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켄 로치가 그린 ‘희망’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 우리가 지나가다 마주친 지인에게 별 뜻 없이 인사처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벼운 말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으면 서로 속을 다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몸속으로 들어가 피와 살이 되는 무언가를 그 사람과 공유한다는 의미니까. 3년 전 작고한 녹색평론 김종철 선생이 ‘함께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강조하며 했던 얘기이다.
영국 영화감독 켄 로치(86)가 <디 올드 오크>라는 신작을 공개했다는 소식에 예고 영상을 찾아보다가 불현듯 이 얘기가 떠올랐다. 영화 속 영국 폐광촌의 한 펍에 붙어 있는 문구 때문이다. “같이 밥을 먹는다면, 함께할 수 있다.” 이 모토는 1980년대 중반 영국 광부노조 파업 때 광부의 부인들이 몇백 끼의 식사를 함께 마련해 파업 참여자, 연대자들과 나누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디 올드 오크>는 폐광촌 주민들의 무너진 공동체를 배경으로 한다. 주민들은 브렉시트를 요구했던 분노에 찬 노동계급으로 이 노장 감독이 평생 천착해온 대상이다. 이들 속으로 내전을 피한 시리아 난민들이 불쑥 들어오며 벌어진 일들을 그렸다. 상처를 가진 두 집단의 만남은 그곳의 주인으로 자처하는 집단의 타자에 대한 배타와 혐오로 인해 아름답지 않은 결말로 가기 쉽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펍이 혐오의 배출구가 아니라 타자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공간이 되면서 이질적인 패배자들 사이의 연대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소 계몽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이 주제가 평범한 사람들을 캐스팅해 매우 사실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온 이 감독의 재능으로 어떻게 구현됐을지 궁금하다.
영화는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에 이은 잉글랜드 북동부 3부작 완결판이다. 사실 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시선이 더 비관적으로 된 듯했다. <케스> <빵과 장미> 등 많은 작품에서 일관되게 좌파적 시각과 함께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그도 이제 희망이 없다고 본 것일까. 그런 그가 <디 올드 오크>에서는 ‘희망’을 얘기했다고 한다. 영화 속 펍 이름이기도 한 ‘오래된 참나무’처럼 우리 곁에 든든히 남아줬으면 하는 켄 로치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영화의 개봉을 기다려본다.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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