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6500→2만1350원’…손석구·아이유도 못 살리는 ‘이 회사’, 솟아날 구멍은? [신동윤의 나우,스톡]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벌써 여름입니다.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가 진 이후에도 자정에 가까운 늦은 시간까지도 기온이 20도 중반에 머무는 날이 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더 길고 혹독해진 무더위 시즌이 조만간 시작하겠죠?
한여름 무더위 속으로 한발 한발 들어설수록 생각나고 당기는 그 음식, 바로 시원한 맥주 한 잔입니다. 여기에 치킨이나 피자를 곁들여 먹는다면 금상첨화일텐데요. 작열하는 태양 아래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저녁에 마시는 맥주 한 잔. 생각만 해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네요.
‘무더위’하면 ‘시원한 맥주’가 딱 떠오르는 것처럼 주류 회사에겐 여름철은 1년 중 어느 때보다 장사가 잘 되는 ‘성수기’입니다.
올해로 창사 99주년,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하는 국내 대표 주류 기업 하이트진로 역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지난 4월 4일 출시한 몰트 맥주 ‘켈리’가 바로 비장의 무기입니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가 내민 회심의 카드는 현재까지는 꽤나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모양새입니다.
하이트진로는 켈리가 출시 36일 만에 104만 상자가 판매됐다고 했습니다. 이는 330㎖를 기준으로 3162만병에 이릅니다. 켈리가 출시 후 1초에 약 10.2병씩 팔린 셈입니다. 앞서 테라는 출시 후 39일 만에 100만 상자 판매에 성공했는데요. 켈리가 국내 맥주 브랜드 최단기간 100만 상자 판매 기록을 갈아 치운 것입니다.
심상치 않은 초반 판매량에 하이트진로 역시 한껏 고무된 분위기입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켈리 판매 속도에 맞춰서 4~5월 초기 생산량을 기존에 세워뒀던 계획과 비교했을 때 4배 이상 늘리는 조치도 취했습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맥주 시장 10년 주기설’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국내 맥주 시장의 패권을 장악한 1등 상품이 10년에 한 번씩은 꼭 바뀐다는 건데요. 맥주 시장 점유율 1위 회사가 왕좌에 앉아 있던 연도를 환산해 보면 이상하리만치 맞아떨어집니다. 지난 2012년부터 작년까지 맥주 시장 1위는 ‘카스’를 전면에 세웠던 오비맥주였습니다. 이보다 앞선 1999~2011년 1위를 차지했던 회사가 하이트진로였고요.
실제로 5월 들어 하이트진로가 오비맥주를 제치고 매출 1위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A 대형마트에서 4월 오비맥주(44%), 하이트진로(44%), 롯데칠성(12%)이던 순위가 5월 들어 하이트진로(48%), 오비맥주(42%), 롯데칠성(10%) 순서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상대적으로 마트 매출 순위가 전체 맥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다고는 하지만, 2012년 이후 처음 역전 현상이 발생한 만큼 업계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업계에선 하이트진로가 내세운 ‘투 트랙(Two-Track)’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내놓습니다. ‘소맥용’ 테라와 100% 덴마크산 맥아로 맛을 살린 ‘라거의 반전’ 켈리가 연합작전을 펼쳐 소비층을 확대하면서 매출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됐다는 거죠.
오지우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트진로가 이미 참이슬에 진로이즈백을 더하는 ‘소주 투 트랙 전략’을 성공시킨 바 있다”며 “테라와 켈리의 맥주 점유율 상승이 기대돼 내년 큰 폭의 이익 개선이 전망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실 켈리 그 자체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이 바로 광고입니다. 켈리의 상징색이란 주황색의 ‘힙’한 배경 앞에 그윽한 눈빛으로 소비자들을 빨아들이며 켈리를 권하고 있는 대세 배우 손석구의 모습이 소셜미디어(SNS) 등을 타고 빠르게 퍼졌기 때문입니다.
