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이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또 있을까 - 한 번의 기회를 거머쥔 백석종의 선택

심영구 기자 2023. 6. 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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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바리톤에서 테너로, 백석종의 인생을 바꾼 선택 (글 : 황정원 작가)
출처 : 백석종 페이스북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먹어."

테너 백석종(37) 씨와의 인터뷰 중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이다. 그는 불과 3년 전까지 17년을 바리톤으로 노래했다. 오랜 고민 끝에 서른넷이라는 늦은 나이에 테너로 전향을 결심했다. 연습에 전념하려 다니던 직장,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을 그만두었더니 곧 코로나가 터졌다. 대면이 불가능해지며 성악 레슨을 받을 수 없어 빈 교회를 찾아 혼자 연습했다.

그로부터 2년여 후 테너로 첫 데뷔를 한다. 세계 최고의 무대 중 하나인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주역으로 말이다. 이후 찬란한 성공 스토리가 이어진다. 같은 극장에서 오페라 두 편의 주연을 맡아 성공적으로 마치고 또 다른 주역 자리를 따낸다. 뿐만 아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역시 다음 시즌 두 작품의 주인공으로 그를 택한다. 데뷔 이래 텅 비다시피 했던 캘린더가 세계 유수 극장에서의 공연 일정으로 꽉 차기 시작했다. 테너로서 무대 경험이 전무했던 그에게 이 모든 이례적인 일은 지난 1년 사이에 일어났다.

백석종은 인문계 고등학교 커트라인을 넘지 못해 고민하던 중 성악하는 누나를 따라 전주예고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바리톤이었다. 대학입시에서도 연거푸 낙방하자 부모님의 제안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며 학비를 낼 도리가 없어 한국에 돌아와야 했다. 국방부 군악대에서 2년 동안 200회가 넘는 연주를 하며 군 복무를 마쳤다. 부모님이 빚을 내 간신히 마련한 최소한의 자금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학비 문제를 어렵게 해결하며 맨해튼 음대에서 학, 석사를 마쳤다.

학창 시절 바리톤에게 필요 없는 고음이 생기자 지도 교수와 상의했으나 그는 백 씨가 바리톤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만일 그랬다면'을 생각하기란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Q. 테너로 큰 성공을 거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당시 선생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테너로 전향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해 봤나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하죠. 조금만 더 일찍 바꿨으면. 하지만 모든 일은 때가 있다고도 생각해요. 고민이 한창일 때 세계적인 바리톤 토마스 햄슨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도 제가 바리톤이라고 단언했어요."

햄슨도 그 자신이 고음에 능한 바리톤이었으니 더욱 그의 판단에 수긍이 갈만했다. 그뿐만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며 굳이 모험하지 않아도 바리톤으로서 장래는 유망했다. 수상도 이미 여러 차례 했고, 젊은 음악가들을 양성하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극장의 애들러 프로그램에도 합격했다.

이 길이 맞나 보다, 바리톤으로 마음을 먹고 뉴욕을 떠나기 직전 세계적인 테너 이용훈 앞에서 노래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백 씨의 바리톤 목소리를 칭찬하면서도 테너 노래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백 씨의 노래를 들은 이용훈은 그가 테너라고 확신했다.

"제가 그 소리를 듣고 싶었나 봐요. 이제껏 정말 많은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런 확신을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거든요. 이 선생님만 그렇게 말씀하셨죠."

출처 : 백석종 유튜브


결국 그는 바리톤으로 들어간 애들러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콘서트에서 테너 아리아를 불렀고, 2년 계약이었지만 1년 만에 제 발로 걸어 나왔다. 테너로 목소리를 가꾸는데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남들은 다 미쳤다고 했다. 지도 교수는 연락을 끊었다. 그만큼 단호한 결단이었다. 그런데 곧 코로나가 터졌고 대면이 불가능해지며 이끌어 줄 선생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니던 교회에서 혼자 연습하기 시작했다. 후회도 컸다.

