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PB 덕목은 카리스마? 인간미 '웃상'이 대세랍니다 [어쩌다 회사원]

최희석 기자(achilleus@mk.co.kr), 강인선 기자(rkddls44@mk.co.kr), 강민우 기자(binu@mk.co.kr) 입력 2023. 6. 4. 16:48 수정 2023. 6. 5.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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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원 굴리는 PB의 세계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증권사 PB센터에 직원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오전 8시 정각 미국 등 해외의 자산시장 상황을 평가하고 공유하는 회의가 시작된다. 엔비디아 실적, 미국 정부와 의회의 부채한도 협상 등을 빠짐없이 챙긴다. 언제 어떤 고객이 질문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는 고객들과의 소통 시간이다. 하루 20여 통의 전화는 기본이다. 전화로 해결이 안 되면 직접 찾아가 듣는다. 국내 주식시장이 끝나는 오후 3시 30분까지는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언제든 대응 가능한 상태에서 고객과의 소통이 계속된다.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고객 응대는 오후 5~6시까지 계속된다. 그럼 이제 퇴근일까?

아니다. 고객과의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고객과 함께 식사하면서 서로 신뢰를 쌓고 성향을 파악하는 일이 시작된다. 어쩌면 오히려 이쪽이 업무의 요체다. 코로나19 이후로 꽤 줄었지만 이렇게 시작된 저녁식사는 2차, 3차로 이어지기 일쑤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건 자정이 다 돼서일 때가 많다.

증권사 PB센터나 WM파트에서 일하는 프라이빗뱅커(PB)의 일상이다. "A증권 모 상무는 24억원을 받았다더라" "B증권 모 PB센터장은 사장보다 연봉을 더 받았다더라" 등의 화려한 대가가 따르지만 이들의 일상은 녹록지 않다.

PB가 알아야 할 것

우선 알아야 하는 지식이 광활한 만주 벌판과 같다. 거시경제 상황이나 주식시장 이슈는 기본 중 기본이다. 채권은 물론이고 부동산, 기업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지식인 회계·재무, 여기에 세무까지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최근에는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 국제 이슈까지도 웬만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증권가에서는 "최소한 누구에게 연결하면 솔루션이 나오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인맥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준녕 삼성증권 팀장이 비대면으로 고액 자산가와 상담하고 있다. 삼성증권

방배동PB센터 지점장을 지낸 김남규 한국투자증권 홍보실장은 "그 많은 전문지식을 다 알지는 못한다"고 단언하면서도 "고객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누가 솔루션을 제공해줄 수 있을지 문제 상황을 듣자마자 파악이 될 정도로는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라 KB증권 차장은 "PB들도 윤곽은 대강 알고 있다"면서 "세부적인 내용은 본부에 있는 전문가들이 검토하도록 한다. 고객 니즈를 파악해 그에 맞춰 주는 PB들이 많고 세무자격증 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많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PB 업계에서 큰 경쟁력이다. 김영화 NH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삼성동센터 팀장은 "PB는 처음엔 제너럴리스트로 시작해서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하는 직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해외 채권이면 김똘똘이다. 공모주는 이명석에게 맡기면 된다. 이런 식으로 고객이 바로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스페셜리스트라고 한다면 고객들이 맡기는 자금이 급격히 늘어난다. 한 번 맡길 때 적게는 100억원대에서 많게는 1000억원대까지 뛴다"고 덧붙였다.

고객 상대가 주 업무

증권사 PB가 되면 (회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100명 이상의 고객을 관리한다. 정광옥 한국투자증권 GWM센터 주임은 "보통 가족 단위로 자산운용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대하는 고객 수는 대강 300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100명이 많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하루에 통상 15~20건의 통화를 하면 일주일 동안 모든 고객과 1번은 통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 주임이 직접 만나는 고객은 한 달에 60여 명이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투자증권 여의도금융센터에서 고객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이곳은 기업 대주주와 같은 초고액 자산가나 법인을 대상으로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가 제공되는 특화 지점이다. 한국투자증권

실제 고객을 만나면 2시간 이상은 소요된다. C증권사 M차장은 "고객관리는 보통 자택 방문을 통해 이뤄진다"면서 "월·주 단위로 자산 보고를 드리러 가면 한 분당 2시간 반 정도에 걸쳐 상담을 해드린다"고 말한다. 이어 "하루에 최장 3분 정도 고객을 찾아 뵙는다"고 덧붙였다.

자연히 주 52시간 근로제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다시 C증권사 M차장의 말을 들어보자. "매일 오전 8시에 업무가 시작되는데 30분 전에 와서 미국 주식시장 현황을 본 뒤 업무를 시작한다"면서 "점심과 저녁 미팅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골프를 통한 대면 영업에 나서다 보면 주 80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남규 실장은 "미국 주식 등 해외자산 시장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을 때는 자다가 깨서 새벽에 시장 상황을 체크하는 등 밤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례가 많지는 않다"고 전했다.

