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니시우스 ‘인종 차별’ 파문, 손흥민·이강인도 당했다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3. 6. 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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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시우스 향한 인종 차별 공격에 브라질 대통령까지 나서 항의
손흥민은 올 시즌만 3차례, 이강인도 최근 차별에 노출돼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우리 모두가 비니시우스다." 5월25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22~23 시즌 프리메라리가 36라운드. 홈팀인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벤치에 있는 구성원까지 모두 등번호 20번의 유니폼을 맞춰 입고 섰다. 브라질 출신 공격수인 동료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번호였다. 관중석에는 '우리는 비니시우스와 하나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대규모 연대가 축구경기장에서 열렸다. 출발은 사흘 전 열린 발렌시아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였다. 메스타야 스타디움에서 진행되던 후반전에 발렌시아 팬들은 비니시우스를 향해 "모노" "모노"를 외쳤다. 모노는 스페인어로 원숭이를 의미한다. 비니시우스는 관중과 언쟁을 펼치며 항의했고, 경기는 10분가량 중단됐다. 인신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 재개 후에도 관중석에서 비니시우스를 향해 원숭이 울음소리를 외치고 라이터 등 이물질을 던졌다. 인내심에 한계가 온 비니시우스는 경기 막판 자신을 모욕한 관중과 삿대질을 하며 맞섰다. 충돌을 말리는 상대팀 선수들과 몸싸움을 펼치다 퇴장을 당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도 차별이 숨어 있었다. 비니시우스의 퇴장 사유는 보복 행위였다. 발렌시아의 공격수 우고 두로가 목을 조르자 화가 난 비니시우스가 그를 가격한 것. 그런데 경기장 전광판과 중계상으로 보여지는 비디오 판독(VAR)에서는 비니시우스의 난폭 행위만이 송출됐다. VAR 심판실에서 폭력을 유발한 장면은 자르고 가격 행위만 반복해 튼 것이다. 비니시우스에게는 레드카드가 나왔지만 두로에게는 아무 조치가 없었다. 

참지 못한 비니시우스는 경기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장문의 글과 사진, 영상을 올렸다. 원숭이라고 외치는 팬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리고 자신의 유니폼을 입힌 인형을 마드리드 시내 다리 난간에 목매달아 놓은 섬뜩한 사진이었다. 그는 "인종 차별은 라리가에서 평범한 행동이다. 사무국은 차별을 정상이라 생각하고, 상대는 그것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이어서는 "스페인은 나를 환영해준 아름다운 나라지만 인종 차별자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퍼트리는 데 동조하고 있다. 매주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긴 여정이 되더라도 나는 끝까지 인종 차별에 맞서 싸울 것이다"며 투쟁을 선언했다.

5월27일 브라질 축구 리그에서 선수들과 심판이 브라질 선수 비니시우스의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표시로 경기장에 앉아있다. ⓒAFP 연합

경기장 내 활약 막아내기 힘들어지자 인종 차별로 견제

2000년생인 비니시우스는 네이마르를 잇는 브라질 축구의 차세대 에이스다. 18세에 이미 이적료 550억원을 기록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엘링 홀란드(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향후 10년간 세계 축구를 지배할 선수로 평가받는다. 이번 시즌도 20골 15도움으로 맹활약 중이다. 상대팀엔 두려운 존재다. 경기장 안에서의 플레이로 그를 제어할 방법을 찾기 힘들어지자 서서히 인종 차별로 견제를 시작했다. 올 시즌 라리가에 보고된 경기 중 인종 차별 9건 중 8건이 비니시우스와 연관돼 있다. 이미 폭탄 심지에 불이 붙은 상황이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은 라리가 사무국이었다. 하비에르 테바스 회장은 자신의 SNS에 "라리가를 비판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라. 우리가 인종 차별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설명하려 했지만 비니시우스는 두 차례나 참석하지 않았다. 리그 내의 200명이 넘는 흑인 선수는 매주 환영받고 있다"며 적반하장 식으로 피해자의 잘못을 꼬집었다. 테바스 회장의 입장문은 도리어 비니시우스의 주장만 입증하는 자충수가 됐다. 이후 브라질 현지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비니시우스의 고향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에두아르두 파에스 시장은 "피해자를 비난하나? 제정신인가? 너 같은 개XX는 지옥에 가라"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브라질 정부 차원의 대응까지 검토됐다. 라비우 디노 법무부 및 공안부 장관은 "우리는 치외법권 원칙의 적용 가능성을 파악하고 있다. 해외에서 브라질인을 향한 범죄의 경우 일부 상황에선 브라질 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비니시우스와 함께 대응하고 싶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인종 차별 행위가 없어지도록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즉각 "축구와 이 세상 모두에서 인종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인종 차별을 겪은 모든 선수와 비니시우스에게 지지를 보낸다"고 입장을 냈다. 결국 테바스 회장도 "6개월 내에 인종 차별에 대한 해법을 내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스페인 프로축구 레알 마드리드의 브라질 공격수 비니시우스가 5월21일 발렌시아와의 경기 도중 인종 차별에 항의하다 퇴장당하고 있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과 이강인도 인종 차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FP 연합·로이터 연합·뉴스1

