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하의 청개구리] 꿀벌만이 수분매개자 아니다

한겨레 2023. 6. 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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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게 일반적이다.

사회, 정치, 문화 등 그 어떤 분야이든 그래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고 뇌리에 남기 위해 '이슈 파이팅'에 무던히 노력한다.

물론 그 꿀벌도 산과 들을 다니면서 수분매개를 하기 때문에 생태적 역할이 없다고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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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의 청개구리]

게티이미지뱅크

김산하 |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사람들은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게 일반적이다. 사회, 정치, 문화 등 그 어떤 분야이든 그래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고 뇌리에 남기 위해 ‘이슈 파이팅’에 무던히 노력한다. 그중에서 환경 분야야말로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다. 사람들이 내가 속한 사회, 도시 심지어는 나라 밖의 얘기들에 관심을 갖게 하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벌을 대표로 한 수분매개자 이슈가 나름 주목을 받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얼핏 보면 현대인이 벌과 나비와 같은 곤충의 안녕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퍽 오랫동안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턴가 ‘나와 상관’ 있는 것이 된 핵심 연결고리는 바로 식량 생산이다. 국내에서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00억 마리가 넘는 꿀벌 집단실종 사건이 보도되면서 본격적으로 농가 피해 및 식량 생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이 그동안 줄기차게 해왔던 말이 겨우 이제야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반가운 일이 아닌가? 사태 자체는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그 어려운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그 연결고리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꿀벌이 모든 다른 수분매개 생물을 다 제치고 단일 대표가 되어, 꿀벌만이 중요하고, 꿀벌만 살리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꿀벌은 우리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 아니다. 그것은 꿀 생산을 위해 도입한 외래종이다. 물론 그 꿀벌도 산과 들을 다니면서 수분매개를 하기 때문에 생태적 역할이 없다고 할 순 없다. 그러나 엄연히 인간이 규모와 위치를 관리하는 동물로서 축산법상 가축에 해당한다. 즉, 꿀벌은 자연 수분매개자의 대표가 아니고 생태계의 핵심적인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자연 생태계에서 수분매개를 하는 동물은 누구인가? 바로 야생 벌, 파리, 등에, 나비, 나방, 풍뎅이, 모기 등 수많은 종의 곤충이다. 박쥐나 새도 기여한다. 야생벌만 해도 호박벌, 좀뒤영벌, 쌍살벌, 왕가위벌 등 국내에만 수천 종이 존재한다. 이 엄청난 다양성을 무시한 채 양봉 산업용으로 들여온 꿀벌에만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꿀벌이 꿀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식물 종으로 멀쩡한 자연 숲을 재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그린피스와 안동대 산학협력단이 발표한 ‘벌의 위기와 보호정책 제안’ 보고서는 국내 밀원(벌이 꿀을 빨아오는 원천)면적을 30만 헥타르로 늘려야 한다면서 국유림과 공유림내 다양한 밀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숲들은 이미 자연적으로 풍부한 생물다양성이 존재하는 곳으로 뭔가 ‘하자’가 있거나 ‘조성’이 필요한 공간이 아니다.

꿀벌을 살리려 여의도 면적 1034배에 달하는 밀원숲이 생겨야 한다는 주장이, 녹지가 아닌 곳을 숲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2년 전 산림청의 30억 그루 심기 사업처럼 대부분 멀쩡한 숲을 베고 새 나무를 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꿀벌을 비롯한 수많은 야생 수분매개자의 감소 원인이 밀원의 부족으로 밝혀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벌에 대한 악영향이 인정된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살충제조차 정부는 여전히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여러 연구를 보면 꿀벌의 보호가 야생벌의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고 심지어 해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꿀벌도 살려야 하지만 양봉의 논리로 숲을 재편해선 안 된다. 살려야 할 수분매개자는 셀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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