손석구를 앞세운 광고 영상들은 공개 후 조회수 약 1400만뷰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켈리 관련 소비자 추천과 댓글이 약 250만건을 돌파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하이트진로가 신제품 켈리에 대한 초반 화제성에서 만큼은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소비자들 사이에 ‘켈리 마셔봤나’, ‘궁금한 데 이번엔 켈리 한 번 마셔봐야겠다’라는 대화가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오가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 만으로도 소정의 마케팅 성과를 거뒀다는 거죠.
다만, 이런 성과의 배경엔 ‘희생’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바로 마케팅에 대한 물량 공세로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하희지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맥주 시장의 점유율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이 올해 2~3분기에 감행될 것으로 보인다”며 “영업이익의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게시된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에서도 하이트진로는 매출이 전년 대비 3.39% 늘어난 6034억원을 기록하면서도 영업이익은 33.4% 줄어든 387억원에 불과했습니다. 특히, 다수의 증권사들은 맥주 부문에서 1분기에만 35억원 규모의 적자가 발생했다고도 짚었죠.
업계에선 일반적으로 주류 시장점유율 1%를 끌어올리는 광고판촉비가 약 100억원 들어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세 배우 손석구를 모델로 섭외하는 것은 물론, 서울은 물론 전국 대도시의 번화가마다 옥외광고와 포스터를 붙이는 데 막대한 판촉비를 사용한 것의 결과가 재무제표상에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김혜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2분기부터 성수기에 돌입하는 산업의 특성은 물론, 장기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료 효과가 본격화되며 주류 시장의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마케팅 비용 지출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도 내다봤습니다.
증권 업계에선 장기적으로 시장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지며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 평가하고 있지만, 당장 내 돈이 들어간 투자자들 입장에선 회사의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환영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죠.
이 탓일까요? 켈리가 잘 나갈지 모르지만, 하이트진로 주가 만은 결코 잘 나간다고 말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주주들의 속은 그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거죠.
하이트진로 주가는 지난 1일 종가 기준 2만2500원입니다. 올해 첫 거래일(2만5550원) 종가와 비교했을 때는 11.94%나 하락했습니다.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가 속해 있는 코스피 지수가 14.88% 상승한 것과는 분위기가 180도 다릅니다.
기간을 조금 더 넓혀보면 하락폭이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지난 3년간 최고점(2020년 8월 5일, 4만6500원)에서 최저점(2023년 3월 24일, 2만1350원)까지 하락률은 54.09%에 이릅니다. 반 토막 그 이하로 주가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장기 그래프를 살펴보면 파동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우하향 곡선의 모습이 완연합니다.
6월을 지나 하반기엔 하이트진로 주가를 획기적으로 띄울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도 고민거리입니다. 장지혜 DS투자증권 연구원은 “하이트진로는 2분기에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4% 감소하며 수익성이 부진할 전망”이라며 “신제품 경쟁에 따른 판촉비용 증가는 물론, 주정가격 인상(9.8%)이 2분기부터 반영되는 만큼 원가 부담도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혜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올해 마케팅비 지출 증가는 불가피한 만큼 이익 성장에 대한 기대는 접어두고 매출 증가 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시장 점유율 68%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소주 시장에서 경쟁자의 도전이 심화되는 것도 넘어야 할 산입니다. 롯데칠성이 지난해 9월 선보인 제로(0) 슈거 희석식 소주 ‘처음처럼 새로’가 강력한 도전자입니다. 처음처럼 새로는 올해 초부터 월간 판매량이 2000만병을 넘어선 상황입니다. 일각에선 제로 슈거 소주에서 만큼은 처음처럼 새로가 하이트진로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평가도 나옵니다.
하이트진로도 그저 당하고만 있진 않습니다. 9년간 의리를 지키며 참이슬 광고 모델로서 동행하고 있는 가수 아이유를 앞세워 맑은 이미지를 강조 중입니다. 처음처럼 새로에 맞서는 제로 슈거 리뉴얼과 핑크라벨도 회심의 카드입니다.
작년 24%가량 성장한 해외 매출 역시 하이트진로의 신성장동력입니다. 특히 소주 부문의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17.1%에 이릅니다. 반응이 좋은 미국과 중국·동남아를 넘어 신규 수출 국가 확대에도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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