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법안] “차가 왜이래” 급발진 의심돼도 속수무책…‘도현이법’ 언제 나올까

변문우 기자 2023. 6. 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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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 통해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올라와…국회서도 우후죽순 법안 발의
법안 올라온 지 세 달 지났지만 상임위 계류…“국민생명 법안부터 해결해야”

(시사저널=변문우 기자)

지난해 12월, 강원도 강릉의 한 도로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이도현(12)군이 사망했다. 사고 직전 블랙박스 영상에는 당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군의 할머니 A(68)씨가 "차가 왜 이러지"라며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도 담겼다. 이 사고로 A씨도 큰 부상을 입었지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만 했다. 유족들은 여러 매체에 나와 "손자를 죽이려고 운전한 할머니가 어디 있겠나. 왜 도현이가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싶다"고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이처럼 '급발진' 의심 사고는 매년 수차례씩 벌어지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차량이 정지된 상태거나 느린 속도로 출발하던 중 갑자기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은 높은 출력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련 의심 사고는 316건 벌어졌다. 연간 최소 10건에서 많으면 50건까지도 나타났다.

그럼에도 해당 사례들 중 실제로 급발진이 인정된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실제로 기계 결함으로 인한 사고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매우 복잡해서다. 현행법상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의 입증 책임은 원칙적으로 원고에 있어, 피해자가 기계 결함을 입증하고 자동차 제조업체에 손해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동차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이를 규명하는 것이 어려워 고스란히 피해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 1일에도 법원은 다른 급발진 의심 사고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앞서 7년 전 부산에선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일가족 4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에 유족 측은 차량 결함 없이는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할 수 없다며 사측에 약 10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은 물론, 항소심 재판부도 이날 "유족이 제시한 감정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 차량 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게티이미지뱅크

국회서 '제조물 책임법' 등 관련 개정안 쏟아져

이에 시민들은 피해자를 보호하고 의심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며 공분하기도 했다. 앞서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로 숨진 이도현 군의 아버지 이아무개씨도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이러한 요구를 담은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이른바 '도현이법'을 발의했다. 해당 청원은 5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국회 내부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과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고 후 차량 제조물 결함 입증 책임을 제조사에게 돌리는 내용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다. 또 한준호 민주당 의원도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을 의무적으로 조사하게 하는 내용을 담아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사고기록장치(EDR)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과 제조물 결함 분석심의위원회를 설치하는 '소비자 기본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의원들은 자동차 제조사의 '입증 책임' 강화를 통해 피해자들만 고통 받는 악순환을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준호 의원은 "현행 법체계 하에선 의심 사고가 발생하면 말 그대로 피해자만 억울하고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라며 "급발진 사고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자동차 제조사의 사고 원인 입증 책임을 강화해 피해자만 고통받는 악순환의 꼬리를 (법안을 통해) 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 당시 차량 모습 ⓒ강릉소방서 제공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생명 연관된 도현이법부터 패스트트랙 올려야"

다만 관련 법안들의 처리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도현 군의 아버지 이씨가 국회 입법청원을 통해 처음 법안을 올린 지 세 달이 지났지만, 해당 법안들은 아직 상임위원회 소위원회에서조차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와 정부 측에서도 지난 5월26일에서야 첫 토론회를 열고 개정안 관련 방향을 논의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도 조속히 국민 생명을 지키는 법안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도현이법'을 공동 구상한 하종선 변호사는 통화에서 "도현이법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검토 중이라고는 하는데 데드라인도 없다"며 "저런 식으로 그냥 위원회에다 놔두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밝혔다.

하 변호사는 "법안을 내놓고 말만 검토한다고 하고, 실제 법으로 제정되지 않는 고질적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법안들을 패스트트랙으로 올려야 한다. 도현이법도 패스트트랙이라도 올려서 빨리 입법을 진행시켜,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인한 피해자가 또 발생하지 않게 막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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