. 광복회 측은 “선거 모든 걸 비공개 진행하기로 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대강당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연간 정부 예산 20여억원을 지원받는 공법 단체의 회장 선거였다. 진짜 그런 규정이 있긴 한지 물었지만, “선거 결과가 나오면 불러주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코흘리개 아이부터 중·고등학생, 대의원 명찰을 달지 않은 신원 미상의 사람들은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대강당을 드나들던 상황이었다. 국민적 관심 사안을 알리려는 정당한 취재만 가로막힌 꼴이었다. 총회 휴정 시간에 잠입 아닌 잠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광복회는 2019년 김원웅 전 회장의 불법 이익 사업, 공금 횡령 논란으로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1965년 광복회 설립 이후 회장이 임기 중에 사퇴하는 일은 없었다. 웬만하면 임기를 채웠다. 그런 그가 지난해 2월 중도 사퇴했다는 것은 조직이 얼마나 무너져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8개월 뒤 그는 암 투병을 하다 고인이 됐다.
문제는 광복회가 오랫동안 부실 회계, 방만 운영, 정실 인사 등으로 곪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원로는 “광복회가 예전에는 독립운동을 직접 한 1세대가 회장으로 있어 위계가 섰고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윤리의식이 살아있었다”면서 “그런데 리더십이 이들 후손인 2세대로 넘어가면서 ‘내가 더 잘났네, 너는 못 났네’ 하면서 이전투구를 벌이게 됐다”고 했다. 대기업 임원 출신 한 광복회원은 “광복회가 과거엔 작아서 별문제가 안 됐지만 회원 수가 계속 늘어나 이젠 9000명에 달할 정도의 대규모 단체가 됐다”면서 “보다 촘촘한 제도를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 더는 주먹구구는 안 된다”고 했다.
이번 회장 후보 6명은 정치 성향 등 모든 면에서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광복회가 더는 망가지면 안 된다. 쇄신하고 회복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한목소리로 외쳤다. 사적 단체로 전락했다는 지탄까지 받으며 신뢰를 잃은 광복회가 이번에 높은 지지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을 새 회장으로 뽑으며 재기할 기회를 잡았다. 여러 개선 방안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선될 것 중 하나는 조직의 투명성, 개방성 제고가 아닐까. 밀실 행정·회계 논란의 원인인 폐쇄성에서 벗어나 문을 활짝 연 광복회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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