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는 당신에게”···대놓고 내세운 아파트 광고[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은 기자 2023. 6. 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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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광고를 게재한 ‘더팰리스 73’ 홍보 누리집 갈무리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들어서는 한 주상복합 아파트 광고에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게재돼 논란이 일고 있다. 광고를 접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상류층의 우월의식을 자극하고 서민들에게는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분양이 진행되고 있는 아파트·오피스텔 주거복합단지 ‘더팰리스 73’ 누리집에 접속하면 이 같은 문구를 담은 광고가 올라와 있다. 광고는 198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가 오피스텔 건축에 참여한다는 점을 내세운 후 “최상위 주거공간으로서 본질이나 계보를 새롭게 제시하게 될, 세기에 다시 없을 주거 명작이 될 것”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서리풀공원을 품고 사는 곳”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27년 9월 준공 예정인 이 주거복합단지에는 분양가가 100억원에서 400억원에 이르는 호화 오피스텔·아파트가 73가구 들어설 예정이다. 시행사인 더랜드는 3년 전 이 자리에 있던 ‘쉐라톤 팔래스 강남’을 사들인 후 그 자리에 최고급 주거 단지를 짓기로 했다. ‘희소성’을 내세워 소수의 부자들을 겨냥하는 게 사업 전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고를 본 시민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경기도 원룸에 전세로 산다는 강수민씨(26)는 “부자들이 우월하다는 의식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한 광고는 처음 봤다”면서 “빈부격차를 정당화하는 인식이 완전히 양지화된 것 같아서 무기력해지는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논란의 광고를 게재한 ‘더팰리스 73’ 홍보 누리집 갈무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이를 비판하는 글들이 다수 올라왔다. 트위터·페이스북 이용자들은 “한없이 천박한 자본주의” “불평등과 계급 문제를 홍보수단으로 사용한 게 경악스럽다” “믿기지 않아서 직접 찾아봤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런 인식이 너무 익숙해서 놀랍지도 않다” “한국인이 평등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대행사다” 등의 반응도 있었다.

아파트 광고가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일으켜 논란이 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1년 롯데캐슬 광고에 등장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문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의 열등감을 자극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2007년 래미안 아파트 광고도 마찬가지다. 이 광고에는 한 여성이 남자친구를 집에 소개하는 설정이 나오는데, 남성이 “집이 어디야?”라고 묻자 여성이 손가락으로 아파트를 가리키며 화면에 래미안 로고가 등장한다. ‘좋은 집에 살아야 연인을 데려올 자격이 있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의 저자인 사회학자 오찬호 박사는 “노골적인 차별에 대해 겉으로나마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평등이라는 개념을 마치 나태하고 게으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 문구는 아주 탁월한 광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고를 만든 회사도 이 광고를 트집 잡는 사람들은 어차피 이곳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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