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가모, 700년 된 고성(古城)을 할부로 사다[류서영의 명품이야기]

2023. 6. 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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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의 명품이야기/살바토레 페라가모②

페라가모 건물 ‘팔라초 페로니 스피니’(사진 ①) 사진 출처 :instagram Ferragamo museum



이탈리아 피렌체의 토르나부오니 거리에는 명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아주 멋진 건물이 있는데 바로 페라가모 매장이다. 건물 지하에는 페라가모 박물관이 있고 1층에는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페라가모 건물 ‘팔라초 페로니 스피니(사진 ①)’는 13세기에 지어진 성이다. 이 성을 얻기 위해 창업자 페라가모는 큰 모험을 했다. 페라가모는 자서전에서 팔라초 페로니 스피니를 피렌체에서 가장 좋아하고 동경하는 건물이었다고 한다.

팔라초는 ‘행복한 귀한’이라는 뜻의 토르나부오니 거리 한구석, 잔잔히 흐르는 아르노 강변을 보고 서 있다. 이 성은 페로니 가문과 스피니 가문이 각각 소유한 두 개로 돼 있다. 완공된 것은 1289년으로, 지금으로부터 734년 전이다. 성 아래쪽에는 아직도 단테의 연인 베아트리체의 우물이 남아 있다. 헨리 홀리데이가 그린 유명한 그림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나다’라는 작품은 시인 단테가 산타 트리니타 교각의 난간에 기대어 서서 우물로 가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룽가르노 거리를 지나가는 베아트리체를 응시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림 바로 너머 룽가르노 거리 왼쪽에 있는 것이 바로 페로니 스피니 성이다. 

미국에서 파산한 페라가모는 페로니 스피니성을 살 처지가 못 됐지만 그 건물을 사고 싶다는 욕망을 누를 수 없었다. 건물 주인은 페라가모가 파산자였기 때문에 건물의 임대 조건으로 3개월 치 선불과 그것도 모자라 사용하지도 않은 지난 한 달 치의 건물 임대비까지 추가로 요구했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조건이었지만 페라가모는 흥정하지 않고 임대 계약서에 사인했다. 성 주인은 ‘이 사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파산한 주제에 깎아 달라는 말도 없이 돈을 바로 내놓다니 말이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페로니 스피니城 빚 청산한 뒤 할부로 구입


살바토레 페라가모 사진 출처 :instagram Ferragamo museum



그 후 성주인은 페라가모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어느 날 성 주인은 페라가모에게 성을 사라고 말했다. 성 주인은 페라가모가 아주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서 현금 얼마를 먼저 주고 나머지는 사업 수익에서 조금씩 분할해 납부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페라가모는 채무자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성 주인은 부채 상환을 잠시 중단하고 건물을 매입해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 부채를 갚으라고 조언했다.

페라가모는 성 주인의 끈질긴 설득과 성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잠깐 동안 그 성을 소유했을 때의 짜릿함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성 주인이 가져온 매매 조건을 페라가모의 변호사가 본 다음 “그 작자한테 단 1센트도 줄 생각을 마십시오! 이대로라면 매달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각에 꼬박꼬박 할부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만약 한 번이라도 놓친다면 설령 그게 마지막 납부금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페라가모 씨가 가진 마지막 1리라까지 몽땅 긁어 가고 건물마저 그대로 가져 갈 수 있습니다. 페라가모 씨가 가진 것 다 내주고 아무것도 못 얻게 되는 거예요!”

페라가모는 변호사에게 감사하다고 전했고 성 주인에게는 계속 생각 중이라고 대답하며 돌려보냈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앞으로 뭘 하건 빚을 남김없이 다 갚기 전에는 1센트도 투자하지 않겠다고….

2년이 지났다. 파산 절차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마지막 채권자에게 빚을 다 갚고 판사에게 법이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했고 파산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났다. 어떤 상업 활동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됐다. 돈은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빚의 족쇄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몸이었다. 페라가모는 미래를 마주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건실하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 보일 것을 다짐했다. 따라서 그는 팔라초 페로니 스피니를 구입할 수도 있게 됐다. 페라가모는 팔라초 페로니를 주인이 제시한 계약서 초안에 의거해 구입하기로 했다고 변호사에게 알렸다.

변호사의 대답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재산을 몽땅 잃게 될 거예요. 납부금을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요” 페라가모는 좋은 의도인 것은 알았지만 그의 조언을 무시해 버렸다. 이미 머릿속에 문제를 신중히 생각해 본 결과 계약서 조건에 따르면 사업이 성장하는 속도에 맞춰 납부금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페라가모는 10만 리라(당시 환율로 약 5250달러)를 모아 성 주인에게 가지고 갔다. “계약서에 서명할 준비가 됐습니다. 첫 납입금으로 10만 리라를 준비해 왔습니다”.

새벽~자정 성에서 불 밝히며 일해 잔금 완납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팔라초 페로니 스피니의 내부 모습 사진 출처 : 꿈을 꾸는 구두장이 도서



그는 거절했다. 첫 지불액으로 20만 리라는 받아야겠다는 것이었다. 페라가모는 솔직하게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그만한 돈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마침내 그가 대답했다. “좋소 페라가모 씨. 당신을 전적으로 믿겠소.” 총납부액은 350만 리라(약 18만 달러)였는데 그중 200만 리라 조금 못 미치는 액수는 1970년까지 건물을 담보로 차차 지불하도록 돼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150만 리라는 한 달 평균 17만 리라 정도 9개월 분할로 납부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달 마지막 날 오전 10시 정각에 말이다.

실제로 처음 몇 달의 납부금이 평균 분할 액수를 약간 밑돌았기 때문에 나중에는 납부금이 일정 비율로 올라가기도 했다. 은행은 조합의 지분 증명서를 보관하고 있는 마지막 납부가 이행된 후 증명 서류를 페라가모에게 넘겨주기로 돼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단 하루라도 납부가 지연되면 페라가모가 그때까지 지불한 전액을 몰수당하고 건물 전체에 대한 어떤 권리도, 조합에 대한 어떤 지분도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을 믿고 도박을 한 것이었다. 그 스스로 가진 강함과 능력, 사업을 믿었기 때문이다. 페라가모는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부터 밤 12시까지 성에서 불빛을 밝혔다. 그러던 중 1973년 9월 이탈리아의 우파 정부가 유대인을 공격하고 나섰다. 페라가모는 해외 수출을 담당한 많은 상점이 유대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타격이 컸다. 

이 위기는 웨지 힐 구두가 구원해 줬다. 마침내 페라가모는 전액을 지불했고 성은 페라가모의 소유가 됐다. 성 주인은 “나는 자네가 못할 것이라고 믿었소. 사실 성을 팔고 싶지 않았는데 건물 밖에 서서 매일 밤 12시가 넘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지켜봤지. 너무 일을 열심히 하기에 마지막 납기일이 되기도 전에 쓰러질 것이라고 믿었소.” 페라가모는 ‘행복한 귀환의 거리’에 서서 놀라움과 승리감을 가득 안고 그의 성을 바라봤다. 그 순간 행복에 목메어 한마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참고 자료: ‘꿈을 꾸는 구두장이(살바토레 페라가모 지음, 안진환·허영은 공역, 웅진닷컴)’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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