인종 차별에 겉으론 강경 대응, 내부적으론 가벼운 인식 만연

스페인 외에도 이탈리아, 독일, 잉글랜드 등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드는 축구 엘도라도에는 인종 차별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있다. 매 시즌 아프리카 선수들을 향한 혐오성 짙은 발언과 행위가 논란이 된다. 아시아 선수들, 특히 최근 유럽 무대를 휘젓고 있는 한국의 슈퍼스타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인종 차별의 발화 계기는 비슷하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축구 선수를 시기, 질투하는 심리의 종극에는 피부색의 차이를 언급하는 비하가 존재한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손흥민은 올 시즌에만 수차례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가장 최근 벌어진 사건은 지난 5월6일일어났다.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홈경기에서 손흥민은 후반 종료 직전 교체돼 벤치로 향했다. 이때 원정팀 서포터즈 구역을 지났는데 한 팬이 손가락으로 눈을 찢는 행위를 했다. 서양인에 비해 눈이 작은 동양인의 특성을 비하는 아시아계 차별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토트넘은 즉각 성명문을 내고 경찰과 공조해 해당 행위자를 찾겠다고 선언했다. 크리스털 팰리스도 강경 대응과 일벌백계를 다짐하며 제보를 요청했다. 

지난해 첼시, 그리고 올해 2월 웨스트햄과의 경기 후에는 소셜미디어에서 손흥민을 노린 인종 차별 메시지가 쏟아졌다. 온라인상에서의 행위만으로도 구단과 EPL 사무국은 경기장 입장 금지, 벌금 등 엄벌을 내렸다. 5월1일에는 리버풀전에서 손흥민의 태클을 본 스카이스포츠의 유명 해설자 마틴 타일러가 "손흥민이 무술(martial arts)을 했다"고 발언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동양인 비하로 해석될 여지가 큰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지난해 한 기자회견에서 "독일에서 뛰던 어린 시절부터 많은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비니시우스와 같은 스페인 무대에서 뛰는 이강인도 최근 이와 관련한 일로 화제가 됐다. 마요르카 구단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이강인을 향해 "께 아세스 치노(어이 중국인, 뭐 해)?"라는 외침이 들렸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으로 추정했다. 치노(Chino)는 사전적으로는 중국인이라는 의미지만 스페인어권, 특히 중남미에서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친근함을 표시한 분위기였지만, 아무렇지 않게 차별 표현을 쓴 것이 더 경악스러웠다. 

월드컵과 리그 경기에서 이강인을 수시로 도발하고, 위험한 태클을 가해 화제가 된 우루과이 출신 페데리코 발베르데(레알 마드리드)는 2017년 한국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득점을 하고 눈을 찢는 골 세리머니로 큰 논란을 일으킨 전적이 있다. 세계 최고의 문화 콘텐츠를 자부하는 유럽 축구 리그들은 표면적으로 인종 차별과 싸운다고 외치지만, 그 내부에 자리 잡은 한없이 가벼운 인식은 여러 루트를 통해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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