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한 적대
[세상읽기]
[세상읽기] 김만권 |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파업을 해도 법을 지키면서 하라는 거야!” 표면적으론 옳은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어떻게 보면 기이한 노동투쟁이 있다. 바로 ‘준법투쟁’이다.
2022년 11월 철도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인력구조조정과 민영화 중단에 반대하며 준법투쟁을 펼쳤다. 여기서 준법투쟁이란 안전속도를 유지하며 열차를 운행하는 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 평소에는 안전속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운행한다는 말이다. 열차 배차시간 자체가 안전운행의 원칙과 실제로는 상응하지 않는데도 관련 기관이 이를 모르는 체하고 있단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는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대한간호협회가 준법 투쟁에 나섰다. 의사를 대신해 이루어지는 불법적 대리처방, 시술, 수술, 채혈이나 심전도 검사 업무 등이 포함되었다. 의료인의 업무 범위를 법률로 정하고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한 국가에서 이런 불법적인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물론 정부는 모르는 체한다.
모르는 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런 불법적인 행위가 교통 및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움이 되는 불법 노동에 국가가 철퇴를 내리는 법은 없다.법치주의를 그렇게 강조하는 대통령도 이런 불법 노동에는 아무 말이 없다. 공권력은 자본과 국가에 이익만 된다면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나 특정 집단이 법률로 수행하면 안 되는 노동을 모르는 척 용인한다.
우리 법의 반응도 흥미롭다. 법대로 노동해도 쟁의행위에 해당한다. 법률 용어로는 ‘사실정상설’이라 하는데 법대로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활동이 관례화되어 있다면 그게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해석이다. 그래서 쟁의행위에 필요한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민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은 준법투쟁의 시기와 절차를 강조하는데, 시기를 따진다면 그냥 파업하지 말란 말이나 다름이 없다.
준법투쟁도 이러한데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인정사정이 없다. 특히 이번 정부 아래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번 정부에 교육 및 연금과 함께 노동은 3대 개혁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밝힌 노동 개혁의 핵심은 “산업현장에서의 노사법치 확립”이다. 물론 노사법치 확립에서 자본과 산업에 도움이 되는 불법은 예외다.
대개의 경우 개혁 대상은 마땅히 척결되어야 할 ‘적’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화물연대 파업에서부터 이번 정부 아래 지속하고 있는 노동에 대한 적대는 당연하다.
특히 이번 정부가 드러내는 노동에 대한 적대는 두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다. 생각해보면 노동자가 권리로서 노동3권을 적절히 행사할 방법은 노동조합에 속하는 길뿐이다. 개인의 자격으로 자본과 국가에 맞서 노동3권을 요구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러니 국가의 적대는 당연히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주체인 노동조합을 향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은 국가가 이런 적대를 동원하는 데 유리한 조건이다. 대한민국의 노조 조직률은 2021년 기준으로 14.2%에 불과하다. 노동자 중 자기 권리를 집단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이 100명 중 15명이 되지 않는다. 이 집단에 속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자면 ‘자신에게도 있으나 행사하지 못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특권집단인 셈이다. ‘귀족노조’라는 정부의 노동자 갈라치기가 쉽게 먹혀드는 이유다.
정부의 노동에 대한 적대에 내재해 있는 두번째 특징은 ‘육체노동에 대한 혐오’다. 화물연대 파업부터 건설노조까지 육체노동자들의 노동권 행사에는 가차 없는 철퇴가 내려진다. 정부가 이른바 ‘엠제트(MZ) 노조’라 부르면서 올바른 개혁 방향으로 지칭한 노동은 사무직 노동이 주를 이룬다. 노동에서도 육체노동과 사무노동을 갈라치고 있다.
경제의 3요소는 노동, 자본, 토지다. 왜 이 세 요소 중 가장 힘이 약한 노동이 개혁 대상이 되었을까?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85%가 노동조합에 속할 권리조차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 정부는 군사 독재의 비호 아래 재벌 체제를 형성하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독과점 자본에게, 지금 노동을 향해 적대하며 요구하는 만큼 충분히 개혁을 요구해왔을까? 그렇게 해왔다면 그 개혁은 실현되었을까? 이제 노동의 차례라고 진정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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