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10분 만에 마약류 처방전이 내 손에 들어왔다
거리에서 비틀거리던 아이들
SBS 취재진이 현장을 담은 CCTV를 입수해 살펴봤더니, 당시 이들은 바닥에 갑자기 주저앉았다가 비틀대며 일어났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도 하는 증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1시간가량 골목을 돌아다녔던 10대 여학생 2명은 주변 사람들에게 일본산 감기약을 먹었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걸로 전해졌습니다.
감기약에 포함된 마약류 성분, '댈구'하는 10대들
해당 약에는 '덱스트로메트로판' 성분이 들어 있는 걸로 파악됐는데요. 이 성분은 뇌에 작용해 기침을 억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다른 성분과 복합돼 감기약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런 복합제에는 소량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의약품, 즉 의사의 처방이 필요 없는 약으로 존재하지만 1일 복용량으로 이 성분이 60mg 넘게 포함되는 약은 전문의약품으로써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됩니다. 마약류라는 뜻입니다.
이 성분이 1일 60mg 이상 용량 제품일 경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건 2003년입니다. 이후 복합제가 아닌 단일제는 제약사에서 허가를 취소해 현재는 유통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 남용으로 인한 청소년의 피해가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약학정보원은 설명합니다.
앞선 수원 여학생들의 사례는 바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처방 없이 구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여러 개 구매해 사실상 단일제를 먹은 듯한 환각 효과를 느낀 건데, 이런 약물 오남용이 10대에게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감기약, 또 다이어트 약은 10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SNS를 조금만 검색해 봐도 약의 전문적인 성분명까지 거론하며 약을 사고 판다는 글을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울에 있는 한 의원, 문을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처음 왔는지 다이어트 약 처방을 위해 왔는지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간단히 문진표를 작성하라고 합니다. 현재 몸무게, 희망 몸무게, 그리고 식욕이 강한지, 일주일에 음주는 얼마나 하는지 등 질문에 답을 적어 넣었습니다.
의사 진료를 보기 위해 문진표를 들고 기다리던 중 처음 방문한 환자들을 모아 직원이 먼저 설명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기자와 비슷한 시간에 병원을 찾았던 환자 3명과 함께 설명을 들었는데요. 어떤 약이 처방될 것이고 어떤 방식으로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들은 후 다시 의사 진료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뒤 이름이 불려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는 7kg 정도 감량하고 싶다고 한 기자에게 한 달 만에도 가능하다며 늦어도 두 달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식단 조절 등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등 간단한 상담과 당부 이후 진료가 끝났습니다.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사용 기준에 기자가 들어맞는지 여부는 전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21년 만들어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식욕억제제 사용 대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적절한 체중감량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kg/m2 이상 ▲다른 위험인자(고혈압 등)가 있는 BMI 27kg/m2 이상 등 이런 외인성 비만환자들입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운동 등 체중감량요법의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식욕억제제를 활용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날 기자가 찾은 병원에서는 BMI를 따져보지도 몸무게를 재 보지도 않았습니다. 의사는 식욕억제제를 먹으면 잠이 잘 오지 않을 수 있다며 수면제 처방도 권했습니다. 이렇게 10여 분 상담 뒤 처방전을 받고 병원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택시 타고 관광하듯 병원 다녔다"
이렇게 병원을 직접 돌며 마약류 진통제 처방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다는 강 씨는 10대일 때는 다른 성인들에게서 이를 구매했다고도 전했습니다. 대리구매입니다.
SBS가 입수한 지난해 10대 마약 투약 감정 의뢰 데이터 속에서도 이런 전형적인 대리구매의 모습은 잘 담겨 있습니다. 만 12세 여자아이가 SNS를 통해 판매책과 연락이 닿고 그에게 3만 1천 원을 송금한 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식욕억제제를 배달받은 겁니다.
판매책과 직접 만나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그야말로 아주 간단하게 이뤄지는 거래. 이런 환경이 10대들을 마약에 보다 노출시키고 있었습니다.
통상 전형적인 마약으로 언급되는 필로폰, 대마 등 '사람을 망가뜨리는 마약'과는 다르다며 이런 마약류에 접근할지 모르지만 이런 마약류 투약이 더 강도가 센 마약 투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최초로 마약백서를 펴냈던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전연구소장은 "(마약 투약으로의) 적극성을 띄게 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약류 중독자 치료 전문 기관인 인천 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대들이 저도 모르게 또 타의에 의해서 더 회복이 어려운 마약 투약의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겁니다.
SNS 속 무방비 상태에 놓인 10대
처음이라며 추천해 달라고 하자 □□라는, 마약을 가리키는 은어를 바로 답하고, 학생이라 마약 투약 사실이 겉보기에 많이 티가 날지 걱정된다고 하자 '그렇게 세지 않다'며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거래를 어떻게 하는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을 내놨습니다. '들어는 보셨는지, △△△라고.' 그 이후엔 어린 학생이니 더 친절히 설명하겠다는 듯 입금 방식과 어떻게 하면 적발되지 않는지 등까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박하정 기자parkh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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