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보통의 정치

한겨레 2023. 6. 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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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미스러운 의혹으로 민주당을 떠나게 된 두 정치인의 해명이 매우 상반되면서도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지점을 드러내 매우 흥미로웠다.

반면 민주당의 청년 정치를 대표하는 김남국 의원의 대응 방식은 낯설고 당돌하다.

많은 전문가가 과학적 정치 캠페인의 효시로 꼽는 '보통사람' 전략은, 군사정권 색채가 짙었던 전임자와 차별화는 물론이고 민주화 진영 엘리트 정치인들과 대중의 분리에도 일정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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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왼쪽)와 김남국 의원. 연합뉴스

김진화 | 연쇄창업가

최근 불미스러운 의혹으로 민주당을 떠나게 된 두 정치인의 해명이 매우 상반되면서도 묘하게 일맥상통하는 지점을 드러내 매우 흥미로웠다. 먼저 다선 국회의원에 인천시장, 당 대표까지 지냈으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에 휩싸인 송영길 전 대표. 그는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저는 정치를 직업이나 생계로 하지 않았다. 제가 정치를 한 이유는 학생운동 때와 마찬가지로 민족 화해와 평화적 통일을 위한 사명으로 하고 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이 발언을 접하고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역설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올린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을 게다. 직업을 소명과 대립시켜 뭔가 세속적이고 하찮은 것으로 설명하는 ‘직업 정치인’이라니. 굳이 막스 베버를 거론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문제의 무게감이며 부여받은 임무의 책임감에 짓눌리듯 살아가는 대다수 생활인의 견지에서도 위화감이 들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다음은 가상자산 투기 및 돈세탁 혐의까지 받게 된 김남국 의원. 그는 지난달 9일 유튜브 방송에서, “직업으로서, 제 돈으로 ‘내돈내투’(내 돈으로 내가 투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투자금 출처에 문제 될 소지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었지만, ‘내돈내투'라 문제가 없다는 식의 태도는 공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결국 그는 뒤늦게야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 사과를 했으나, 이후 청문회 등 국회 공식 일정 중에도 코인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 더 큰 곤경에 빠졌다. 그에게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어떤 의미이자 무게였을까.

위기를 모면하려는 과정에서 불현듯 드러난 두 정치인의 속내는 각자가 대표하는 집단의 이질성만큼이나 확연히 대비된다. 송 전 대표의 발언은 그가 속한 민주당 주류, 이른바 386세대의 익숙한 자기방어 논리를 그대로 투사한다. 대학 시절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대의에 헌신해 왔으니 진의를 믿어 달라는, 실은 그러니 “하찮은 실수”는 좀 눈감아 달라는 호소. 반면 민주당의 청년 정치를 대표하는 김남국 의원의 대응 방식은 낯설고 당돌하다. 내 돈으로 했고, 재산 공개 대상이 아니라 위법 사항도 없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이다. 전자는 정치를 지나치게 숭고한 무언가로 포장하고 후자는 다른 무언가와 병행이 가능한 사이드잡, 본캐/부캐의 선택지 정도로 가볍게 취급한다. 그럼에도 두 가지 상반된 태도는 공통으로,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전개되는 과정의 구체성과 책임성을 외면한다는 특질을 보인다.

1987년 당시 노태우 후보는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구호를 들고나와 선거에 승리했다. 많은 전문가가 과학적 정치 캠페인의 효시로 꼽는 ‘보통사람' 전략은, 군사정권 색채가 짙었던 전임자와 차별화는 물론이고 민주화 진영 엘리트 정치인들과 대중의 분리에도 일정 정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투표권조차 박탈됐던 수동적 대상에 불과했던 국민을 정치의 중심으로 호명한 이 전략은 수사에 불과했더라도 꽤 유효했다. 그로부터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야말로 민간의 여러 부문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뽐내는 사회로 변모했다. 반면 정치는 가장 지체된 영역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상전벽해다. 이제는 오히려 정치가 보통 사람들의 수준과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현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어떻게’다. 많은 보통사람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먹고사는 일의 무게감을 정치인들 역시 그들의 과업에서 구체적으로 느끼고 책임의식을 갖는 것부터가 시작 아닐까. 거창한 혁신의 구호 말고 직과 업의 무게를 그대로 느끼는 보통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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