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턱까지 닥친 전쟁···우크라 접경 러시아 주민들 “모든 것이 변했다”

정원식 기자 2023. 6. 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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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베키노에서 대피한 이들을 포함한 러시아 접경 지역 주민들이 지난 2일(현지시간) 러시아 벨고로드주 벨고로드 경기장에 설치된 임시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러시아 본토 주민들이 최근 연이은 포격과 무인기(드론) 공습으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가 자신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데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에서 약 9.6㎞ 떨어진 러시아 서부 벨고로드주 셰베키노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는 루슬란(27)은 지난달 말부터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이어지자 지난 1일 다른 곳으로 대피했다. 그는 NYT에 인구 4만명인 셰베키노가 “24시간 만에 유령 도시로 변했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공무원인 다리야(37)는 “셰베키노는 우크라니아와 국경에 위치한 아름답고 꽃이 만발한 곳으로 이웃과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면서 “이제는 고통과 죽음, 비참함만이 존재한다. 전력도, 대중교통도, 영업 중인 사업체도, 주민도 없다. 연기에 휩싸여 텅 빈, 산산조각 난 마을만 남았다”고 말했다.

NYT는 벨고로드주 주민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5개월이 지난 지금 접경 지역 러시아 주민들은 문턱에 다가온 전쟁이 주는 공포를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벨고로드주에서는 우크라이나군과 반푸틴 세력의 공격이 잇따르면서 수십 년 만에 최대 규모 대피령이 내려졌다. 벨고로드주 주도인 벨고로드의 스포츠 경기장에 설치된 임시 대피소에서는 포격을 피해 피신한 벨고로드 지역 주민 25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이미 여러 도시들이 파괴됐지만, 많은 러시아인들은 그와 같은 일이 자신들의 영토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NYT는 전했다. 뱌체슬라프 글라드코프 벨고로드 주지사에 따르면 벨고로드주에서는 최근 3일 동안 주민 9명이 포격으로 사망했다.

벨고로드에서 사업을 하는 올레그는 “우리는 지금 전환점을 맞고 있다”면서 “이 일(전쟁)이 시작됐을 때는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소수였지만 4일 동안 포격을 받고 있는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푸틴 정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셰베키노는러시아다”(ShebekinoIsRussia)라는 해시태그가 퍼지고 있다. 일부 셰베키노 주민들은 인터뷰에서 국영방송 진행자들이 ‘셰베키노’를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한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셰베키노 주민 루슬란은 “모스크바에서는 우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면서 “지난달 모스크바에 드론이 날아갔을 때는 곧바로 화제가 됐지만 우리는 몇 달째 포격을 받고 있는데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벨고로드주 주민들은 이웃들의 대피를 돕고 자신들의 집을 피란민들에게 피신처로 제공하는 등 자발적으로 연대하고 있다. NYT는 “러시아 본토까지 전쟁이 닥치면서 필요에 의한 풀뿌리 시민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러시아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모스크바 소재 여론조사 업체 레바다의 데니스 볼코프 국장은 지난달 조사에서 러시아인 4명 중 1명만이 전쟁 소식을 꾸준히 읽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러시아는 매우 단절된 사회이고 눈앞의 문제가 아닌 일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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