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내 비타민"...박찬호, 동양인 두 번째 MLB 100승[그해 오늘]

이연호 입력 2023. 6. 5. 00: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05년 6월 5일, 캔자스시티전 승리로 노모 히데오 이어 동양인 2번째 영광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 된 뒤 1997년부터 5년 간 평균 15승 활약
메가톤급 FA계약 맺고 텍사스 이적했으나 '먹튀' 오명...스트레스에 원형 탈모도
2010년까지 17시즌 간 아시아 최다 124승 거두고 은퇴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등판일 뿐이다” 지난 2005년 6월 5일(한국 시각) 동양인으로선 역대 두 번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100승을 거둔 후 박찬호가 언론을 통해 밝힌 소감이다. 그는 2010년 MLB 은퇴 시즌에 결국 MLB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 투수가 됐고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 중이다.

박찬호 선수가 지난 2005년 6월 5일(한국 시각) 미국 캔자스시티 카우프먼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2회 전력 투구하고 있다. 이 경기에서 박찬호는 1승을 추가하며 대망의 100승 고지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1996년 4월 7일 미국 프로야구 MLB의 LA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 경기에 2회 다저스 선발 라몬 마르티네즈가 강판 당하자 낯선 동양인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만 22세의 젊은 그 투수는 시카고 타선을 상대로 4이닝 7탈삼진 무실점 쾌투를 선보이며 첫 승을 따냈다.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지 2년여 만의 첫 승이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MLB 정복은 그렇게 첫걸음을 내딛었다. 세계 최고의 프로야구 무대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첫 승을 거두자 국내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박찬호는 이후 5일 뒤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선 첫 선발승을 따내는 기염을 토하는 등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첫 해 5승을 수확했다.

이듬해인 1997년 박찬호는 전해의 성과를 인정받아 팀의 5선발 자리를 꿰찼고 이해 14승 8패에 평균자책점(ERA) 3.38, 192이닝,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1.14로 수준급의 성적을 거뒀다. 시즌 초부터 파죽지세의 활약을 보이자 우리나라에선 박찬호의 선발 등판일에 지상파 중계가 편성됐고 그가 승리를 거둔 날 국민들은 그 얘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그의 활약은 ‘골프 여제’ 박세리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시름에 빠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과 희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연평균 213⅔이닝을 던지며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연평균 15승)를 챙겼다. 특히 2000년에는 18승 10패, ERA 3.27, 217탈삼진의 눈부신 피칭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MLB에서도 손꼽힐 만한 특급 투수 반열까지 올랐다.

이 같은 성적을 바탕으로 2001년 시즌 뒤 텍사스 레인저스와 그해 자유계약선수(FA) 최고 대우인 5년 총액 6500만 달러의 메가톤급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그 이후 성적이 눈에 띄게 하향 곡선을 그리며 ‘FA 먹튀’의 오명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텍사스 이적 후 허리 부상 등에 시달리며 3년 간 거둔 승수가 고작 14승에 불과하자 그는 한물간 투수 취급을 받았다. 동료들의 신뢰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러나 박찬호는 와신상담을 꿈꾸며 묵묵히 재활에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에 원형 탈모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고통은 비타민”이라고 되뇌며 인고의 시간을 지나온 그에게 영광의 순간이 결국 다시 찾아왔다.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2005년 6월 5일 미국 캔자스시티 카우프먼스타디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한 그는 5이닝 간 11안타를 맞고 6실점했으나, 홈런 4방을 앞세워 무려 14점의 지원 사격에 나선 타선 덕에 승리 투수가 됐다. 투구 수 107개 가운데 70개가 스트라이크였으며 최고 구속은 151km(94마일)였다. 이로써 박찬호는 일본의 노모 히데오에 이어 두 번째로 동양인 100승 투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11년 만, 1996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9년 만의 일이었다.

그는 “나 혼자 거둔 100승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해 준 데 감사드린다”며 주위에 공을 돌렸다. 역경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끈질긴 정신력을 바탕으로 이룬 대업이었다.

이후 박찬호는 2010년까지 부진과 재기를 거듭하며 MLB에서 17시즌 활약한 끝에 노모 히데오의 123승을 넘어 124승째를 올리고 MLB 아시아 투수 역대 최다승 기록을 새로 썼다. 박찬호가 통산 100승을 거둔 지 18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이 자리는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에게만 허락된 자리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