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현미의 죽음이 쓸쓸하지 않은 이유는…”대한민국 1호 유품정리사가 말하는 죽음 준비의 철학[서영아의 100세 카페]

부산=서영아 기자 2023. 6. 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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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아니라 추모 위한 유품 정리
디지털 추모 아카이브 제작 등도
고인의 품위 지키고 생전 의도 전달
유족에 대한 위로 기능도
생전정리 잘하면 고독사도 예방
모든 죽음은 결국 고독하다. 하지만 고독한 임종을 거쳐 몇 날 며칠을 시신으로 내버려져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유기체에서 생명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시작되는 부패를 떠올리면 더욱 무참하다. 이런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인간의 위신도 존엄성도 무색해진다.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런 사례가 2021년에만 3378건 있었다. 5년 전보다 40%가 늘어난 수치다. 고독사가 우려되는 위험군이 153만 명이나 되고 이중 50~60대 중장년 남성이 가장 취약하다고 지목되기도 했다.

이런 발표들을 보며 ‘고독사’라는 일본산 신조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인물을 떠올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품정리사’라 불리는 김석중 키퍼스코리아 대표(53). 그를 만나러 22일 부산으로 향했다. 그는 며칠 뒤 서울에서 강연 2건이 예정돼 있지만 당일 인터뷰 시간을 내기는 빠듯하다고 했다.

김석중 대표는 요즘 고인들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들어주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직 교장선생님의 유족들이 ‘처리해달라’고 건네준 유품 중 평생 받은 상장 표창장, 세세한 이력 자료가 너무 아까워 추모 아카이브에 정리해 올렸더니 유족들이 무척 기뻐했던 게 계기가 됐다. 부산=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얼마 전 타계한 교장 선생님 본인이 생전에 알뜰하게 모아둔 상장과 상패들이 추모 아카이브에 정리된 모습.


지인들과 수시로 연락= 고독사 예방

부경대 창업지원센터에 자리한 키퍼스코리아 사무실. 유품 촬영이나 분석작업을 하는 공간이다. 그는 4월 초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던진 원로가수 현미 씨 얘기부터 꺼냈다.

보도에 따르면 현미 씨는 전날 저녁까지도 지인들과 소통했지만 다음날 오전 방문한 팬클럽 회장에게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그래도 고독사를 피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몇 년 전 현미 선생님과 고독사를 주제로 한 예능프로(2019년 5월 방송)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때 혼자 사는 고령자가 고독사를 피하려면 매일같이 연락하는 지인을 주변에 많이 둬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선생님이 무척 공감하셨어요. 그걸 잘 실천하셨던 거죠. 그 덕에 선생님의 마지막은 외로웠어도 고독사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법적으로 정의된 고독사는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그 시신이 일정 시간(최소 3일 이상) 흐른 뒤 발견되는 죽음’을 말한다.

반대로 4월 말 그가 유품 정리를 의뢰받은 66세 여성은 사망 뒤 3일 만에 처참하게 녹아내린 상태로 발견됐다. 자녀들이 외국에 있어 혼자 살던 고인은 침대에 누운 채 발견됐는데 아파트 전체에 난방이 가동되고 있었다.

-고독사를 막으려면 현미 씨 경우처럼 일상적인 연결망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겠군요.

“물론입니다. 다만 갈수록 고독사나 죽음에 대한 관점이 왜곡되고 있어 곤혹스럽습니다. 일부 미디어에서 처참한 현장을 치우는 ‘특수청소’ 위주의 자극적인 소재로 이용되고 있지요. 고독사라 하면 기괴한 현장이나 악취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돼버린 거죠. 망자들의 고독에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 머문다면 사회적 의미가 없어요.”

-복지부 고독사 예방 실무협의회 전문위원이십니다. 이번에 정부가 고독사 예방대책으로 이웃들에 게이트키퍼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습니다. 실효성이 있을까요?

“행정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주변 지인들과 연락 관계를 구축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는 없지요.”

중고품 판매업자, 폐기물 업자 난립도

초고령사회가 목전인데 1인 가구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독사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 황망하게 맞이하는 죽음일수록 고독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김 대표는 고독사를 생전 정리와 연결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생전 정리는 자신의 죽음과 그 이후를 미리 준비하는 일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해둬야 유족이 고인의 삶의 족적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이 일을 사후에 돕는 존재가 유품정리사다.

