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모든 힘을 상상력으로!

한겨레 2023. 6. 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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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나는 잡스가 강조한 상상력이야말로 지역언론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온갖 갈등이 분출하는 현실 세계에서 상상력 운운하는 건 욕먹기 십상이지만,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비상한 상황이 오히려 상상력을 외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68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 모습. EPA 연합뉴스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지방소멸 관련 기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지방소멸이 임박하면 가장 먼저 죽는 것 중의 하나가 지역언론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마땅한 일이겠건만, 꼭 그렇지는 않다. 지역에서 언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몇 사람이 모인 사석에서 지역언론이 죽기 일보 직전에 처해 있다는 말이 나오면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수십년째 들어온, 너무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나온다. “지방 자체가 소멸되는 마당에 무슨 그런 사치스러운 걱정을 하느냐?”

그러나 토론회나 언론 기고처럼 지역언론을 주제로 말하거나 글을 쓸 때는 그런 식으로 말할 순 없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역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그래서 지역언론에 대한 공적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런 지원으로 지역언론이 살아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늘 ‘더 많은 지원’을 외쳐댄다.

‘더 많은 지원’ 외에 지역에서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이성적·논리적·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없다’고 말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정치·경제·교육·문화의 권력과 부가 서울에 집중된 ‘서울공화국’이라는 체제의 벽이 워낙 높고 두텁기 때문이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서 부르짖을 수 있는 건 오직 ‘상상력’뿐이다.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의 봉기에서 절정에 이르렀던 ‘68혁명’ 때 소르본대학 벽들엔 이런 구호가 등장했다. “모든 힘을 상상력으로!” 포스터, 배지, 전단, 성명서, 영화 그리고 노래 가사 등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이 구호는 1960년대의 반란 정신을 상징했다.

‘68혁명’ 정신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강고한 기존 질서를 깰 수 있는 힘은 상상력뿐이라는 데엔 동의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추앙의 대상인 여론엔 상상력이 없다. 대중이 답답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객관식 문제 형식으로 던져지는 설문조사엔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상상력을 죽이게끔 구조화된 여론조사가 정치를 공멸의 수렁으로 몰고 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여론조사의 설문은 갈등 지향적이며, 그렇게 해서 드러나고 끊임없이 확인되는 양극화된 여론은 갈등을 생산하고 증폭시키는 도구로 기능할 뿐이다. 여론조사는 출구가 없는 갈등의 회로를 만들어놓고 그 회로에 갇힌 사람들의 일희일비를 마케팅의 도구로 이용해 팔아먹는 상술로 전락한 건 아닐까?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을 때 시장조사를 했을 것 같은가?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오만하게 들리는 발언이긴 하지만, 나는 잡스가 강조한 상상력이야말로 지역언론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걸 입 밖에 내긴 쉽지 않다. 뜬구름 잡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언어학자 리처드 오글이 지적했듯이, 학자들의 세계에서 선호하는 용어는 이성적, 객관적, 예측 가능, 설명 가능 등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한’이라는 말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니 온갖 갈등이 분출하는 현실 세계에서 상상력 운운하는 건 욕먹기 십상이지만,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비상한 상황이 오히려 상상력을 외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지역언론은 ‘서울공화국’이라는 구조의 회로에 갇힌 채 몇가지 공식을 1년 365일 내내 우려먹는 건 아닌지 살펴보자. 지역언론은 ‘홀대’, ‘소외’, ‘낙후’를 외치는 ‘나쁜 뉴스’ 생산에 주력한다. 지역언론은 늘 ‘중앙의 더 많은 지원’을 외치면서 그걸 비판과 찬사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지역언론은 선의에서 비롯됐을망정 중앙의 힘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학습된 무력감’을 키우는 일에 열심이다.

지역언론은 이런 식의 자기비판을 독자들에게 간곡히 요청해 게재하면서 성찰의 기회로 삼아보는 게 어떨까? 모든 힘을 상상력으로 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상상력은 발칙할수록 좋다. 기존의 모든 틀과 관행을 의심하면서 그걸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소멸’ 대신 그 결과인 ‘서울멸종’이란 말을 써야 한다. 그래야 ‘지방소멸’이 지방만 소멸하는 걸로 알고 외면하는 상상력 없는 사람들의 생각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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