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재 양성이 저출산 대책? 280조 쓰고도 실패한 이유 [인구쇼크, 패러다임 전환이 답 (1)]
내일채움공제·군무원 인건비 등 거리 먼 예산도 '저출산'으로 묶여
전문가 "써야할 곳에 제대로 써야"
정부 "중구난방 정책 통폐합할 것"
초등학교, 어린이집이 요양원으로 바뀌고 웨딩홀이 요양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지역에선 취학아동이 급감하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초등학교를 요양원 등 복지센터로 리모델링해 운영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저출산 지속의 후폭풍은 서울 등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구로 개봉역 인근 지상 6층 규모의 A웨딩홀은 지난 2021년 요양병원으로 간판을 바꿨다. 저출산이 지속되고 있고, 결혼기피로 혼인인구 자체가 줄고 있어서다. 동시에 고령화는 심화되고 있다. 저출산 대응에만 280조원을 투입했지만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기준 0.78명까지 추락했다. 비교 대상국가가 없는 꼴찌다.
■되짚어보는 저출산 대응정책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저출산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는 한국일 것"이라고 주장한 게 2006년이다. 콜먼 교수는 당시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을 '1호 인구소멸국가'로 전망하면서 '코리아 신드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한국이 저출산 대응예산을 본격적으로 투입한 것도 바로 2006년부터다. 정부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21년까지 280조원가량이 투입됐지만 상황은 더 악화됐다. 당시 1.13명이던 합계출산율은 0.8명대가 깨졌다.
사라지는 어린이집은 17년 전엔 지방만의 현상이었다. 이젠 서울에서도 흔하다. 서울시 보육통계에 따르면 서울 내 어린이집 수는 2014년 6787개에서 지난해 4712개로 줄었다. 태어나자마자 대기를 걸어야 한다는 말은 옛말이다. 출생아 수 감소 때문이다. 수요가 줄어들자 요양원으로 업종변경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실제 만 0~3세 영유아 인구는 같은 기간 32만3855명에서 17만6989명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투입된 재정은 있는데 성과는 왜 미미한가. 젊은 부부들 사이에선 '그 돈 다 어디에다 쓴 것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책 체감도가 낮았다는 의미다. 정책을 되짚어보면 실패 원인은 나온다. 정부가 저출산 종합대책을 처음 마련한 2006년엔 영유아와 자녀 양육 분야가 지원대상이었다. 하지만 2016년 청년 일자리와 주거 예산이 저출산대책에 포함되더니 2018년부터 모든 세대의 삶의 질 보장이 저출산대책이 돼버렸다. 예산은 2006년 2조1000억원대였지만 2021년 46조6000억원대로 21배 늘었다.
■백화점식 과제…목표 '불명확'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그동안의 저출산 대응정책 평가에서 "정책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지만 산발적으로 정책을 도입했고, 정책 체감도 저하 문제도 있었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낙후지역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조성' 사업은 지난해 2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배정됐지만 해당 사업이 출산율 제고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청년 자산형성을 돕는 내일채움공제 사업도 예산이 1조원 넘게 들어갔지만 출산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 보인다. 이 밖에 군무원·장교·부사관 인건비 증액 예산(987억원), 디지털 분야 미래형 실무인재 양성 예산(3248억원), 신진예술가 및 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83억원) 등 저출산대책과 관련도 낮은 과제도 여러 개 포함돼 있다.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사업비도 저출산용이다.
홍석철 저고위 상임위원은 "예산을 쉽게 배정받으려고 저출산과 거리가 멀어도 '저출산용'이라고 이름 붙이는 관행이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대응'으로 묶이긴 하지만 정책들이 부처별로 흩어져 있다 보니 체감도와 효과성 모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개인 삶의 질 제고' 등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에 대한 성과평가가 형식적으로 이뤄지면서 예산집행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재정 제대로 투입해야
저출산대책 예산은 2022년 50조원을 넘겨 51조216억원에 달했지만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업예산을 제외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 적다. 육아휴직, 보육지원, 아동수당 등 출산율과 직접 관련이 있는 가족지원 예산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약 30조원)로 OECD 회원국 평균(2.29%)의 70%에도 못 미친다. 돈을 쓰고도 실패한 게 아니라 써야 할 데 제대로 안 쓰는 바람에 실패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 따라 4차까지 이어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중 필요성과 관련성이 낮은 정책들은 들어내고, 주요 정책들엔 힘을 싣는 '개편'을 단행할 방침이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도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으로 더 구체화하기로 했다. '인구정책평가센터(가칭)'를 저고위 내에 설치하고, 평가 결과에 따른 예산편성 의견 제시, 정부기관 평가지표 반영 등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중구난방 식이던 저출산 정책을 통폐합한다는 의미다.
청년세대 가치관, 인식변화 등을 고려해 정책 체감도를 높이고 재구조화도 중요하다. 김영미 저고위 부위원장은 '보건복지포럼(3월호)' 기고문에서 "부처별로 분절적으로 제공하는 정책은 정책 체감도, 정책 효과성 모두 떨어뜨린다. 부처별 개별 사업을 제시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정책 수요자 입장에서 전략적 과제 중심으로 묶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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