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어떻게 ‘꽃의 여왕’이 됐을까?…동·서양 교배의 비밀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입력 2023. 6. 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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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색·화형이 아름다운 아시아 원종과 향이 고운 유럽 원종 교배
해마다 200여송이 새로 태어나는 장미의 변신은 무죄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경기 남양주 북한강이 바라보이는 전망좋은 ‘대너리스카페’ 뜨락에 서 지난 5월 27일 비를 흠뻑 맞은 장미가 환히 웃음짓고 있다.

<하늘은 고요하고/땅은 향기롭고 마음은 뜨겁다/6월의 장미가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사소한 일로 우울할 적마다/˝밝아져라˝/˝맑아져라˝/웃음을 재촉하는 장미//삶의 길에서/가장 가까운 이들이/사랑의 이름으로/무심히 찌르는 가시를/다시 가시로 찌르지 말아야/부드러운 꽃잎을 피워낼 수 있다고//누구를 한번씩 용서할 적마다/싱싱한 잎사귀가 돋아난다고/6월의 넝쿨장미들이/해 아래 나를 따라오며/자꾸만 말을 건네옵니다.//사랑하는 이여/이 아름다운 장미의 계절에/내가 눈물 속에 피워 낸/기쁨 한 송이 받으시고/내내 행복하십시오.>

이해인 수녀의 ‘6월의 장미’다. 장미의 계절. 오월에 이어 유월에도 장미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 명성은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꽃 중의 꽃’으로 대접받고 있다. 모든 꽃들 중에 ‘장미는 언제나 옳다’라는 관대한 사랑을 받는 꽃이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냐만은 장미는 아름다운 큰 화관과 형형색색, 무엇보다 영혼을 흔드는 향기까지 두루 갖춰 ‘꽃의 여왕’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장미는 흔히 장미과 장미속의 관목을 일컫는 이름이다. 높이는 2∼3m, 잎은 어긋나는 깃털 모양으로 5∼6월에 각양각색의 꽃을 피운다.

경기 남양주 한강변 프라움악기박물관 건물 외벽에 핀 넝쿨장미. 2022년 6월12일

<피었다 지는 것이야/쉬운 일이지만/그 향기까지야/쉽게 잊혀지겠습니까?//사랑하는 것쯤이야/쉽게 한다고 하지만/그리워하는 것까지야/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먼 훗날 다시 태어난다면/나는 사무친 가시가 되고/당신은 숨가쁜 꽃봉오리가 되는/하나의 뜨거운 몸이 되어요>

정문규 시인의 시 ‘부활의 장미’다. ‘꽃의 여왕’ 답게 장미의 미색과 향에 취하고, 가시 품은 도도함을 소재로 동서고금 수많은 시인들이 장미를 노래했다.

북한강변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경기 남양주시 대너리스카페 외벽을 뒤덮은 담쟁이 넝쿨과 뜨락의 장미가 청록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2023년 5월27일

장미가 이토록 아름다워진 비결은 동서양을 넘나든 교배가 일찌감치 이뤄졌기 때문이다. 과거 장미는 화색과 화형이 아름다웠던 아시아 계열의 원종과 향이 뛰어났던 유럽 계열의 원종이 만나, 지금까지 그 독보적인 존재감을 이어오고 있다.

장미가 최초로 재배된 것은 기원전 2000년 전 바빌론왕국이었으며, 원예식물로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되 곳은 16세기경 영국과 프랑스였다. 그 후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교배를 통해 다종다양한 품종이 개발됐다. 현재 전세계 약 2만 5000 품종들이 있지만, 현존하는 품종은 7000여 종에 이른다. 해마다 200여 종이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 쇠창살 담장을 노랗게 물들인 넝쿨 장미. 2022년 5월말

그 원종(原種)이 되는 야생종만 200여종이 넘고 원예종은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장미는 ‘로자 하이브리다(Rosa hybrida)’로 불린다. ‘hybrida’는 ‘잡종’을 뜻한다.

18세기까지의 장미들은 ‘올드 로즈(Old Rose)’, 즉 고대 장미로 분류된다. 19세기 이후의 장미들은 ‘모든 로즈(Modern Rose)’, 즉 현대 장미로 구분된다.

장미는 고대 로마 시절에는 미의 여신인 비너스(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기독교가 자리잡은 이후에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이 됐다. 동양에서도 서양 장미가 비슷한 이미지로 들어왔기 때문에 대표적인 사랑, 로맨스의 상징적인 꽃으로 쓰인다.

