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Zoom] "그 넓은 섭지코지 뜻이 '좁은 땅'이라고요?"

제주방송 이효형 2023. 6. 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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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Zoom'은 제주에 대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알고 있다고 하기엔 애매한 '그 무언가'를 풀어주는 코너입니다.
박식한 수준까진 아니지만 애매한 '그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긁어줄 수 있도록 준비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섭지코지


■ "섭지코지 돌아보는 것도 다리 아프던데.. 여기가 왜 '좁은 땅'이죠?"

섭지코지하면 이젠 제주에서도 꽤 알려진 곳입니다.

20년 전 드라마 '올인' 촬영지로 특히 알려졌죠.

드라마를 촬영했던 '올인 하우스'는 없어진지 오래지만, 이젠 섭지코지 그 자체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 됐습니다.

그런데 섭지코지 안내문을 보면 '좁은 땅'이라는 뜻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섭지코지'의 뜻을 '좁은 땅'이라고 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섭지코지에 가보면 '좁은땅'이라는 그런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못된 뜻 해석입니다.

섭지코지 설명


■ "그럼 어쩌다가 '좁은 땅'이 된 것인가요?"

섭지코지는 '섭지'와 '코지'로 나눠서 봐야 합니다.

'코지'는 바다 쪽으로 나간 땅을 뜻하는 제주방언으로 '곶'이나 '곶이'를 뜻합니다.

제주방언이지만 우리말에서 온 것입니다.

하지만 '섭지'는 조금 다릅니다.

섭지는 원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다보니 생긴 말이죠.

300~400년 전 지도 등 자료를 보면 섭지의 옛 지명은 '협자(狹子)'로 돼 있습니다.

자는 아들 자(子)를 씁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주방언에서는 '자'를 '지'라고 발음합니다.

제주 어른들이 '손자'를 보고 '손지'라고 하는게 예입니다.

섭지코지


그렇게 우선 '협자'는 '협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협'은 제주말에서는 'ㅎ'이 'ㅅ'으로 바뀝니다.

'형님'을 '성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예로 꼽을 수 있겠네요.

제주 학자들은 그렇게 '협자'가 '섭지'가 됐다고 분석합니다.

즉 협자가 발음상 섭지가 된 것이지, 섭지 자체는 원말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지'는 땅 지(地)가 아닌 아들 자(子)에서 온 것이기도 하고요.

섭지를 두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는 땅의 형세라는 풀이는 있지만, 적어도 '좁은 땅'은 아닌 셈입니다.

원말이 아닌 것에 한자를 넣고 뜻을 맞추다보니 '좁은 땅'이란 다소 엉뚱한 풀이가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향파두리 항몽유적지


■ "장수물은 들어본 적 있는데, 여기에도 어떤 이야기가 있나요?"

이번엔 의미적으로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전설의 영역에서 붙여진 이름이 본래 이름을 덮은 경우입니다.

제주시 애월읍에는 '항파두리'가 있습니다.

13세기 말 원나라 침략에 맞선 삼별초군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이곳에는 '장수물'로 불리는 과거에 식수로 물이 나오는 샘이 있습니다. 지금은 식수로 쓸 수 없지만 말이죠.

이 장수물은 뭔가에 푹 파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장수물(횃부리물)


전설에는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군에 쫓기다 성을 뛰어 넘었는데, 그때 패인 발자국에서 샘이 솟았다고 합니다.

지금에야 이 장수물이 정말 전설처럼 만들어졌다고 생각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이름은 장수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장수물의 원래 이름은 '횃부리물'입니다.

'홰(훠)'는 일종의 신발로 바닥은 나무나 가죽으로 만들고 사슴 가죽으로 목을 길게 만든, 우리말로 장화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마치 가죽신을 신고 푹 밟은 듯 움푹 패인 지형에서 솟아나는 물이라는데서 '횃부리물'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그러다 삼별초 시대를 지나며 전설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수물'이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시 삼양1동 엉덕알물


■ "물도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던데, 이건 무엇인가요?"

하나 덧붙이자면 제주시 삼양1동 포구에는 '엉덕알물'이라고 있습니다.

엉덕 아래에서 솟아난 물이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주에서 샘을 뜻하는 것은 '세미', '세미물', 세밋물'이라 합니다. 보통은 엉덕알물처럼 'OO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여기 설명을 보면 '용천수'라 돼 있습니다.

이 '용천수'라는 표현은 제주에서 아주 흔히 쓰입니다.

땅 속에 있으면 지하수, 그것이 땅 밖으로 나오면 용천수라 보통 부릅니다.

설명을 위해 용천수라는 말을 썼지만 용천수는 일본식 한자표현이라고 합니다.

제주에서 물과 관련된 고유지명에 용천수라는 말은 없다고 하네요.

엉덕알물 설명

JIBS 제주방송 이효형 (getstarted@hanmail.net)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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