모객은 어떻게

고객을 어떻게 늘려갈 수 있을까? 이희권 메리츠증권 광화문센터 지점장은 "숫자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희권 지점장은 "수익률이 좋으면 고객들이 주변에 소개하기 때문에 자연히 모객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김혜라 차장은 "요즘은 본인이 직접 지점에 먼저 방문해 고객이 되는 경우는 적다"면서 "보통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상담도 이뤄지지만 고액 자산가들은 인맥을 통해 영업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영화 팀장은 "일부 고객은 죽을 때까지 자산관리를 맡길 PB를 찾기도 한다"면서 "이런 경우 PB는 '집사'가 돼야 한다. 일부 PB는 한 기업체 회장 가족의 자산을 전부 관리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PB의 어려운 점

PB로 일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들까? L지점장은 "결국은 수익률"이라고 한다. L지점장은 이어 "대부분 고객은 자신이 투자한 자산만 오르지 않는 현상, 즉 FOMO를 극단적으로 싫어한다"면서 "보유한 자산 가운데 1~2개가 부진할 뿐임에도 '왜 내 계좌 수익률만 안 오르는가?' 하고 따지거나 포트폴리오를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이 참 힘들다"고 전한다.

또 M차장은 "1억원을 투자했는데 수익을 내서 1억2000만원이 된 후 이를 다시 투자해 1억1000만원이 되었다고 치면, 여전히 1000만원 수익을 본 게 아니라 1000만원을 손해 봤다고 하신다"며 "이럴 때 참 힘들다"고 털어놨다.

남녀의 차이

요즘은 여성 PB가 대세다. 김남규 실장은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이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 같다"면서 "여성, 특히 중년 여성 PB가 최근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려움은 있다. 김영화 팀장은 "법인 영업이나 고객 관리에서 남성 PB가 분명 유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접대 문화에서 발생하는 부작용 때문에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만 예전엔 저녁 자리가 생기면 2차, 3차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여성 PB는 낄 기회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영화 팀장은 "결국 수익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면서 "본사 상품기획팀에서 심사를 끝냈다고 하더라도 한 번 더 직접 상품을 들여다보고 점검한다. 운용사에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시장 상황이 악화됐을 때 수익률을 지키는 대처 역량은 그런 디테일에서 갈리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PB, 얼마나 벌까

기본급은 증권사 일반 사원들과 다르지 않다. 성과급이 다르다. 성과급은 당연히 고객이 누리는 수익률과 연동된다. 유성원 한국투자증권 GWM전략담당 상무는 "아직 고액 자산가 전담인력에 대한 대우가 충분치는 않다"면서 "별도의 보상 체계가 존재하지는 않고 인센티브를 더 많이 받는 정도"라고 말했다. 정광옥 주임은 "보통 대형 증권사는 기본 계약연봉이 초봉은 5000만원대 초·중반, 대리는 6000만~7000만원, 차장은 7000만~8000만원이라고 알고 있다"면서 "한국투자증권은 GWM에서 4~5년 차 대리급이 계약연봉과 인센티브를 합쳐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혜라 차장은 "다른 업종보다 급여 수준이 높은 건 맞지만 연봉 랭킹에 나오는 몇십억 원 단위로 받은 분들 때문에 평균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특히 그는 "기업 주식담보대출 수수료 등 PB들이 중간에 끼지 않는 비관여수수료를 회사가 수취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예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든 느낌"이라고 말했다.

AI 시대, PB는 어떻게 변할까

PB라는 직업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 인공지능(AI)이 더 발달했을 때도 여전히 좋은 직업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김남규 실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PB라는 업의 본질은 컨시어지(Concierge) 서비스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일인 만큼 고객과의 상호관계에서 형성되는 인간적 신뢰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AI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잘나가는 PB들 중에는 냉철한 컨설턴트보다 수더분하고 사람 좋은 스타일이 더 많다고 한다.

AI가 PB의 업무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희권 지점장은 "AI는 PB의 가장 센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AI 프로그램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100% 퀀트 방식에 의존해 매매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AI를 경쟁자로 인식하기보다 AI를 공부해서 나의 강점으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려 한다"고 말했다.

PB들 자기 재산은 잘 굴리나

고액 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PB들은 자신의 재산을 잘 굴리고 있을까? 답은 갈린다. 20년 경력의 KB증권 J차장은 "일부 직원은 공격적인 성향의 투자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내는 일이 더러 있다"면서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고객에게 장기투자 성향과 검소한 습관 등을 배우는 것이 결국 내 재산을 관리하는 데 가장 크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한국투자증권 P차장은 "PB가 돼 활동하다 보면 아무래도 고액 자산가의 포트폴리오를 자주 접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최소한 안정적이면서 적당한 수익률이 나오는 방향의 투자 지식을 쌓게 된다"며 "큰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괜찮은 성적을 거두는 것 같다"고 전했다.

PB가 되려면

PB가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가장 좋은 것은 증권사 공채로 입사해 PB를 해보겠다고 손을 드는 것이다. 김혜라 차장은 "최근에는 공채 신입들도 이미 금융자산 등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고 말했다. 세무사 등 경력을 바탕으로 PB가 될 수도 있다. 미래에셋증권 K임원은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세를 다뤘거나 국세청에서 상속·증여 실무를 담당했던 관료, 해외 세무사 등이 스카우트되는 사례를 봤다"면서 "고액 자산가는 해외에 자녀가 있는 경우가 많고 해외 부동산 등 자산도 많기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컨설팅하려면 현지 업체와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일해줄 인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래 PB에게 조언 한마디

PB가 돼보고 싶은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느냐고 묻자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PB를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조언이 나왔다. 김남규 실장은 "경험적으로 보니 돈은 벌려고 노력한다고 버는 게 아니더라"면서 "PB는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직업이지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 목적을 갖고) 이 업계에 뛰어들려면 다시 생각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희석 기자 / 강인선 기자 / 강민우 기자 /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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