이슬람권에서도 장미는 종교적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땀에서 장미향이 났다는 얘기가 전해내려온다. 오스만 제국시대 동방정교회 한 신부가 순교할 때 그의 잘린 목에서 장미향이 풍기는 피가 콸콸 넘쳐 흐르는 것을 본 군중들이 그리스도인, 무슬림 가릴 것 없이 그를 성인으로 공경했다는 기적의 얘기도 전해진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창천교회 담장에 핀 넝쿨장미. 장미는 기독교에서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6월 2일

장미는 햇볕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식물이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듯하다. 야생의 장미는 원래 봄철 한 계절에만 꽃을 피웠다고 한다. 현대의 장미는 봄부터 가을까지 줄곧 피기에 ‘사계화(四季花)’라 불릴 정도다.

장미는 도도한 꽃이다. 아름다운 화관과 황홀한 향기를 지녔지만 함부로, 헤프게 자신을 내어놓지 않는 도도함까지 갖췄다. 누구나 쉽게 근접하기 힘든 날카로운 가시를 지녔기에 장미가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자생 야생 장미로는 찔레와 해당화가 있다.

교배종인 ‘라벤더 드림’ 장미. 홍자색과 핑크색, 분홍색의 하모니로 꽃향기는 거의 없지만 화사하고 꽃이 작은 편이다. 2022년 5월21일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로 7017

장미의 가시는 잎이 변형된 것이다. 장미에 가시가 없었다면 장미는 그 도도한 매력까지 가주진 못했을 것이다. 장미에 가시가 달리게 된 전설은 이렇다.

신은 장미에게 아름다운 화관과 향을 선물했다. 비너스의 아들 큐피드는 이런 장미를 너무나 사랑했다. 하루는 아름다운 장미에게 코를 박고 향을 음미하며 키스를 하려고 입술을 내밀었다. 마침 장미 꽃 속에서 꿀을 빨던 벌이 깜짝 놀라 큐피드의 입술에 침을 쏘고 말았다. 비너스는 깜짝 놀라 그 벌을 잡아서 침을 뽑아 버리고 그 침을 장미의 줄기에 붙여 버렸다고 한다.그 뒤로 벌은 침을 쓰게 되면 꽁지가 빠지게 됐고 장미는 가시를 품게 됐다고 한다.

서울역 고가도로 ‘서울역 7017’에 피어있는 ‘ 블루 바조’ 품종의 장미. 장미 이름에 블루가 들어가는 건 드물다. 빨강에 약간의 파랑이 섞여 붉은 보라를 만들어도 ‘블루’ 명칭을 얻는다. 블루라이트,블루리버, 블루바조, 블루보이 등이 있다. 2022년 5월 21일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 장미는 색깔마다 몇 송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정말 복잡미묘한 꽃이다. 예컨대 붉은 장미는 사랑·아름다움·낭만적인 사랑·용기·존경·열망. 붉은 장미와 흰 장미는 ‘통합’. 붉은 장미와 노란 장미는 ‘쾌활하고 행복함’. 하얀 장미는 순수·결백·젊음·영성·숭배. 분홍색 장미는 감탄·감사·성실·우아함. 노란 장미는 기쁨·우정·질투·환영·집착·이별. 보라색 장미는 불완전한 사랑·영원한 사랑. 라벤더색 장미는 ‘첫 눈에 빠진 사랑’. 초록색 장미는 ‘천상의 고귀한 사랑’. 파란 장미는 ‘얻을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장미는 한 송이부터 장미 999송이까지 재미있는 꽃말이 있다. 1송이(첫 눈에 반했습니다). 2송이(이 세계에는 당신과 저뿐입니다). 3송이(사랑합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사랑). 4송이(죽을 때까지 이 마음 변치 않습니다). 5송이(당신을 만난 것이 진실로 기쁨입니다). 6송이(당신에게 푹 빠졌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이해합시다). 7송이(은밀한 사랑). 8송이(당신의 배려, 마음 씀씀이에 감사를). 9송이(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10송이(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당신). 11송이(누구(10)보다 당신(1)을 사랑합니다). 12송이(저와 사귀어 주시겠습니까?). 13송이(영원한 우정). 20송이(열(10)렬(10)히 사랑합니다). 21송이(당신에게 저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22송이(우리 둘만의 사랑). 24송이(하루종일 당신만이 떠오릅니다). 30송이(성숙한 사랑). 44송이(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50송이(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99송이(영원한 사랑. 언제나 좋아하겠습니다). 100송이(100%의 사랑). 101송이(더할나위 없이 사랑합니다). 108송이(저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365송이(매일같이 사랑스러운 당신). 999송이(어느 생이건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1000송이의 장미꽃은 선물하지 않는다고 한다. 999송이의 장미와 그녀가 어우러져 1000송이 장미가 되기 때문이다. 999송이 장미를 선물하는 남자를 만나야 진정 아름다운 장미가 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경지에 이른 ‘장미 상술’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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