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 서식지 맞다” 공동조사단 결론···영양 풍력발전단지 환경영향평가서 거짓·부실 논란 커지나

김현수 기자 2023. 6. 4.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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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군 기산리 일대 해발 고도 650m. 영양풍력발전단지 예정지인 이곳은 마을주민이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이 여러 차례 촬영된 장소다. 김현수 기자

“분장터라고 해요. 산양 화장실이죠.”

지난 3일 경북 영양군 기산리 일대 해발 고도 650m 지점. 깎아지른 절벽 위 소나무에 무인카메라가 위태롭게 설치돼 있었다. 이곳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이 여러 차례 촬영된 곳이다.

이 무인카메라에는 산양이 아찔한 절벽 주변을 여유롭게 이동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절벽 인근에는 커피콩 모양의 산양 배설물이 가득했다. 어림잡아 500개는 넘어 보였다. 산양은 한자리에서 계속 배설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산양에게 공중화장실인 셈이다.

낙동정맥(식생·동물의 생태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오는 산줄기)을 따라 1시간 가량 이동하자 다시 절벽으로 이뤄진 능선이 나타났다. 산양의 배설물은 이 곳에서도 보였다. 일부 나무에서는 산양이 뿔질한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보였다.

주민들은 2021년부터 영양풍력발전 예정지인 이 곳에 카메라를 달아 18개 지점에서 산양을 촬영했다. 101개 지점에서는 산양의 배설물과 뿔질 흔적을 발견했다.

영양풍력발전단지 예정지인 경북 영양군 기산리 일대 해발 고도 650m에서 지난달 30일 산양의 배설물이 쌓여있다. 산양은 한자리에서 계속 배설하는 습성이 있다. 산양에게는 이곳이 화장실인 셈이다. 김현수 기자

산양은 경사진 바위와 절벽 주위에 주로 서식한다. 절벽을 잘 타지 못하는 천적들을 피하기 좋고, 절벽 근처에서는 다른 동물과 먹이경쟁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최태영 국립생태원 생태응용연구실 실장은 “절벽을 잘 타도록 진화한 산양에게 절벽은 최적의 서식지인 셈”이라며 “굳이 천적과 마주칠 수 있는 평지나 구릉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카메라를 설치한 장소는 대부분 절벽이거나 조망이 트인 암석 지대였다. 산양이 좋아하는 장소를 고려한 것이다. 반면 ‘사업 예정지에서는 산양을 발견하지 못했다’던 풍력발전업체 AWP가 생태 조사를 위해 설치한 카메라 위치는 대부분 평지나 완만한 구릉지대였다.

AWP가 제출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 사업대상지에는 산양이 촬영된 곳은 한 곳도 없다. 비전문가인 주민들이 18개 지점에서 산양을 촬영한 것과 대조된다. AWP 평가서가 거짓·부실하게 작성됐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송재웅 무분별한 풍력 저지 영양·영덕 공동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AWP는 산양 전문가를 참여시켜 조사했다고 하는데 전문가가 산양이 어디에 서식하는지도 모르고 카메라를 설치했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영양군 주민들이 영양군 기산리와 무창리에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산양 모습. 무분별한 풍력 저지 영양·영덕 공동 대책위원회 제공
산양 없다던 풍력발전 예정지…환경영향평가 재조사 가능성

환경부·전문가·시민 등으로 구성된 AWP영양풍력 공동조사단의 현장조사에서도 풍력발전 예정지에 산양이 살고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AWP 환경영향평가가 거짓·부실하게 작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4월17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됐다.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25일 현장조사 내용을 공유하고 거짓·부실 검토 전문위원회 개최 필요성을 논의했다. AWP의 산양 조사 지점이 적정했는지가 핵심이었다. 주민들이 풍력 예정지에서 촬영한 산양을, 왜 사업자 측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는가에 대한 논의다. 산양이 출몰할 가능성이 낮은 곳만 골라서 카메라를 설치했다면 AWP 평가서가 거짓·부실하게 작성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가는 “(AWP 측) 전문가가 참여한 조사치고는 부실한데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국립생태원이 지난해 9월 생태·자연도 등급 재평가를 위한 2차 현지 조사 과정에서 붉은박쥐를 발견한 영양군 영양읍 무창리 산1번지 일대.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지정된 붉은박쥐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정한 멸종위기 ‘관심’ 대상이다. 김현수 기자

당시 회의에서 산양전문가로 참석한 4명 위원은 AWP 고의성 여부에는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풍력발전 예정지에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는 점에는 한 목소리를 냈다.

A위원은 조사 보고서에서 ‘(풍력발전 예정지를)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배설물과 털 등 산양 서식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고 썼다. B위원은 ‘산양 서식과 관련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환경부에 제출했다. C위원도 ‘영양 풍력 예정지 전체가 일정한 개체군을 유지하고 있는 산양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전형적인 서식지’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이 풍력발전 예정지를 산양 서식지로 판단하고 있는 만큼 환경영향평가 재조사 가능성도 커졌다. AWP 평가서에는 발전기 15기를 설치할 사업예정지를 벗어난 북쪽 1개 지점에서만 산양이 발견된 것으로 돼 있다.

공동조사단은 이달 중 추가 회의 열어 AWP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AWP 환경영향평가가 거짓 또는 부실하게 작성된 것으로 드러나면 환경부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등 전문기관에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영양군 주민들이 영양군 기산리와 무창리에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촬영된 산양 모습. 무분별한 풍력 저지 영양·영덕 공동 대책위원회 제공

영양풍력발전단지는 2017년부터 AWP가 추진해온 사업이다. 대구환경청은 당시 사업 대상지가 생태 1등급 지역이라는 점 등을 들어 AWP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 의견을 내면서 무산됐다. AWP는 이에 지난해 발전기를 기존 27기에서 18기로, 다시 15기로 사업 규모를 줄였다. 그러나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사업 불가’ 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사업규모가 42% 축소됐다’며 지난해 9월 ‘조건부 동의’ 의견을 낸 상태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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