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는 한숨을 잤을까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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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주름살 펴져라.
하지만 가정의 달을 지나며 가족들을 위한 행사, 모임, 선물 때문에 지출이 늘어나 6월에 카드이용대금청구서를 받아보는 엄마와 아빠의 한숨과 주름살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
아기의 짝짜꿍 재롱 말고도 엄마의 한숨이 한숨 푹 잘 수 있고 아빠의 주름살이 쫙 펴지게 하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일들만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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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국민동요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지고 많이 불린 동요 '짝짜꿍'의 1절이다. 작사자는 어린이날 노래를 비롯한 수백 편의 동요에 자신이 지은 동시로 노랫말을 입힌 아동문학가 고 윤석중 선생이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듣고 불렀는데도 수년 전까지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잘못 알고 있었다. '엄마 한숨[은] 잠자고'인데 '엄마 한숨[을] 잠자고'로 알았던 것. 그러니 노래를 듣고 부를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손뼉 치며 재롱부리는데 왜 엄마는 한숨을 잤을까? 아기 재롱에 기분이 좋아져서 한숨 푹 잔 것인가?' 몇 해 전인가 활자로 된 노래 가사를 보고는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한숨 쉬던 엄마가 아기의 짝짜꿍 재롱을 보고는 한숨을 그치는 것, 그리하여 한숨이 사라지는 것을 한숨이 잠잔다는 비유로 표현한 것이었다. 우리말에서 조사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가사 한 글자가 달라졌을 뿐인데 이 노래에 대한 나의 태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다. '엄마 한숨은 잠자고'란 표현은 정말 놀랍고 눈물겹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절 가사 자체가 한 편의 시, 그것도 성스러운 시 같았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뽑아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이 시를 꼽겠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그렇게 물어온 사람은 없었지만 말이다. 엄마의 한숨과 아빠의 주름살. 세상의 한가운데서 일어나는 세속적인 소재인데 이를 다룬 노래, 그것도 동요 가사가 왜 성스러운 느낌을 주기까지 하는 걸까?
박목월 시인의 시 '가정'도 그렇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잘 알려진 이 시에서 시인은 가족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로 표현하면서 그중 아버지인 자신은 '십구 문 반의 신발'이라고 비유한다. 그런데 신발 크기 단위인 문수에서 10문은 약 240㎜이므로 '십구 문 반'은 약 468㎜가 된다. 그렇다면 십구 문 반의 신발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버거움, 뭔가 맞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신발만큼 지상에 가까이 붙어있는 것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알전등이 켜질 무렵' 아홉 켤레의 신발이 놓인 '어느 시인의 가정'에서 느껴지는 것은 속세나 진토의 냄새가 아니라 성소(聖所)의 분위기이다. 그것은 가정이 원초적 사랑의 출발점이며 모든 사랑의 원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 5월이 지나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에 이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부부의날(5월 21일, 둘(2)이 하나(1)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도 있으니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가정의 달을 지나며 가족들을 위한 행사, 모임, 선물 때문에 지출이 늘어나 6월에 카드이용대금청구서를 받아보는 엄마와 아빠의 한숨과 주름살이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 아기의 짝짜꿍 재롱 말고도 엄마의 한숨이 한숨 푹 잘 수 있고 아빠의 주름살이 쫙 펴지게 하는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일들만 눈에 띈다. 엄마의 한숨과 아빠의 주름살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아이들은 결국 엄마의 한숨과 아빠의 주름살을 먹고 마시며 자라나는 걸까? 신고 있는 신발이 마치 십구 문 반처럼 크게 느껴진다.
우재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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