“한 사람의 죽음 뒤 집 한 채 분량의 유품이 생겨납니다. 유품정리사는 고인의 품위를 지키고 생전 의도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고인이 남겨놓은 것들을 남길 것과 버릴 것, 돈으로 바꿀 것으로 분류하고 유족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안내하죠. 또 고인 삶의 기록을 통해 유족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이 과정에서 유족을 위로하는 역할도 하지요. 그러려면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유품 정리가 한국에 뿌리내리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현실에서는 망자의 집은 대개 신속하게 다음 단계로 가야 한다. 예컨대 집을 상속받으면 내용물을 빨리 비워내고 처분하기를 원하는 유족들로서는 찬찬히 추억거리까지 골라내는 유품 정리 과정을 번거롭다고 느낀다. 비용도 일반 이사 비용의 2배 가까이 불어난다.

그래서인지 최근 국내에 난립하는 유품정리업체 중에는 중고품 판매업자나 폐기물 업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들은 고인의 짐을 한꺼번에 쓸어간 뒤 값나가는 물건만 추려내고 나머지는 모두 버린다. 당장 돈이 안 된다면 추억이건 학술 예술적 가치건 정보건 그들에겐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다.

고인의 유품을 모아 디지털아카이브로 만들기 위해 촬영하고 있다. 키퍼스코리아 제공


30대 후반, 아끼던 직원 사망에 인생관 바뀌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회사를 경영하던 김 대표가 유품정리사가 된 데는 사연이 있다. 2006년 아끼던 20대 직원이 휴가를 갔다가 불귀의 객이 됐다.

충격 속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무렵, 우연히 일본 최초의 유품 정리 전문회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드립니다’가 이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였다. 무턱대고 방송에 소개됐던 ‘키퍼스’의 요시다 다이치(吉田太一) 대표를 찾아갔다.

당시 일본서는 고독사 문제가 부각되고 장례 관련 박람회나 엔딩산업이 태동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사업으로서 승산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3년간 일본을 오가며 연수를 마친 뒤 2010년 한국 최초의 유품정리업체 ‘키퍼스코리아’를 세웠다.

일본 최초로 유품정리 회사를 설립한 요시다 다이치 일본 ‘키퍼스’ 대표와 함께.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은 사이다. 키퍼스코리아 제공
-이후 사업이 순조롭지는 않았던 듯한데요.

“일본에서 배운 것들을 한국에 접목하려다 보니 ‘그걸 왜 하느냐’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왜곡이나 편견도 심했습니다. 직원들도 흩어져갔죠. 그때 제 스스로 생전 정리를 해봤습니다. 인생을 리셋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부분들을 되돌아봤지요. 그간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내팽개치고 너무 많은 외부 활동을 했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구나. 내 몸을 돌보지도 않았구나. 그래서 우선 운동을 시작했고 술을 끊고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물건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 김 대표는 “가능하다면 생전에 자신의 물건들을 분류하고 정리해둔다면 유족과 후손들에게 더 좋은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말한다. 부산=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아가고 있는 사업은 다른 일거리들도 안겨줬다.

그간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 2018년 ‘누가 내 유품을 정리할까(지택코리아)’를, 지난해 ‘당신의 마지막 이사를 도와드립니다(김영사)’를 펴냈다.

그가 늘 끌고 다녔던 검은색 캐리어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대학생의 유품인데 사용 흔적이 없었다. 유족의 양해를 얻은 그가 주인 대신 세상 구경을 시켜주려 열심히 끌고 다녔다. 키퍼스코리아 제공
그새 유명 강사가 됐고 방송활동도 많은 편이다. 정부 정책에도 이런저런 자문을 한다. 2019년부터 부산과학기술대 장례행정복지과 외래교수로 출강하며 후학을 키우고 있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그가 요즘 가장 힘을 기울이는 것은 강연이다.

“월 10회 이상 전국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데 여건이 되는 한 달려갑니다. 죽음에 대비하는 생전 정리는 아예 사회와 문화가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아끼다가 ‘똥’ 됩니다. 좋은 물건부터 쓰세요”

25일 서울 강남구 웰에이징센터에서 주최한 주민 대상 강연회장에 가봤다. 타이틀은 ‘성공적인 인생 마무리를 위한 생전 유품 정리’. 강남구 거주 어르신 150여 명이 모였다.

