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도 못한 일”…비행기 비상문 연 남자가 던진 과제는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byd@mk.co.kr) 입력 2023. 6. 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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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49분 제주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OZ8124편 여객기가 12시 45분 대구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출입문이 갑자기 열렸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주부 A씨는 며칠 전부터 비행기 안전 수칙을 고등학생 딸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6월 중순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떠날 예정인데 갑자기 비행기 비상문이라도 열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이나 했겠어요. 63빌딩 높이에서 비행기 문이 열리다니요. 생각만해도 정말 아찔해서 좌석 벨트는 아예 풀지도 말라고 당부하고 있어요”라고 A씨가 말합니다.

지난 26일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비상문 개방’ 사고로 머리 끝이 쭈뼛쭈뼛 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날 비행기를 타지만 않았을 뿐 언제든 나의 얘기, 나의 가족 얘기가 될 수 있어섭니다.

다행히 이번 사고가 대형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재발 방지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 몇 개를 남겼습니다.

피해 추정액 20억원...구상권 청구? 민사소송?
26일 오후 제주공항발 대구공항행 아시아나 항공기에 탑승한 30대 A씨가 착륙 직전 출입문을 개방한 혐의(항공보안법 위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사진은 A(검은색 상의)씨가 대구 동촌지구대에서 대구 동부경찰서로 옮겨지는 모습. [사진출처 = 연합뉴스]
착륙 직전 항공기 비상구 출입문을 연 30대 남성 B씨의 일탈로 아시아나항공이 입은 피해는 최소 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B씨가 비행 중 비상구를 개방함으로써 생긴 ▲엿가락처럼 휘어진 경첩 등 비상구 문에 대한 수리 ▲뜯겨나간 비상 탈출용 슬라이드(미끄럼틀처럼 펼쳐지는 에어백)에 대한 수리 비용만 수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또 대구에서 운행이 중단된 항공기를 모 기지(인천·김포)로 이송하기 위한 경정비 및 비파괴검사 비용이 발생하고요. 196명이 탈 수 있는 해당 항공기(A321-200)에 대한 조사 및 수리로 인해 장시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피해도 있습니다.

막대한 피해를 입은 아시아나항공으로서는 먼저 그 비용을 부담한 뒤 B씨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이같은 구상금액은 현실적으로 B씨 개인이 부담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그렇다고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노릇일까요. 법조계에선 비슷한 피해가 또 다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아시아나항공에서 민사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항공기 비상문 개폐방식, 어떤 게 더 안전한가
지난 26일 오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대구공항에 비상구 출입문이 열린 채 착륙한 아시아나항공기에서 한 승무원이 문에 안전바를 설치한 뒤 두 팔을 벌려 막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현재 항공기의 비상문 개폐 방식은 크게 ‘여압방식’과 ‘핀방식’으로 구분됩니다. 이번 문 열림 사고가 벌어진 기종은 여압방식(기내외의 기압차를 이용해 출입구가 개폐되는 방식)으로, ‘비행 중 잠금장치(Lock actuators)’가 없는 형태를 말합니다.

항공기로는 유럽 에어버스의 A321-200기종인데요.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비행기 중 상대적으로 작고 오래된 기종입니다. 주로 국내 노선과 해외 단거리 노선에 14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에어버스 A321-200기를 보유한 회사는 아시아나 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계열사가 사실상 유일합니다.

비상문 개폐가 핀방식으로 이뤄지는 비행기의 경우 비행기 바닥의 랜딩기어에 땅인지 공중인지를 구분하는 장치가 있는데 비행기가 땅에 닿기 전까지는 승객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없는 락장치가 있다고 합니다.

여압방식의 비상문이 있는 항공사의 경우 승객들에게 문을 열어 주기 전 한층 더 까다롭게 잠금장치를 강화하거나 장기적으로 비상구 문에 대한 개조 작업 등 안전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물론 비상시 승객들이 빠르게 탈출할 수 있도록 마련해 둔 것이 비상문인 만큼 손쉽게 열고 닫을 수 있어야 한다는데는 동의합니다. 아직 어떤 개폐 방식이 더 안전하다고 말하기엔 섣부르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시 생존확률을 높이려면 반드시 알아둬야한다고 했던 비상문의 위치가, 그 비상문이 공포의 문으로 바뀌었다면 안전 강화책이 뒤따라야한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웃돈 받아 팔던 좌석인데...팔아? 말아?
26일 제주공항을 출발해 대구공항에 착륙하려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 착륙 직전 출입문이 열리는 사고가 발생, 경찰과 환자 이송을 위한 119 구급대원 등이 대기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은 문 개방 사고가 난 기종 ‘A321-200’ 14대 전체에 대해 비상구 앞자리 판매를 지난 28일부터 전면 중단했습니다. 같은 기종을 6대 운영 중인 에어서울도 비상구 앞 좌석 판매를 29일부터 중단했습니다.

비상구 앞 좌석 판매가 잇달아 중단되고 있습니다. 다른 항공사들도 비상구 앞 좌석 판매여부를 두고 현재 내부 검토 중인데요. 비상구 앞 좌석에 앉았던 B씨가 너무도 쉽게 손으로 비상구 레버를 조작해 비상구를 활짝 열어버렸기 때문이죠.

현행 항공법에 따르면 비상구 좌석은 비상사태 시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승객의 대피를 돕는 자리입니다. 때문에 비상시 다른 승객들의 탈출을 도울 수 있는 신체 건강한 만 15세 이상 승객에게 배정해 왔습니다.

항공기 기종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비상구 앞 좌석은 일반석에서 8~12개 정도에 이릅니다. 특히 비상구 앞 좌석은 다른 일반석(이코노미석)보다 공간이 넓어 다리도 쭉 뻗을 수 있어 ‘레그룸 좌석’이라고 불립니다. 고객들에겐 ‘웃돈’(프리미엄)을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명당’이기도 합니다.

수요가 높다보니 비상구 앞 좌석 판매가를 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국제선에 프리미엄을 얹어 판매해 왔습니다. 저비용항공사(LCC)의 경우 국제선과 국내선 모두 해당 좌석에 웃돈을 얹어 판매해 왔던 게 사실입니다.

당장 비상구 좌석판매를 중단하는 것은 임시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오히려 급박한 상황에서 승객 탈출을 돕는 손길의 부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고요. 일부 항공 커뮤니티 등에선 “일탈 승객 한 명 때문에 가성비 좌석을 운영안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란 지적이 나옵니다.

외신들에서 ‘기괴한 사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승객의 행동, 하늘 위에서의 돌발 상황에 앞으로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할지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조사가 필요합니다. 보여주기식 대책 마련은 곤란합니다. 서두를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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