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이 ‘교제 살인’으로 이어져…분노 조절 안 되는 우리 사회 [배정원의 핫한 시대]
(시사저널=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지난주 연인 혹은 동거인에게 3명의 여성이 연달아 또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그녀들이 죽은 이유는 자신을 때린 동거인을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었고, 헤어지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들이 일어나자 '경찰의 초동대응이 미흡했다' '법의 미비로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있었다' '경찰이 사용한 범죄 위험성 판단 체크 리스트가 부적합하다' 등등 많은 의견과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데이트나 동거처럼 결혼하지 않은 관계라도 친밀한 관계 안에 있으면 '가정폭력' 범주 안에 넣어 처벌해야 맞는다는 소리도 들리고, 데이트 폭력이 '교제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따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꽤 오랫동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국회에 관련 법안들이 계류된 채 잠자고 있는 동안 계속 여성들은 피해자가 되어 속수무책 폭력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데이트 폭력의 신고 건수는 2020년 1만8000여 건이 넘었고, 2021년에는 5만7000여 건으로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친밀한 관계에 의한 여성 사망자 수는 총 372명으로, 이 중 교제 관계에 있었던 이들이 205명으로 전체의 55%에 달했다. 거의 이틀에 한 명 이상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친근한 사이에 일어난 폭력, 가중 처벌해야
친밀한 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을 '친밀한 파트너 폭력(IPV·Intimate Partner Violence)'이라고 부른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여성이 모르는 사람보다 친밀한 관계의 남성들에게 더 많이 맞고, 죽임을 당한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파괴력이 강하다. 작은 타박상에서 시작하지만 살인 혹은 자살로 이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중요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규정할 만큼 피해자가 받는 피해가 극심하다. 실제로 이러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성병·낙태·광장공포·강박장애·무력감·외상후 스트레스장애 등등 많은 육체적, 정신적,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생명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 친밀한 관계 안의 폭력이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를 야기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이다. 교제하고 있는 상대는 피해자의 많은 사적 비밀과 관계와 일상의 규칙을 알고 있다. 가족의 전화번호, 친구 관계, 피해자의 학교와 직장, 일상 등을 꿰고 있기에 피해자가 되는 순간 모든 일상이 파괴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이보다 훨씬 피해자에게 접근이 쉬우며, 상대가 자신을 알기 때문에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여전히 '정상 가족' '두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는 가치의 틀에 갇혀 있는 경찰이 많고, 현장에 출동해서도 '신고하실 거냐'는 물음으로 피해자가 위축되게 만드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도 문제다. 법적으로도 피해자가 법적 처분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 처벌되지 않는 '반의사불법죄'는 더욱 피해자 보호를 어렵게 한다. '친밀한 관계'를 처벌해 달라고 하는 것이 사회 도덕적인 가치와 충돌하고, 또 여전히 가벼운 법적 처벌 때문에 곧 다시 직면해야 할지도 모르는 후환 탓에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겠다고 하면 기소를 유예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제도'도 엄정한 관리와 효과 측정 등이 없으면 공염불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무엇보다 이러한 폭력 대책에서 유감이라 생각되는 부분은 피해자를 보호한다면서 오히려 피해자를 가두는 것이다. 피해자를 쉼터나 보호소에 분리하는 것보다 폭력을 행한 가해자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고 피해자와 분리된 거주 공간에 한정해야 공정하지 않을까.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자신의 거처를 떠나야 하고, 친구나 지인을 만나는 것을 통제받고, 학교나 직장을 다니기 어렵게 만드는 등의 대책은 피해자 중심이라고 볼 수 없다. 벌은 잘못한 사람이 받아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의 거처를 통제하고 전자발찌나 위치추적기 등 보고 수단으로 그의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불편을 겪게 하는 방향이 더 옳은 것 아닐까. 이에 더해 친근한 사이에 일어난, 힘에 의한 폭력은 더 가중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가해자들은 상대의 '거절'과 '이별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를 내고, 때리고 심지어 상대를 죽이기까지 하는 걸까.
결국 이런 가해자들을 길러내는 우리 사회·문화·정치·법·언론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 사회 속에서 여러 다양한 관계를 경험해야 하는 청소년기에 이미 끝없는 무자비한 경쟁에 내몰리고, 관계에서 고립되어 시험공부만 한다. 그렇기에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소통에 서툴다. 소통이 어려우니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분노와 화, 오기에 사로잡힌다.
청소년기 이성 간에 더 많은 대화 필요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은 어릴 때부터 노출되고 익숙해진 자극적인 포르노, 사람을 죽이고 다시 리셋함으로써 생명을 빼앗는 것의 폭력성은 즐기되 각각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배우지 못하는 게임문화, 다정한 사랑보다는 온통 자극적이고 선정적이며 질투와 잔인한 복수가 난무하는 영화·드라마·웹의 매체들, 사실의 적확함과 중요함보다는 재미의 클릭 수를 기준으로 선택한 언론들, 젠더 왜곡으로 남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 여성을 만만하게 보는 사회 풍조 등이다.
우리가 좋은 인간으로 더 안전하게 성장하려면 청소년기의 성교육이 사회 행동까지 다뤄야 한다. 건강한 이성 교제, 교제를 시작하고 끝맺는 방법과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 등에 대해 알려주는 사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안전하고 자신에게 행복한 관계맺기를 배우게 되고, 살게 될 것이다. 건강한 이성 교제를 연습하려면 이를 주제로 더 많은 대화를 이성 간에 해야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동등하게 주고받는 법을 배워야 이성 간 부정적인 왜곡, 여성 혐오, 성차별적 비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성 관계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를 통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실연의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솔직하고 친절하게 연애하는 법을 배워야 어른이 되어 좀 더 능숙하게 성숙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좋은 소통을 보여주는, 왜 휴머니티가 좋은가를 보여주는 책, 소설, 영화를 청소년기에 보며 다양한 롤모델과 관계의 대리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들은 인간들만이 할 수 있는 고급한 사회학습이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야생동물들조차 구애의 방법, 잠재적인 짝짓기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읽는 요령을 배운다고 한다. 86%의 암컷은 수컷의 구애를 거절하며, 그 수컷의 4%만이 계속 구애를 시도한다고 하는데, 결국 '싫어'라는 거절 표시가 대개 존중된다는 것이다. 동물도 이러할진대,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없고, 상대의 동의와 거절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선량하고 훌륭한 성인이 더 많아지면, 교제 폭력과 교제 살인이라는 말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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