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점심 챙기려고"…매일 3시간씩 몰래 집 간 직원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곽용희 2023. 6. 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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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집에 가 3시간 넘게 머물러
적발되자 "사찰했다" 회사 상대 소송

연봉 8천만원인데 판매 압박 없어
'개인정보', '사생활' 어디까지인가
법원 "고액 연봉, 성실근무 신뢰한 것"
"영업직원 근로 여부는 회사의 관심사
사찰로 보기 어렵다"
사진=게티이미지

영업직 사원이 업무시간 중 매일 집에 들러 3시간 넘게 개인적 용무를 봤다면, 이는 상습 근무지 무단 이탈로 해고 사유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가 '사생활의 자유 침해', '불법 사찰'을 주장하며 회사와 근로자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져, 외근 직원의 근무시간을 체크하기 쉽지 않은 회사들의 현실을 알려준 판결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2월, 국내 유명 자동차 회사의 판매 영업 사원 A씨가 회사를 상대로 청구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A의 청구를 기각했다(2021가합541337).  

 ○근무지 상습 무단이탈..."아이들 점심 챙겨주러"

A는 2002년부터 일해온 정규직 판매 영업사원이자 노조 조합원이다. 어느날 회사 측에 "A가 상습적으로 근무 중 집에 들른다"는 제보가 들어오면서 회사는 급히 조사에 착수했다.  

회사는 2020년 3월 9일부터 4월 16일까지 A의 자택체류 현장조사를 시작했다. 회사 측 사람들이 A가 거주하는 아파트에 차량을 주차하고 캠코더로 A가 자택으로 들어가거나 나가는 모습을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기간 37일 중 공휴일과 사무실 당직 근무를 제외하면 매일인 26일을 집에 들렀던 것. 집에 머문 시간도 평균 약 3시간 34분이었다. 결국 회사는 징계 절차에 착수했고, 면담 과정에서 A는 "아이들 점심을 챙겨주기 위한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해고 징계가 내려지자 A는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먼저 A는 "(회사가) 반헌법적인 사찰행위를 통해 증거를 수집했다"며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는 비위행위의 증거가 될 수 없으므로, 해고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 단체협약은 '사찰'을 금지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자택에서도 전화·문자로 업무를 수행했고, △코로나19 탓에 대면 영업활동이 어려웠던 점 △거의 매일 1시간 연장근로를 한 점 등을 들어 징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또 현장조사를 통한 증거수집도 형법상 건조물침입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며, A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정당한 직무집행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이라고도 주장했다. 이런 따라 A는 해고가 무효이므로 자신을 복직시키고, 약 2년치 임금 1억3600만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법원 "연봉 8000만원...성실 근무 신뢰한 것"

하지만 법원은 징계사유가 존재한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영업직 근로자의 특수성을 고려해도 자택을 정상적인 영업활동 장소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A 스스로 자녀 식사준비 등 사적 목적으로 자택에 장기간 상습 체류한 사실을 인정했으므로, (문자나 전화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회사가 대부분의 근로시간을 외근하는 영업직의 근무태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장조사 밖에 없다"고도 지적했다. 

증거 수집 과정도 적법하다고 봤다. 법원은 "자택에 출입하는 동영상을 촬영한 것은 초상권이나 사생활의 비밀을 침범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가 있다"면서도 "A가 수인해야(받아들여야) 할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그 근거로 재판부는 "영업직 사원과 회사 간 근로관계는 영업활동을 일일이 감시하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영업을 하리라는 고도의 신뢰에 기초한다"며 "회사는 A에 매년 8000만 원 이상의 적잖은 임금을 지급했으며, 이는 성실한 영업 활동을 전제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 회사 단체협약에 따르면 판매 실적 부진을 이유로 영업직 사원을 징계·전보하는 게 불가능한데, 이를 이용해 영업활동을 태만히 한다면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어디까지가 직원의 '사생활'인지에 대해서도 기준점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취업규칙에 따르면 직원은 근무시간 중 성실하게 영업활동을 할 의무가 있고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근로자가 근무시간 중 영업활동을 하지 않고 자택에 체류하는지 여부는 사용자의 정당한 관심사이므로, 전적으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별히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보호법 문제도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공동현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아파트 공동현관과 차량만을 촬영했다"며 "이는 제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이뤄진 것이므로 단체협약에서 금지하는 '사찰'로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영업직의 근로시간 관리는 사실상 회사가 점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사례를 감안해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포괄임금제도도, 사무직에서 악용된다는 이유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영업직이나 감시단속적 근로자를 활용하는 사업장에서는 골머리를 앓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자동차 판매직 근로자가 아예 자기 당구장을 운영한 사례도 있다"며 "근로자의 근로 시간과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회사에 부여해줘야 진정한 근로시간 개혁이 완성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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