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말레이시아, 직업은 성북구청 공무원?

안준현 기자 2023. 6. 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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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직장인들처럼 교통카드 찍으며 출근하고,
휴일에는 이태원 구경하며 한국 생활 즐겨
편리한 환승 제도, 노인 복지 시설 배워 돌아갈 것

“점심으로 얼큰한 떡볶이 국물에 야채 김밥을 찍어 먹어요.”

말레이시아 프탈링자야(Petaling Jay)시에서 4617km를 달려온 말레이시아인 공무원 2명이 지난달 8일부터 서울 성북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니 아낙 에디(43)씨와 모하메드 주파들리 빈 부르한(36)씨다.

말레이시아 프탈링자야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한국 선진 행정을 배우기 위해 성북구청으로 단기 파견된 모하메드 주파들리 빈 부르한(36, 왼쪽)씨와 보니 아낙 에디(43, 오른쪽)씨/성북구청

이들이 근무하고 있는 프탈랑자야시는 2017년부터 성북구와 국외 우호도시 관계를 맺고 있다. 프탈링자야시는 지난해 성북구에 공무원 단기 교류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한국 행정 시스템과 정책을 직접 보고 배워오기 위해서였는데, 성북구에서 이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해외 공무원이 파견을 오는 것은 성북구 역사상 최초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일본 요코하마시 공무원들이 단기 파견돼 근무했지만,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성북구청에서 만난 프탈링자야시 공무원들의 옷깃에는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달아줬다는 ‘성북’ 뱃지가 빛나고 있었다. 문화체육 분야에서 근무하는 보니씨는 “한국 공공시설과 복지시설을 배워 말레이시아에 이식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말레이시아가 고령화되면서, 한국 공공시설을 둘러보며 말레이시아 노인 복지 시설 구축에 필요한 청사진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분야에서 근무하는 모하메드씨는 “말레이시아가 2030년까지 어플리케이션으로 공공 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시티 사업 완성을 목표로 한다”며 “높은 IT 기술로 핸드폰이나 온라인으로 손쉽게 행정 업무를 볼 수 있는 한국 행정 체계를 배워 스마트시티 사업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들은 성북구 내 미술관, 노인 복지 시설, 공원, 주민센터 등을 방문하며 모국(母國) 말레이시아를 위한 벤치마킹 사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행정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모하메드씨는 “한국은 곳곳에 CCTV가 설치돼 매우 안전하고, 대중교통과 환승제도, 공공시설이 모두 훌륭한 국가”라며 “작은 동네 공원에도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같은 편의시설이 잘 가꿔져 있고, 강아지들을 위한 배변 패드도 설치돼 놀랐다”고 했다. “주민센터나 지하철역 어디를 가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높은 한국 교육 수준을 뒷받침하고 있었다”며 “말레이시아가 반드시 벤치마킹해야하는 선진 행정”이라고 했다. 보니씨는 “한국 공무원 사회는 말레이시아 공무원 사회와 비교했을 때 미래를 대비하는 정책을 만든다”며 “미래를 대비하며 일하는 공무원들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평했다.

이들은 낯설었던 한국 문화에도 적응 중이다. 일반 직장인들처럼 지하철과 버스로 출근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후 가장 먼저한 것이 ‘교통카드 충전’이었다고 한다. 근무 초반에는 한국어 사용에 어려움을 느껴 기초 한글 수업도 듣고, 한지 공예 수업을 들으며 한국 문화도 익히고 있다. 성북구 인사 체계도 배우면서 진짜 ‘성북구청 공무원’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슬람교도(무슬림)라 돼지고기 섭취가 불가능한 모하메드씨는 최근 구청 인근 분식집에서 떡볶이에 야채김밥을 먹는 것이 낙이라고 한다. 주말에는 둘이 직접 이태원으로 가서 할랄푸드(무슬림을 위한 음식)를 먹으며 한국 생활을 즐기는 중이다.

보니씨는 “직장 동료인 성북구청 공무원들이 따뜻하게 환대해준 덕분에 벌써 한국이 ‘내 집’같다는 기분이 든다”며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물이 맺힌다”고 했다. 모하메드씨도 “성북구가 우리를 받아줘 일할 기회를 주신 것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진 행정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들은 5일까지 근무한 후 말레이시아로 돌아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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