어르신들 앞에서 당신들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김 대표는 그런 금기를 노련하게 넘나들었다. 강의를 듣는 어르신들의 리액션도 유쾌했다.

유품 정리 과정에서 보고들은 여러 사례들, 생전 정리의 의미와 요령이 소개됐다. 예컨대 가진 물건 중 중복되는 것은 과감히 처분하고 좋은 것, 새것부터 쓰시라고 권한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죠. 어르신들이 남긴 집에서는 ‘언젠가 쓰겠지’ 하며 쟁여둔 물건들이 쏟아져나옵니다. 대개 손톱깎이가 10개, 구둣주걱도 6~7개 정도? 하하”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자신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가타미와케’ 풍습처럼 지인들에게 미리미리 물건을 나눠주라는 조언도 했다.

또 혼자 사는 어르신은 주변에 본인 의사대로 사후 정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세 명 정도 지정해 놓을 것을 권했다. 그러면 훗날 이분들이 서로 협의해 망자의 의사대로 정리해줄 수 있다는 것.

강연이 끝난 뒤 무대 뒤로 잔뜩 고무된 표정의 어르신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잖아도 난 벌써 주변에 다 나눠주고 있어요. 이 나이 되니 새 옷도 별로 필요 없더라고.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몰라.” 칭찬해달라는 듯이 와서 말하는 멋쟁이 할머니가 있는가 하면 “강의 참 좋았다”며 명함을 건네는 어르신도 있다.

한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매일같이 써온 가계부 수십 권을 보관하고 있는데, 자식들이 자꾸 버리자고 해서 갈등이 있다”고 하소연하자 김 대표는 “아이고, 그건 아깝죠. 기록물이 될 수도 있는데…”라고 응수한다.

수십년간 꼼꼼히 기록된 가계부라면 그 시대의 물가나 사회상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자료 가치가 충분할 것 같다. 곧장 서울역으로 향하는 김 대표와 전철역까지 동행했다.

“이런 어르신들은 혼자 산다 해도 고독사 위험은 없지 않겠어요.”

그의 사무실 한편에 놓인 유품들. 유족들이 박스에 넣어 보내면 일일이 열어보고 촬영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산=서영아 기자 sya@donga.com


자살 예방 위해 ‘심리적 부검’도 시도

부산 사무실 한편에는 최근 극단적 선택을 한 42세 미혼남성의 유품들이 쌓여 있었다. 유족이 전체적인 정리를 부탁하며 고인이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웨어부터 각종 서류와 노트, 증명서 등을 택배로 보내왔다. 그는 자살 예방을 위한 ‘심리적 부검’을 하는 심경으로 분석을 진행할 거라고 한다.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하기 위해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고인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가 명문대를 나왔고 좋은 기업에 취직을 했지만 적응을 못했던 것 같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을 알아봤지만 잘 안됐던 듯하고요. 직장이 불안정하니 결혼도 못 했고, 집이 지방이니 주거비부터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구요. 박수받으며 떠난 고향에 빈손으로 되돌아오기도 힘들었겠지요.

문제는 이런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다는 점이에요. 요즘 한국 사회는 한번 궤도에서 이탈하면 다음 기회가 없으니까 말이죠. 정말 심각합니다.”

-유족에 대해서도 많이 마음을 쓰는 것 같습니다.

“유품 정리가 끝나고도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유족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령 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한참 만에 발견되는 사건을 겪은 한 유족은 계속 동생을 따라갈 생각을 하더군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도록 대화해주고 지켜봐 주는 일을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

-그건 사업하고는 무관한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 아닐까요.

“모르는 척하고 그냥 지나가야 되는데 유족을 보면 안타까운 거죠. 슬픈 상황에 놓인 분들을 어떻게건 돕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요. 어차피 큰돈 벌려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사실 대표직도 내놓고 싶습니다. 제가 키퍼스 코리아의 기본 틀은 어느 정도 만들었거든요. 앞으로 회사를 이끌어갈 적절한 대표가 나타난다면 언제라도 넘겨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생전정리를 사회에 알리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고 싶고요. 생전 정리를 생각하는 순간 삶이 다르게 보입니다. 정말이에요.”

부산=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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