1년 반에 걸친 외로운 연습 끝에 미국의 권위 있는 로렌 자카리 성악 콩쿠르에 테너로 출전했다. 35살이라는 나이 제한에 걸리기 전 마지막 기회였다. 결과는 우승. 여세를 몰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린 빈체로 콩쿠르에 출전했다. 또 한 번의 우승. 심사위원으로 그를 눈여겨본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캐스팅 디렉터는 스페인의 테너 비냐스 콩쿠르에서 그를 다시 만나자 음악감독 안토니오 파파노와의 오디션을 주선했다. 그렇게 그는 다음 해 「삼손과 데릴라」의 주역, 삼손의 커버 자리를 따낸다. 커버는 주요 배역이 피치 못한 사정으로 무대에 서지 못할 경우, 무대에 대타로 투입되는 역할이다. 그런데 공연 3개월 전, 원래 주역을 맡은 테너가 사고를 당하며 커버였던 백석종에게 기회가 왔다.

"원래 이런 큰 극장에서는 주인공이 다치면 동급의 가수를 다른 곳에서 데려오거든요.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를 캐스팅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내 소리에서 뭘 들었나? 내가 할 수 있을까. 첫 테너 데뷔를 큰 극장에서, 주인공으로. 그것도 삼손은 공연의 8-90%는 늘 무대에 등장해 있는 어려운 역이에요. 하지만 일생에 없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테너로 무대에 선 경험은 전무했다. 뿐만 아니었다. 상대역 데릴라를 맡은 엘리나 가란차는 현존하는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 중 하나였다.

"앞에 있는 산이 진짜 커 보였어요. 하지만 제 삶 자체가 계속 산을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에 또 하나의 산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래는 자신 있었어요. 아직 완벽한 발성은 아니었지만 테너로 대회를 나가보니 아, 이게 되는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 준비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압박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바로 지금 내가 해야 할 게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그래서 연습하고 준비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주역으로 무대에 세우는 일은 극장 측으로서도 큰 모험이었다. 백석종 씨는 언론의 호평 속에 삼손으로 테너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캐스팅 디렉터는 자신이 보석을 발견했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순조롭게 공연을 이어가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났다. 다음 프로그램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주연을 맡은 슈퍼스타 요나스 카우프만이 코로나로 출연을 취소한 것이다. 오프닝 2주 전이었다. 음악감독이자 지휘를 맡은 파파노는 삼손으로 공연 중인 그에게 그 자리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결단했다.

"아는 역할도 아니고, 가벼운 레퍼토리도 아니었지만 뭣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죠. 저에게는 기회였고, 극장 측에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으로도 보이고 싶었습니다. 막상 하기로 했지만 삼손 공연은 아직 세 번 남아 있었고, 새 작품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극장 측에 코치를 붙여 달라고 요청해 매일 2-3시간씩 함께 연습하며 겨우 음과 가사를 익혔습니다. 작품을 일주일 만에 배웠죠. 그리고 삼손 공연이 끝나자마자 「카발레리아」 연습에 뛰어들었습니다. 공연 열흘 전이었습니다."

한동안 연습을 따라가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백석종 씨를 파파노는 믿고 격려해 주었고, 그는 결국 훌륭히 주어진 역할을 소화해 냈다. 도전에 응해 멋지게 완수해 낸 그에게 극장 측은 이듬해 「아이다」와 그다음 해 「나비 부인」의 주연 자리를 제안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움켜쥔 한 번의 기회는 또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었다. 대타로 무대에 선 「카발레리아」 공연 객석에는 마침 런던에 출장 온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캐스팅 디렉터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는 메트로부터 다음 시즌의 「나부코」와 「투란도트」의 주연 자리를 제안받는다.

듣기만 해도 아찔한 모험담이고 숨 가쁜 스케줄이다. 계속 공연을 하는 한편 빠른 속도로 새로운 역할을 확장하고 있는데, 당면한 공연 준비와 새 작품을 익히는 연습 사이의 밸런스는 어떻게 찾는지 물었다.

ROH의 <아이다> / 출처 : 로열 오페라 하우스(ROH)


"제가 마지막 차를 탔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불과 작년 5-6월, 이맘때 삼손으로 테너 데뷔를 하고 이번에 아이다로 돌아왔습니다. 데뷔 후 1년 동안 다섯 개의 새 역할을 했으니 두 달에 하나인 셈이죠. 지금은 열심히 해서 레퍼토리를 불려야 할 때입니다."

그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고 한다. 꿈속에서 그는 '무대를 말아먹고' 다시 바리톤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한다. 그래도 한결같이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스스로에게 맞는 목소리를 다루는 법을 배운 것 같다고 한다. 함께 「삼손과 데릴라」, 「아이다」를 작업한 가란차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쉽게 부르다니 어떻게 바리톤이었을 수가 있나. 당신은 테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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