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도 지워진 톈안먼 사태…집회장소 친중단체 점령, 산발 시위자 체포
과거 매해 6월4일이 되면 홍콩을 뜨겁게 달궜던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희생자 추모 열기가 당국의 탄압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대규모 추모 집회가 열렸던 빅토리아파크는 시위 34주년을 맞은 올해 친중 단체가 점령을 했고, 산발적 시위를 시도하던 활동가와 예술인들은 경찰에 체포됐다. 홍콩 내부에서는 당국의 ‘역사 지우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홍콩 빅토리아파크에서는 26개 친중 단체가 홍콩 주권 반환 26주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빅토리아파크는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듬해인 1990년부터 30년 넘게 매년 6월4일이면 톈안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2020년에는 홍콩 당국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했음에도 어김없이 수만명의 시민들이 6월4일 빅토리아파크에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6월4일 집회를 주도했던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등 민주진영의 단체들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동력이 상실됐고 홍콩 당국은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빅토리아파크에서의 집회를 금지시켰다. 올해는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사라졌지만 빅토리아파크를 가득 메웠던 추모 군중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친중 단체가 점령한 것이다.
홍콩 당국은 시위 34주년에 맞춰 경비를 대폭 강화하고 산발적인 추모 움직임마저 원천 차단했다. 홍콩 명보와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거리 곳곳에서 불심검문이 이뤄졌다. 오후 6시를 전후해 야당 지도자와 민주 활동가 등이 속속 경찰에 연행됐다.
명보는 오후 7시쯤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한 백화점 앞에서 군소 야당인 사회민주연선의 찬포잉 주석이 경찰에 연행됐다고 전했다. 찬 주석은 당시 작은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두 송이의 꽃을 들고 있었으며, 경찰이 즉시 그를 붙잡아 경찰차에 태워갔다고 명보는 전했다. 막인팅 전 홍콩기자협회장이 경찰과 한동안 말다툼을 벌이다 경찰차에 실려갔고, 한 사회운동가는 산책을 하다가 경찰에 검문을 당했다고 전했다. AFP는 오후 7시 30분 현재 코즈웨이베이에서 최소 10명이 경찰에 연행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홍콩 경찰은 지난 3일 빅토리아파크 인근에서 개별적인 추모 시위를 계획하고 있던 민주 진영 활동가와 예술인 등 8명을 체포·연행했다. 경찰에 체포된 이들 가운데는 톈안먼 시위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텐안먼 어머니회’ 회원 라우카이와 민주 활동가 콴춘풍이도 포함됐다. 이들은 전날 빅토리아파크 인근에서 톈안먼 시위 34주년에 맞춰 24시간 단식을 예고한 상태였다. 또 매년 6월4일 저녁 톈안먼 시위와 관련한 행위 예술을 했던 예술가 산무 찬과 찬메이텅은 빅토리아파크 부근의 한 백화점 앞에서 “홍콩인들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이 6월4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외치다 경찰에 체포됐다.
홍콩에서는 당국의 이같은 탄압으로 톈안먼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움직이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홍콩의 기독교인 360명은 이날 현지 기독교 매체에 ‘6월4일 기념일 기도회’ 청원을 전면 광고로 싣고 “역사적 트라우마가 고도의 압박 아래 잊히겠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이를 지켜보고 추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홍콩 명보는 이날 사설에서 “1989년 시위는 애국적인 민주화 운동이며 폭력적인 수단으로 탄압돼서는 안 된다”며 “당국은 과거의 잘못을 포함한 역사를 직시하고 6·4에 대한 진실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톈안먼 시위 34주년을 맞아 토니 블링컨 장관 명의로 성명을 내고 “희생자들의 용기는 잊히지 않을 것이며 전 세계에서 이같은 원칙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영감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은 중국과 전 세계의 인권 및 근본적 자유를 계속 옹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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