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본토 잇단 공격은…우크라의 ‘회색지대’ 전술?
CNN “러시아가 크름반도 강제병합 때 썼던 전술과 유사”
러 내부의 동요 노려…“반푸틴 민병대가 나토 무기 사용”
최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러시아 접경지역과 수도 모스크바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본토 곳곳에 연일 동시다발적인 포격과 드론(무인기) 공격이 이어지면서 전쟁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는 자신들과의 연관성에 대해 대체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2~23일(현지시간)과 지난 1~2일 벌어진 접경지역 공격의 경우 ‘반푸틴 민병대’라고 부르는 러시아의 반체제 무장세력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들 단체가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인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국(HUR)과 연계돼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내부 동요를 노린 우크라이나의 ‘하이브리드 전술’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반푸틴 민병대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쓰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우크라이나에 지원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무기 일부를 사용하고 있는 정황이 제기됐다.
3일 CNN은 공격 주체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이런 모호한 전술이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강제병합할 때 썼던 전술과 유사하다고 보도했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반군’으로 위장한 병력을 투입해 내부 혼란을 일으키는 전술을 썼다. 당시 크름반도에서는 녹색 군복에 부대 마크나 휘장, 계급을 달지 않아 ‘리틀 그린 맨(little green man)’으로 불리는 의문의 부대가 의회 건물을 점거하고 공항을 폐쇄하는 등 조직적인 공격을 벌였는데, 러시아 정부는 이들이 러시아와의 합병을 원하는 우크라이나 자위대라고 주장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상점에서 어떤 종류의 군복이든 살 수 있다”며 러시아군과의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이듬해 이들이 자국군임을 뒤늦게 인정했다.
CNN은 이같이 불투명한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하이브리드 전쟁’ 양상은 현대 전쟁사에서 여러 차례 사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하이브리드 전쟁이란 군사적 수단뿐 아니라 비군사적 수단도 총동원해 전쟁 상대국에 혼란과 불안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CNN은 러시아 접경지대 공격을 주도한 반푸틴 세력이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과 긴밀히 연계돼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크라이나 대신 러시아인이 러시아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요한 전술”이라고 짚었다. 일련의 단기적 공격이 군사적으로 러시아에 큰 타격을 입히진 못했지만, ‘러시아의 불안과 동요’라는 효과는 더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내에서 반체제 인사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푸틴 퇴진론 불씨를 지피는 데도 우크라이나의 공격보다 ‘러시아 내부의 공격’이 더 효과적이다. CNN은 “국경을 넘나드는 우크라이나의 전술은 러시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첫 교전이 작은 마을에 국한되기는 했으나, 러시아의 반응을 봐서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한 것 같다”고 짚었다.
러시아 본토 공격에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가 사용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보기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22~23일 벨고로드주 공격에 사용된 지뢰방호차량(MRAP) 4대 가운데 3대는 미국이, 1대는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공격을 수행한 무장세력이 온라인에 게시한 사진과 영상에서도 벨기에와 체코가 지원한 소총, 나토 회원국들이 사용하는 AT-4 대전차 무기가 확인됐다. 미국 등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하에 군사적 지원을 해왔다. 마크 캔시안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고문은 “이 일은 앞으로 우크라이나의 책임과 이런 약속 위반을 미국이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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