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자의 시선] 한국GM과 인천

김명래 경인일보 인천본사 기획취재팀장 2023. 6. 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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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명래 경인일보 인천본사 기획취재팀장]

인천에서 'GM대우(현 한국GM) 차 타기 범시민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 실업극복국민운동인천본부를 비롯한 인천의 시민·사회단체 21곳이 동참했다. 인천시도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았다. 관용차를 GM대우차로 교체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시장·군수·구청장과 지역 정치인도 차량을 GM대우차로 바꿨다.

지역 언론사 역시 이런 움직임을 적극 취재·보도하며 캠페인의 성공을 유도했다. 당시 기자도 GM대우차 소비를 권장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제목은 <인천 지역 경제 '큰 버팀목' GM대우차 바로 알고 타자>였다. GM대우차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을 깨기 위한 기사였다. 'GM대우차는 연비가 낮다?', 'AS가 불편하다?', '잔고장이 많다?' 등과 같은 선입견이 왜 편견인지를 각종 조사 자료와 수상 실적을 통해 입증하려고 노력했다.

단지 기사만 쓰지 않고 실제 구매 행위로도 이어졌다. 당시 경인일보 인천본사 직원 차량의 절반가량은 매그너스, 레조, 라세티 프리미어, 윈스톰 등 GM대우차였다. 임원 차량은 스테이츠맨, 베리타스로 GM대우 브랜드로 출시된 세단이었다. 신차를 어떤 것으로 구입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국장급 간부에게 편집국 차장급 선배가 “인천의 언론인이라면 GM대우차를 구입하시는 게 맞다”라고 딱 잘라 말하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입사 3년 차였던 기자가 보기에는 조금 낯선, '자동차 도시 인천'의 풍경이었다. 15년 전의 일이다.

▲ 2008년 11월28일 오전대우자동차판매(주)와 실업극복국민운동인천본부는 인천 부평역 일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GM대우차 타기' 캠페인을 벌였다. 시민들이 GM대우차를 판촉하는 전단지를 살펴보며 걷고 있다. ⓒ 연합뉴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 GM대우를 출범한 2002년을 전후해 대우차 또는 GM대우차를 인천 시민이 애용하자는 운동은 간헐적으로 이뤄졌다. GM대우 부평공장과 그 협력업체의 일자리, 이 공장이 납부하는 지방세 등을 감안하면 인천 지역 경제의 20~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1962년 새나라자동차에서 시작된 부평공장의 역사 60년은 이 공장을 '향토기업'으로 시민에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2008년 12월1일 시작된 '조업 중단'은 지역 사회에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내수 판매량이 30% 이상 감소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향토기업인 GM대우의 위기가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전보다 컸다. 결국 시민이 직접 나서 차를 팔아주는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그 시절 인천에서 GM대우차 점유율은 25%였다. 인천 시민이 향토기업의 차를 이용하지 않고 현대차(34%)와 기아차(20%)를 구입하는 현실을 한탄하는 말을 해도 누구도 문제 삼지 않던 때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 정도지만, 인천 부평구 한복판에 수십 년 간 자리해 온 자동차 공장을 보는 시민의 애정이 그만큼 깊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업 중단된 공장은 1~2개월 뒤 생산을 재개했다.

GM대우는 2011년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명이 변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 사회와 연결 고리는 약해졌다. 글로벌 GM은 전 세계 공급망에 속한 생산 기지의 하나로 한국GM을 취급했다. 국내 출시 후 인기를 끌었던 차종은 하나둘 단종돼 사라졌다. 쉐보레 브랜드의 국내 경쟁력은 약화됐다.

2021년 기준 현대·기아차의 내수 점유율은 88%. 쉐보레 점유율은 4%까지 떨어졌다. 부평2공장에서 생산되던 말리부와 트랙스가 단종됐다. 부평2공장은 작년 11월 생산을 중단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부평2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약1천200명 중 600여명은 오랜 일터를 떠나 창원공장으로 이동했다. 이 가운데 약 400명에게 본인 의사에 반한 인사가 이뤄졌다.

언론은 주로 '공장 내 갈등 구도'로 이 소식을 전했다. 부평2공장의 생산 중단을 공장 내부의 일로 치부하는 느낌을 받았다. 2008년 12월 조업 중단 시기와 비교하면 이 도시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부평2공장 생산 중단은 6개월 째 이어지고 있는데 재가동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 2021년 2월 한국GM 부평공장. ⓒ 연합뉴스

안정적 일자리가 '지상 과제'인 시대, 눈앞에서 6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데도 너무 둔감했다. 오랜 일터이면서 삶의 터전인 인천을 떠나 타 지역으로 간 노동자의 어려운 처지에 관심을 두는 이들은 적었다. 경인일보 기획취재팀이 'GM부평노동자, 창원 파견 그후'를 취재·보도한 이유다.

“너무나도 평화롭던 2022년 12월 느닷없는 창원공장 발령으로 매일같이 힘겹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들은 중학생 2명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아직은 부모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한 성장기이고 남편 월급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금전적인 부분은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헤쳐 나갈 수 없는 사회구조임을 그 누구나 알 것입니다. 아직은 어린 2008년, 2009년, 2012년생 세 아이와 살아감에 있어 교육뿐 아니라 먹는 것부터 생활의 모든 부분에 걸쳐 남편의 빈자리는 매우 큽니다. 창원공장에서 주야 교대근무와 왕복 800km라는 장거리 이동에 남편 또한 자주 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계속 지쳐갈 뿐입니다.”

기사에는 싣지 못한 창원공장 파견자 아내의 편지다. 인천에서 세 아이를 홀로 양육하는 엄마(49세)에게 지금 이 시기 '남편', '아빠'의 빈자리는 그 무엇으로도 채우기 힘든 고난이다. 완성차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보는 언론 보도는 '귀족 노조'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

▲ 5월30일 경인일보 3면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벗어나 한국GM 창원공장 파견자의 실제 노동 현장과 삶을 지난 2개월 간 짚어 보면서 공장 바깥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열악한 현실과 마주할 때가 많았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지만 이같은 '삶의 균열'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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