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말한다] 탈탄소산업 시대, 선두에 서야 한다
세계 각국은 2019년 말 COVID-19로 촉발된 전대미문의 총체적 난국의 회생 길목에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에너지, 식량 등의 국제공급망 단절 위기에 봉착했다. 다행히 2023년 현재 EU 국가를 비롯한 선진 경제국들은 최근 에너지 등 국제 원자재 수급 불안이 완화되면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성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가격 폭등이 초래한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은 여러 국가에서 시민 폭동과 정권 실각을 유발하였고, 심각한 경우에는 시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에너지공급 위기가 현재와 같이 국가체제의 존립과 국민 삶의 여건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풍부하다. 따라서 에너지공급 안정성 제고를 위해서 법제도 개선, 에너지산업의 기술역량 확충, 정부 또는 시장에 의한 에너지 수급 조절 기능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할 때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패러다임은 거부할 수 없는 세계 질서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 기후위기 대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극복과 기회의 문제이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이행조치는 이미 국제무역 규범의 변화라는 형태로 다가온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및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금지 등이 그 예이며, RE-100으로 대표되는 자율적 규제기반도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경제선진 국가로서 역할하는 한편, 미래 국제정치 및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또한 정부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0 NDC)로서 "2018년 대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을 제시했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2030 NDC는 도전적인 과제임에 틀림없다. 에너지 집약적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가 주요 국가 대비 높은 연평균 감축률을 설정한 것은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반영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기술·자본 집약적 에너지산업 위상이 온실가스 감축 차원에서 위협받고 있는 점은 국제 분업구조 관점에서 볼 때 극복돼야 하겠다. 에너지효율 지표로 활용되고 있는 에너지소비 원단위가 높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에너지소비 구조가 매우 비효율적인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경계되어야 할 단편적인 시각이다.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이 우리나라 경제의 중추 산업임에도 에너지 집약적 특성으로 인해 동 산업부문의 역할 축소가 모색되는 것은 수용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에너지공급 안정성 제고를 위한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적 판단에 기초해 모든 정책 수단이 강구돼야 한다.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6차 보고서에서 제시한 "기술중립적 정책대안의 총체적 모색 필요"라는 정책권고가 반증한다. 에너지공급 측면에서는 기존 에너지 공급망 유지 및 확충을 우선적으로 도모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가 높은 해외의존도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무탄소에너지인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에너지공급 구조를 특정 에너지원에 과도하게 의존함에 따라 발생하는 불안정성 해소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에너지수요 측면에서는 에너지효율 증진을 위한 국가·사회적 노력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가격기능 기반의 유인체계 보강 없이 에너지절약 캠페인과 같은 1차원적 접근방법으로는 에너지효율 제고 목표 달성을 기대할 수 없다.
필자는 며칠 전 한국을 방문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고위관계자와 면담하였다. IEA 관계자는 2050 탄소중립은 여전히 도전적인 과제라는 인식 하에 가능한 모든 저탄소 기술을 가용할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리고 원전 수용성이 높은 국가들은 비용 효과적으로 에너지전환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탄소감축 촉진과 에너지안보 역량을 동시에 제고하기 위해서 원전 확대가 세계 여러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모색될 것이라는 전망도 개진하였다.
금년 4월 공개된 제1차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은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정책방향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에너지효율 개선으로 에너지 수요를 감축하며, 화석에너지 소비 구조를 저탄소·무탄소 에너지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공급역량 확충, 원전의 적정 역할 제고,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전원의 조기 공급 등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기에 정부의 역할은 분명해 보인다.
이에 상기 설정된 목표달성을 위해서 정부가 원가주의에 입각한 에너지 가격 결정 원칙을 확립하고, 가격기능이 에너지효율 고도화에 직접적인 유인체계로 작동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특히, 에너지 가격이 탄소배출에 따른 적정 사회적 비용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구조화하고, 무탄소·탈탄소·저탄소 에너지(수소, CCUS, 바이오매스 등) 개발·보급 확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장 및 가격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또한 탈탄소 에너지신산업 발전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는 규제요소를 발굴하여 척결하는 한편, 우리나라가 탈탄소 산업에서 기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지원정책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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