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바리톤 김태한의 우승법
‘천상의 목소리’로 불린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생전 체중이 160㎏까지 나갔다. 오페라 ‘라보엠’에서 가난한 예술가 청년 역을 맡았는데 육중한 체구 때문에 소품 의자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1853년 초연된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를 맡은 소프라노 패니 살비니 도나텔리도 체격이 풍만했다. 건장한 비올레타가 “폐결핵에 걸려 하루밖에 못 산다”고 하자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대학 시절 음대생에게 성악가의 체구가 당당한 이유를 들은 적이 있다. “몸이 커야 호흡이 길고 성량도 풍부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울림통이 커야 한다는 뜻이다. 체중을 줄였다가 후회한 사례도 여럿 있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연인이었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100㎏ 넘던 체중을 30㎏ 넘게 감량한 뒤 “첫째 체중을 잃었고, 그다음엔 목소리를 잃었다”고 한탄했다.
▶22세의 바리톤 김태한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정상에 서자 많은 사람이 서양인 못지않은 그의 체구를 주목했다.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한국 남자 성악가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데’ ‘파바로티나 도밍고 등은 호흡과 발성 체형이 우세해 따라잡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댓글이 달렸다. 남자로선 한국은 물론 아시아 첫 사례니 그런 반응이 나올 법도 했다. 그간 이 대회 성악 부문 한국인 우승자는 소프라노 홍혜란과 황수미였다.
▶바리톤은 ‘낮은 음성’이란 뜻의 라틴어 ‘바리투스’에서 비롯됐다. 서양에선 남성이 선천적으로 물려받는 가장 흔한 음역이다. 김태한의 우승은 이런 불리한 조건을 부단한 연습으로 딛고 이룬 쾌거다. 하지만 성악계에선 ‘타고난 신체 조건은 더 이상 결정적 변수가 아니다’라고 한다. 체구보다는 성대 자체의 기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대를 연마하고 여기에 근력까지 키우면 뱃심에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 미남 성악가로 명성을 날린 프랑코 코렐리 등이 대표적이다. 목소리 못지않게 몸 맵시가 중요해진 미디어 시대가 부른 변화이기도 하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우리 청년들은 정상에 가기까지 과정 자체를 즐긴다. 김태한도 우승 후 “목표는 최선을 다해 무대를 즐기는 것이며 앞으로도 행복하게 음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싸이가 부른 ‘챔피언’은 ‘진정 즐길 줄 아는 여러분이 이 나라의 챔피언입니다’로 시작한다. 즐기며 노래하고 성취하는 그에게 축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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