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민간인 고엽제 피해 지원, 진정한 회복 위한 신뢰 행정

경기일보 2023. 6. 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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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파주시장

중국의 철학자 공자는 정치에 있어 백성들의 믿음, 즉 신뢰를 강조했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지방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삶을 지키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행정의 목표다. 국민과 시민을 위한 보호의 의무에서 벗어난 행정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보호의 범위가 공평성을 잃은 채 특정 대상에게만 적용된다면 이 역시 신뢰로 나아갈 수 없다. 특히 국가가 국민에게 입힌 피해에 대한 보상은 선별적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로 인한 피해를 국민이 보상받지 못했다면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행정은 국민을 위한 마땅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것이 파주시가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 이유다. 

고엽제는 초목 및 잎사귀 등을 말라 죽게 하는 제초제다. 독극물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인체나 동물 등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는 위험 물질이다. 실제로 고엽제는 폐암과 후두암, 기관암, 파킨슨병 등 여러 질병을 불러일으키며 건강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이 때문에 베트남전쟁에 참여하거나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 복무했던 군인과 군무원, 그리고 그 2세는 ‘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에 따라 피해 지원을 받고 있다.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엽제후유증환자’는 1964년 7월 18일부터 1973년 3월 23일 사이에 월남전에 참전해 고엽제 살포지역에서 복무했던 군인과 군무원, 1967년 10월 9일부터 1972년 1월 31일 사이에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서 복무했던 군인이나 군무원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외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당시 남방한계선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민간인들이다. 파주시의 경우 대성동 마을 주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

대성동 마을은 1953년 정전협정 후 국가(대한민국정부)가 직접 나서 조성한 마을이다. 북한에는 기정동, 남한에는 자유의 마을인 대성동이 만들어졌고, 130여 명의 주민을 살게 했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DMZ 내 민간인 마을인 이곳에 고엽제가 살포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1.21사건(김신조 일당 청와대 기습 미수 사건)을 계기로 북한의 대남 침투 견제를 위해서 1968년 DMZ(비무장지대)의 식물통제계획에 따라 남방한계선상에 고엽제를 살포했다.

당시에도 또 그 후로 오랫동안 대성동 주민들은 고엽제가 얼마나 위험한 물질인지를 전혀 몰랐다. 잡목과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로만 알고 있었을 뿐 각종 암과 신경계통을 손상시키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라는 연관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 사이 많은 주민들이 정확한 원인을 모른 채 투병 끝에 사망했고, 여러 질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주민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당시 대성동 마을에서 군복무했던 군인과 마을 주민의 증언을 토대로 한 ‘경기일보’의 첫 보도로 민간인들도 고엽제 후유증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고엽제는 명백히 국가가 국민에게 끼친 피해다. 더구나 국가가 조성한 마을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이 받은 피해인 만큼, 국가가 보상에 적극 나서야 하는 책임은 명백하다.

현재 박정 국회의원이 고엽제 피해자 지원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법령이 개정되면 민간이 고엽제 피해자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 법령 개정안을 환영하며, 국회에서 신뢰 행정을 위한 뜻깊은 변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동시에 법령 개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파주시는 민간인 피해자 지원을 위한 행정적 지원을 선제적으로 이뤄나갈 계획이다.

파주시는 지난 5월 8일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 지원을 결정한 이후 6월 내에 자체적으로 마을 이장과 시의원, 병원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피해 조사단을 구성해 실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후 9월 중으로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 지원을 위한 조례 제정을 통해 피해 보상을 시행할 예정이다. 파주시가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 지원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시민이 곧 행정의 기준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은 적합하고 공평한 보상을 통한 진정한 회복으로의 과정이다. 동시에 시민의 삶을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신뢰 행정으로의 굳은 의지다.

대성동 주민이 겪은 고통과 피해에 진심 어린 위로를 드리며, 하루빨리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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